현지 코디네이터와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공항에서 2시간 30분 동안 발만 동동 구르다 무조건 택시를 타고 호치민 대성당에 가서 도움을 청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비록 더운 물도 제공되지 않는 거창한 이름의 “넘버 원 호텔”에서 40달러의 바가지(?)를 쓰고 하룻밤을 자야 했지만, 천애의 고아가 될 뻔했는데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다음날인 11월 10일 호치민 대교구청으로 가서 물어봐서 코디네이터인 땀(Tam)과 연락이 되었고 그날 오후부터는 교회 여러 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2000년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라칭거 추기경이 “주님이신 예수”(Dominus Iesus)를 발표했을 때 아시아의 종교간대화와 토착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프란치스코회 구이마리 신부(Guy-Marie Nguyen Hong Giao)가 베트남 중부에 있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은 참 아쉬웠다. (전에 아시아신학연대센터 국제 강연회에 그를 초청했다가 정중하게 거절당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계획대로 도미니코회 신학자 3명을 통역자와 함께 한 번에 만날 수 있어서 위안을 삼았다. 나는 우선 우리신학연구소가 평신도의 힘으로 창립됐고 지금도 평신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교회가 가난한 이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고 간단하게 소개했다. 또 이러저러한 국제 행사에 나가도 베트남 신학자나 교회 활동가를 만나기도 어렵고 또 초청하기도 어려워 이렇게 직접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다들 빙그레 웃었다. ‘거 참 용기가 가상하네!’ 이런 뜻이었을까?

깜 신부(Thomas Thien Tran Minh Cam), 비엔 신부(Joseph Nguyen Trong Vien), 헙 신부(Paul Hop)는 지면으로만 접했던 도미니코회 사제 신학자로서 신학교 교수로, 수도회간 양성 프로그램 운영자로 또 도미니코회 신학원 학장으로 모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헙 신부는 베트남 교회는 베트남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로마화된 교회가 베트남에 있는 것이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땀의 안내로 삼종(三鍾)성당이나 탄호아 성당 같은 불교사원 형태의 성당도 가보았지만, 베트남 교회도 한국 교회와 마찬가지로 토착화의 과제가 절실한 듯했다. 헙 신부는 평신도들은 교회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노력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유교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성직자와 신자는 주인과 종처럼 늘 수직적인 관계에 있어야 그것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다행인 것은 1975년 공산화(이들은 혁명이라고 불렀다) 전에는 교회가 부자 편에서 부자를 위해 존재했지만, 혁명 뒤에는 가난한 사람에게 눈을 돌리도록 여러 압력이 존재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비엔 신부는 베트남 교회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신앙의 핵심인 사랑, 용서, 자비 같은 복음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보다는 신심 단체활동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다면서, 베트남 교회는 이제 믿는 이들의 공동체라기보다는 그저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성소자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그는 이런 ‘단체의 장’이라는 지위를 얻고자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려는 이들이 많다고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래도 베트남 교회는 주교를 뽑을 때 교회, 정부, 교황청 대표들이 모여 뽑으니 한국이나 다른 나라 교회처럼 교황대사와 자국 주교들 눈에 드는 후보만 올려서 교황청에서 지명하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내 말에 크게 동의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마도 제도교회 지도자에 대한 불신과 정부의 교회 통제라는, 베트남 교회만의 어려움이 이런 식의 주교선출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아시아 신학과 관련해 깜 신부는 교황청이 일치라는 이름아래 모든 교회를 로마화하려고 한다면 지역교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성공한다하더라도 그것은 교회가 토착화에 실패한 것을 뜻하기 때문에 각 나라 문화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영원히 이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교황이 아시아에서는 친숙한 상대성 또는 ‘상대주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면서, 베트남계 미국인 피터 판(Peter Phan) 신부가 교황청에게서 조사를 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땀 신부는 자신이 베트남 말로 쓴 책 “강의 노래”를 내게 주면서 “만일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된다면 아마 난 판 신부보다도 훨씬 전에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신학적 성찰을 모아 놓은 에세이 집이다.

그는 결국 신앙교리성이 판 신부의 책(“Being Religious Interreligiously: Asian Perspectives on Intereligious Dialogue")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예수의 유일성’과 ‘다른 종교가 그리스도교를 통하지 않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하면서, 이는 서구 신앙인이나 신학자들의 딜레마일뿐 아시아인들은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가 아시아인이라는 존재적 속성 때문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종교에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리스도교는 그것의 하나일 뿐이라는 말인지, 통역을 통해 듣는 불명료함이 참 답답했다. 도미니코회 교육 센터에서 주고받은 이런 대화는 나로 하여금 베트남 교회도 한국 교회와 거의 다르지 않고 교회의 구조는 물론 성직자의 쇄신과 더불어 평신도의 각성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나 한가지, 이들 모두 모국어인 베트남어만을 말할 줄 알기에 나중에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유감으로 남았다.

/황경훈(우리신학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 센터 실장)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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