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정평위원장 농민주일 담화, 무분별한 FTA 추진 반대

▲ 이용훈 주교
농민주일(7월 21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도시에 사는 신자들도 ‘착한 생태사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도시인이 ‘착한 생태사도’가 되는 길은 “값싸고 보기 좋은 수입 농산물의 소비를 줄이고 이 땅의 농민들이 땀 흘려 길러낸 생명의 먹을거리를 기꺼이 애용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면서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외면한 채 경제성과 편리함만을 고려한 소비행태는 그리스도교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격이나 품질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생명의 가치와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나야 한다”며 교회가 강조해온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성당 사제관과 수녀원, 교회 내 병원과 유치원, 학교에서부터 ‘생명의 밥상’을 차리도록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이용훈 주교는 정부에 대해 “무분별한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멈추고, 기초농산물부터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격차를 감소해 사회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식량위기 시대를 지혜롭게 준비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제18차 농민주일 담화문

농민은 하느님을 닮은 착한 생태사도입니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 (레위 25,2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지난 1995년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우리 농민들을 위해 기도하며 실제적 관심과 도움을 베풀고자 주교회의가 제정한 열여덟 번째 해를 맞는 농민주일입니다.

오늘날 농민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이상기온 현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값싼 농산물의 무분별한 수입은 농민들의 살림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거나 맺으려는 나라는 무려 84개국입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우리 농업, 농민들이고 나아가 우리들 자신입니다. 성실한 노력으로 가장 정직한 대가를 기다리던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도시와의 극심한 소득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와 곤궁한 삶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비교우위론에 따라서 값싼 외국농산물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하는 정책을 폈고, 도시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농산물을 별다른 의식 없이 소비해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고작 24.3퍼센트(2011년 기준)입니다. 이제 하루 한 끼를 온전히 우리 땅에서 소출한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이상기후로 앞으로 닥쳐올 전 세계적 식량 위기 시대, 과연 우리가 소비하게 될 먹을거리가 안전할지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성하께서도 올해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분명히 밝히신 내용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농민들이 척박한 농촌 현실 속에서도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관점에서 품위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5항)을 만들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라는 말씀처럼 농민들은 농부이신 하느님을 닮은 ‘착한 생태사도’입니다. 물질이 모든 가치 기준의 척도가 되어버린 오늘날 농민들의 성실한 수고와 정직한 노동은 그 자체로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 옛날 하늘과 땅을 지으신 아버지 하느님의 노동처럼 성실한 수고로움에 기대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일구어가는 농민들은 신앙인들의 귀감이자 교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들의 수고로 힘을 얻은 생명체들은 “창조주시며 섭리자이신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풍요로운 초대”(요한 23세, 어머니요 스승, 144항)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부디 어려운 처지에서도 정직한 열매를 꿈꾸며 생명과 순환의 농법으로 땅에 기대어 사는 농민들이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외면한 채 경제성과 편리함만을 고려한 소비행태는 그리스도교적 정의와 윤리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농민뿐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 역시 ‘착한 생태사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은 값싸고 보기 좋은 수입 농산물의 소비를 줄이고 이 땅의 농민들이 땀 흘려 길러낸 생명의 먹을거리를 기꺼이 애용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결국 이러한 ‘생태적 소비’는 농촌을 살리고 우리 가정을 살리며,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땅의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격이나 품질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생명의 가치와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나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오랫동안 강조했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나아가 성당의 사제관과 수녀원, 특히 건강에 예민한 교회 내 병원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생명의 밥상’을 차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정부 역시 무분별한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멈추고, 기초농산물부터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격차를 감소해 사회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식량위기 시대를 지혜롭게 준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요한 23세, 어머니요 스승, 134, 140, 168항;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8항 참조).

오늘 농민주일을 맞아, 생명을 수호하는 농사일을 통해 이 땅의 창조물을 돌보고 있는 착한 생태사도인 농민 형제자매들의 용기에 격려를 보냅니다. 아울러 생명 농산물을 나누며 도시와 농촌의 아름다운 ‘나눔과 섬김’을 손수 실천하고 있는 신자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 번 농민주일을 맞이하는 농민 여러분과 신자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풍성히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2013년 7월 2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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