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비평 - 맹주형]

공세리성당 구교(舊敎)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태어나자마자 유아영세를 받고 일찌감치 천주교 신자가 되었던 저는 청소년 시절 인생에 대해 나름 무척 고민했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나 살고 죽어 가는지, 또 죽음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유치하고 치기 어린 고민이었지만, 나름 인간 실존(實存)에 대한 고민이었죠.

그러다가 그 인생의 답을 찾으려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불가로 치면 출가(出家)를 한 셈이죠. 제가 다니던 신학교 교가(校歌)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세상을 버리고, 내 한 몸마저 버려 평생을 혼자 살아가며 진리를 구하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한 아내의 지아비요, 두 아이의 아비로 살아가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왜 신학교를 그만두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때마다 “장가가고 싶어서”라고 농담반 진담반 웃으며 말해줍니다. 보수화된 교회와 신학교가 싫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려고 신학교를 그만두었다고 제법 그럴싸하게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이 말로 다 정리가 됩니다. 진리가 어디 세상과 분리되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저 멀리서 구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살아가는 집과 가족,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진짜 세상이요, 진리를 찾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얼마 전 서울대교구 신학생들이 환경 현장과 교도소, 사회복지시설, 도시빈민현장 등을 2박3일 동안 직접 경험해보는 현장체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생들과 함께 환경 현장인 밀양 송전탑 현장과 영주댐 공사 현장, 내성천 상류 지역, 남한강 4대강 공사현장인 강천보와 이제는 모습을 잃어버린 바위늪구비 등을 다녀왔습니다.

▲ “한옥순 할머니는 ‘신부가 되려면 현장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3년 동안 싸우면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이분들이야 말로 하늘의 자식들이라고. 현장을 모르고 신학만 배우는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십니다.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지만, 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사진은 지난 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탈핵 문화제 ‘우리가 밀양이다’에 참석해 발언하는 밀양 주민 한옥순 씨(왼쪽)와 김영자 씨 ⓒ문양효숙 기자

현장체험 첫날 신학생들과 함께 밀양 765㎸ 송전탑 현장 가운데 한 곳인 부북면 보라마을 농막에 도착했는데 할매들은 밥부터 차려주십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미 점심밥을 먹었지만 서울서 온 친손자들 맞이하듯 제철 푸성귀와 감자로 맛나게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을 보고 우린 두말 않고 한 그릇씩 더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다음 한옥순 할머니는 한전의 밀양 송전탑 건설 때문에 겪고 있는 고초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할매들 8명을 막으려고 수백 명의 경찰들이 몰려온 이야기며, 한전에서 고용한 손자뻘 젊은 용역들에게 당한 폭력과 수모를 말씀해주실 땐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머니는 “신부가 되려면 현장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3년 동안 싸우면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이분들이야말로 하늘의 자식들이다. 현장을 모르고 신학만 배우는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십니다. 한옥순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지만, 왜 신학을 공부해야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날 밤 후배 신학생들과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데 한 신학생이 한옥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신학만 내세우지 말고 세상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야겠다고 조용히 고백하듯 말합니다. 아마도 그 후배는 진세를 버리고 이 몸마저 버려야 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신부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밀양 할매들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강정 주민들과 그저 함께하는 것이, 진세를 버린 사람의 참 모습임을 안 것 같아 그날 밤 저도 행복했습니다.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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