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주일 기획 - 우리가 바로 생태사도입니다 1]
20주년 앞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성찰과 도약을 위해

18번째 농민주일을 맞았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의 올해 농민주일 담화문에서는 농민을 ‘착한 생태사도’라고 지칭했지만, 생명 가치가 땅에 떨어진 현대사회에서 농민은 소외받는 이들 중 하나다. 먹을거리를 생산해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농민, 정직하게 땅을 일궈 땀의 결실로 살아가는 농민은 ‘식량 무기화’라는 말을 들이대지 않아도 귀하디 귀한 존재다.

하물며 문명의 편리를 마다하고 창조질서 보전의 원칙대로 생명농업을 지키는 농민들은 어떠한가. 교회는 일찍부터 그러한 농민과 농촌, 농업을 살리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20년의 세월을 마주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생명농업을 이어가고, 도시에서는 그런 농민과 연대하고 지지하는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애쓰지만 고단하고 먼 길이다.

이번 농민주일을 맞아 교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면면을 살피고, 농촌생산공동체와 도시생활공동체,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회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농업을 지켜야 할 이유와 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농업, 농촌, 농민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이로부터 새로운 삶의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도시와 농촌의 생명, 생활공동체운동만이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생명의 먹거리를 제대로 나누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야말로 우리의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참 공동체’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라고 고백합니다.” (1994년 6월 29일,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 창립 선언문)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도시와 농촌의 생명 살림 약속

생명 가치관의 확립, 도농의 공생과 순환의 실현, 생태적 생활과 생산 양식의 창출, 공동체적 삶의 실천을 목표로 1994년 시작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농촌생활공동체인 가톨릭농민회와 도시생활공동체를 양 축으로 두고 생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나누며, 땅과 사람, 온 생태계를 살리는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단지 농약을 치지 않은 무공해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처럼 농촌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농사를 짓고, 도시에서는 그 농사의 결실로 소박한 밥상을 차림으로써,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생명운동이다.

때문에 하나의 주체인 농민은 자연퇴비와 유기순환농법을 고집하며 생태계의 흐름을 존중하고, 다른 주체인 도시생활공동체는 그들을 지원하고 함께 연대하면서, 도시와 농촌의 각 주체는 이른바 ‘책임 생산’과 ‘책임 소비’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도농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예를 들면 2006년에는 친환경물류센터를 만들고 생명농업실천위원회를 중심으로 생산 규정을 새로 정했다. 생명농업 정의에 맞게 주잡곡, 채소, 과수, 가공식품, 축산 등 5개 분과의 품목별 규정을 만들어 거의 완결된 상태다. 또 도시생활공동체는 도시 매장을 통한 농산물 소비와 함께, 가족농 사랑기금과 소 입식 운동 등을 추진하고, 도시 본당과 생산공동체 자매결연을 맺으며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농촌 생산공동체 증가 추세, 그러나 소비 상승률은 제자리
‘소비’는 생명농업 지속을 위한 중요한 축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2012년 말, 70여 개 농촌생활공동체(생산공동체 분회), 240여 개 도시생활공동체, 340여 개 매장, 2만여 명의 개인 회원을 두고 있으며, 연 매출은 약 3백억 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비량 변동이 거의 없이 10년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농촌생활공동체가 점점 늘어나는 반면, 도시공동체의 소비량은 오히려 줄고 있다. 매출 규모도 한살림이나 아이쿱 생협의 경우 2천5백~3천억 원 규모인 것에 비하면 미미하다.

▲ “교회의 밥상이 바뀌면 세상의 밥상이 바뀐다”고 했다. 처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시작할 때,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밥상의 70%를 우리농산물로 채우자고 말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전국본부 손영준 사무총장 역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전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정현진 기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전국본부 손영준 사무총장은 “물론 매출이 평가의 전부는 아니고, 10년간 고정적인 참여자들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결과”라며 “그러나 농민회원과 생산물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소비가 이 운동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 시점에서 소비가 늘지 않는다면 생명농업운동의 지속성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과제는 생명농업의 지속이며, 보다 많은 이들이 생명운동에 동참하는 데 있다. 손영준 사무총장은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등을 통한 단순 구매자만 증가하는 것은 운동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한다. 단지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는 것 외에 생명농업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켜야 하는 생산자, 원칙 때문에 불편한 소비자
모순의 상황,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가톨릭농민회 활동이 확대될수록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상생의 구조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생명농산물 소비 문제 해결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오랜 고민에도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생명운동 차원에서 생산의 원칙과 규정이 엄격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교회 내 조직이 갖는 특성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순환농법을 고집하는 생산 규정에 따라 제철 농산물만 생산하기 때문에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전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모든 농산물이 사시사철 판매되는 상황에서 몇 개월씩 특정 농산물이 없는 상황을 견디기란 힘든 일이다. 또 농촌생산공동체가 체계화된 반면 도시생활공동체는 교구 차원의 규정 없이 본당 재량에 맡기고, 활동가들의 봉사에만 의존하는 것도 한계 상황의 주요한 원인이다.

손영준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우리의 활동은 생산과 판매를 넘어 ‘운동’이기 때문에 훨씬 어렵다”며 “도농 협력 모임을 통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지만 한결 같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 운동을 양적 · 질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키고 새로운 운동을 펄쳐야 할 시기”라면서 “무엇보다 소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계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땅의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격이나 품질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생명의 가치와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나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오랫동안 강조했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나아가 성당의 사제관과 수녀원, 특히 건강에 예민한 교회 내 병원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생명의 밥상’을 차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18차 농민주일 담화문)

그는 이번 농민주일 담화문 내용을 들면서, “무엇보다 전 교회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전 교회적 차원에서 시작됐음에도 여전히 교회의 책임과 역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생명운동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무척 적극적이지만, 먹을거리나 농촌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홀한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교회뿐만 아니라 가톨릭농민회, 도시공동체 모두가 우리농촌살리기라는 공동체운동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홈페이지 www.wr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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