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가브리엘(41)

윤가브리엘씨

최근에 성소수자와 에이즈 감염자 관련 인권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제기되는 가운데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감염자들로서 자신을 포함한 비슷한 처지에 있는 계층을 위해 인권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윤가브리엘 씨를 만나 인터뷰하였다.   


한경아: 다음 주에는 인권행사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이즈와 관련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1985년에 에이즈 감염자가 한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벌써 23년이 지났지만 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에이즈는 죽음과 공포의 병이란 인식은 여전하고, 감염자들은 이런 차별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12월 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인데, 우리는 이걸 ‘HIV/AIDS(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로 바꾸어 그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병에 걸린 것뿐인데, 직장에서 해고되고, 진료거부 당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의 가장 큰 책임은 한국정부에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문제를 방기하고 있는 셈인데, 정부의 에이즈 정책은 사람들에게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예방광고를 할 때에도 항상 겁을 주는 방식입니다. 뼈만 앙상한 남자가 붉은 반점을 하고 등장하면서 “당신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라고 겁을 주는 거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저 남자가 무슨 짓을 했길래...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염인들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그저 감염자들을 시한폭탄이나 걸어다니는 바이러스 정도로 보게 합니다. 결국 한국사회는 우리를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보게 만들고, 더 많은 비감염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에이즈 감염자들이 인권침해를 받아도 싸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에이즈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감염자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주장들은 에이즈에 대해 무지해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정말 에이즈를 예방하려면 감염인의 인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감염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감염인임을 밝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차별적인 현실 속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밝히지 못하죠. 그걸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상대방도 예방할 수 있고, 내가 실수한 뒤에라도 대처할 방법이 생기죠.

2006년 6월 15일, 한국 다국적의약산업협회의 약제비적정화방안 반대 기자회견장. 윤가브리엘은 “에이즈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을 수 없어서 죽는 것이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들고 나가, 다국적 제약회사가 말하는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권이 거짓말임을 폭로했다. (출처 : 월간 네트워커)


에이즈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에서 특히 편견이 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에이즈를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정치인들과 신문은 에이즈를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말해 왔는데,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에이즈 환자로 처음 밝혀진 이들이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도덕적으로 매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에이즈는 수혈감염자도 있고, 마약사범에게도 나타나고, 감염된 산모를 통해 아기에게서도 발병합니다. 지난번에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으로 확정된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항목 중에는 ‘성적 지향’과 관련된 것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기독교층이 동성애가 에이즈의 온상이라고,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통해 이런 질병이 퍼지는 것이라고, 신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를 해서 생긴 형벌이라고 단죄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반발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윤가브리엘씨는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나요?

저는 처음에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2000년에 처음 에이즈가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퇴원 후에 갈 곳이 없어서 찾아간 곳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쉼터였습니다. 여기서 수녀님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세상 사람들이 다 피하는 사람들을 돌보는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수녀님들은 ‘다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라더군요. 2002년에는 폐결핵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났는데, 그때에도 갈 곳이 없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수녀님이 “우리 쉼터는 당신을 위해서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하면서 한 걸음에 달려오시더군요. 그때 ‘내가 갈 곳은 여기밖에 없구나’ 생각했죠. 그들을 보면서 나도 세례를 받아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니까 마음도 약해지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졌던 거죠. 그래서 2003년 성탄절에 쉼터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런데 2004년에 이라크전쟁을 보면서 종교에 실망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미사 때마다 ‘평화’를 나누자고 이야기하면서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니까요. 당시 반전집회에 자주 참가하던 때였는데, 종교가 몸을 사리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었죠. 점점 ‘하느님이 과연 있을까?’ 의문도 생겼습니다. 하느님은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자꾸 실체가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니까요. 한 해에 10만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약을 못 먹어서 죽어가는데 이런 세상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잖아요. 10만명이면 대량학살이죠. 에이즈는 지구촌 사망원인 1순위입니다.

지금도 성당에 나가시나요?

지금은 냉담자지만 절박한 상황에선 다시 그분을 찾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어요. 어쩌면 마음 한편에선 여전히 그분께 마음이 가 있다고 생각해요.

세례 받을 때 특별히 ‘가브리엘’이라는 세례명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라고 하더군요. 그 의미가 좋아서 세례명으로 선택했어요.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 활동을 하면서 예명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윤가브리엘’이라고 세례명을 사용하고 있어요. 사실 활동하려고 했던 동기와 이 이름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 활동과 관련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요?

2003년에는 에이즈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어느 에이즈 감염인은 맹장염을 치료해야 하는데 진료 거부를 당했고, 환자가 갑자기 병원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자살하는 감염인들도 많았죠. 그래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에이즈라는 질병보다 차별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나라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브리엘은 참 적절한 이름이다 싶습니다. 그후에 아시아복음포럼에서 엄기호씨가 아시아 에이즈 문제를 발제하였는데, 그때 제가 감염인 당사자로서 보조발제를 하면서 커밍아웃을 했고, 당사자를 찾고 있던 보건의료단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도와줘서 그들과 2004년부터 시작한 게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라는 모임입니다.

나누리+는 그동안 에이즈 감염 예방만 이야기하고,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없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잘못된 편견과 정책을 바로잡자는 운동이고, 진정한 예방을 위해 인권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에이즈는 예방하지 못한 저한테 일차적인 책임 있지만, 에이즈로 인한 사회적 차별은 감염인이 만든 게 아니란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이 사회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에이즈는 죄가 아니라 암환자처럼 질병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와지길 바랍니다.

윤가브리엘씨는 택시운전하는 아버지와 장사를 하는 의붓어머니 밑에서 배다른 형의 구박을 못견뎌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공장에서 전자제품 기판에 구멍을 뚫는 일이었다. 일하면서 졸다가 구멍뚫는 기계에 손가락 하나가 뭉개졌다. 그리고 간 곳이 평화시장의 봉제공장. 거기서 미싱보조로 있으며 아프기 전까지 10년 넘게 일을 했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어릴 때부터 받았던 폭력이 겹쳐져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살기 힘든 것일까?’ 생각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도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는데, 그는 우연히 듣게 된 한영애씨의 노래를 듣고 위로와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래도 희망은 너와 내가 손 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게 마련이지” 인터뷰 말미에 아직도 한영애의 노래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누구도 삶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을 때 그 분의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여전히 ‘한영애’다.

현재 윤가브리엘씨는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의 가격을 올려받으려고 한국에 약을 공급하고 있지 않은 다국적제약회사인 ‘로슈’를 상대로 항의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생계비로 한달에 30여 만원 나오는 돈으로 살고 있으며,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그는 한때 약을 공급받지 못해 양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으며, 어둔 밤에는 혼자 외출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미국의 에이즈 구호단체인 ‘에이드 포 에이즈’(AID For AIDS)에서 무상으로 푸제온을 후원해 주고 있어서 다행히 몸이 많이 회복된 상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염자들은 혜택에서 배제되어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푸제온을 생산하는 ‘로슈’사에서는 전세계 감염인의 90%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구매력이 있는 유럽과 미국시장에만 주력하는 것이다. 그는 감염인의 생명권이 기업이윤보다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오늘도 고심하고 행동한다.

한경아/ 새세상을 열어가는 천주교여성공동체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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