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C희망학교, “돌봄 이상의 교육으로 가난 대물림 끊을 것”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사랑뿐만 아니라 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작년 3월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 문을 연 CLC희망학교다.

CLC희망학교가 독산동에 자리 잡은 건 2007년 문을 연 CLC지역아동센터가 가까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에서 가난의 문제가 가장 도드라지는 지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학률이나 학습수준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떨어졌다.

국제 가톨릭 평신도 공동체인 CLC(Christian Life Community)는 이냐시오 영성을 기반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1989년 설립된 한국CLC는 다양한 영성 · 신학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세상속의 교회’를 위해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아동센터, 이주민센터 등을 차례로 열었다.

CLC희망학교는 CLC지역아동센터에 이어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돌봄을 넘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중학생을 위한 배움터다. 10개월간 가난한 지역의 청소년들의 현실을 공부하고 다양한 접근을 하는 단체들을 방문한 후, “결국 교육”이라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 CLC희망학교 신남호 교사가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신광식 CLC희망학교 교장은 “아이들의 성적과 교육격차는 가난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설명했다.

“한부모가정이 많은데다 먹고 살기도 어려우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방치됐다. 당연히 생활습관도 엉망이고 가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도 매우 크다. 그러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것들이 누적되어 온 결과다.”

신 교장은 “정신건강을 주의해야 하는 청소년의 비율이 전체의 20% 정도인데, 여기에 가난한 아이들이 상당히 많이 겹쳐있다”고 말한다.

CLC희망학교(이하 희망학교)는 교육단과 멘토단, 그리고 전문지원단을 구성하는데 힘을 많이 쏟았다. 교육단은 평일 학습을 담당하고, 대학생으로 구성된 멘토단은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 만나 문화생활을 한다.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기도 한다. 교육단과 멘토단은 모두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거쳐 신중하게 선정했다.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지원단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심리검사와 적성검사를 하며 도움을 준다.

아이들은 구청과 학교에서 추천을 받았다. 아이를 선별하는 기준은 의욕이나 능력이 아닌, ‘가난’이었다. 신광식 교장은 “의욕과 의지를 끌어내는 것까지도 희망학교의 몫”이라 말한다.

▲ 시험을 끝낸 CLC희망학교 학생들이 교사와 볼링을 치러 왔다. ⓒ문양효숙 기자

1년째 독서교사로 아이들을 만나온 신남호 씨(가좌동성당)은 “수업시간에 아이들 몸이 땅으로 꺼져 있었다”고 표현했다.

“책상 아래로 몸이 축축 쳐져 있었다. 앉아있기도 힘들어하고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다. 의욕이 있는데 가난해서 못한 아이들이 있다면 공부만 시키면 되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그런 아이들은 거의 없다. 부모로부터 전달된 무기력과 우울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배어 있다. 10년 넘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무슨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있겠나. ‘우리도 부모님처럼 살게 될 건데, 뭐’라고 생각한다.”

신남호 씨는 “처음에 아이들의 무반응이 무척 어려웠다”고 말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다. CLC 회원인 신 씨는 하느님께서 이 아이를 내게 허락하셨다는 생각으로 내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출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를 나누고 자주 안아줬다. 아이들은 아주 조금씩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어줬다. 수업이 있는 수요일, 신 씨는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퇴근을 두 시간 앞당겨야 한다. 쉽지 않다. 그러나 신 씨는 “행복하다. 사랑을 배운다”며 웃는다.

현재 신남호 씨와 함께 활동하는 교육단은 18명이다. 대학생 멘토단은 14명. 그리고 아이들은 20명이다. 한 반에 아이들은 세 명에서 네 명. 아이들의 수보다 교육단과 멘토단을 합친 수가 더 많다. 아이들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 CLC희망학교 신광식 교장 ⓒ문양효숙 기자

교사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고 아이들이 다른 수업은 어떻게 하는지 나누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신광식 교장은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책임감 있는 교사단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신남호 씨도 교사 모임이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희망학교에서 공부하는 중학교 1학년 A 양은 공부하면서 제일 좋은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선생님들이 우리 한 명, 한 명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입장을 고려해주는 느낌이 좋다”고 답한다.

희망학교는 초점이 분명하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신광식 교장은 “가난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이라고 말한다.

“가난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물론 전인교육은 좋지만 부모가 아무런 지원을 해줄 수 없는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인가. 중산층 청소년들과 가난한 청소년들은 다르다. 이들은 이미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살아왔다.”

그는 “희망학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라는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무책임하다”고 강조한다.

▲ CLC희망학교 내부.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여기저기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문양효숙 기자

희망학교는 얼마 전 3기 교육단과 멘토단 12명을 모집했다. 특별히 이번에는 가톨릭 정신을 강조해 ‘가톨릭 교육단 · 멘토단’으로 범위를 좁혔다. 영성 수련을 함께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 교장은 “활동과 수련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깨닫지 않으면 나 중심으로 가거나 성취 중심으로 가기 쉽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책임은 평신도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마더 데레사는 ‘소명 속에서 소명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수도자로 성소를 받았지만 그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명을 또 발견한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첫 번째 소명이라면 그 소명 안에서 또 다른 소명, 즉 어떻게 세상을 책임지고, 하느님 뜻에 맞게 돌볼까 발견해야 한다. 평신도의 삶이 성소라고 생각한다.”

희망학교는 지난 1년여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공동체를 다시 생각한다. 외로운 아이들에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진심이 살아있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희망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신광식 교장은 희망학교가 하나의 흐름이 되길 바란다.

“희망학교에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다. 100% 후원으로 희망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교사단과 멘토단에도 아이들에 대한 진심을 품은 분들이 많이 지원해 주신다. 세상을 향해 이런 마음을 품은 분들이 삶을 나누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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