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지원센터 · 지금여기 공동기획] 예수를 따르는 경제, 사회적기업 6
시각장애인 위한 점자 · 전자도서 만드는 하상점자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기본권 보장이란 먼 이야기다.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여전히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거리에서 외쳐야 하는 형편이며,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도 일부 봉사자나 복지기관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지적 권리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이 있다. 사회적기업 도서출판 하상점자(대표 김호식)다.

가톨릭맹인선교회가 세운 하상장애인복지관, 그리고 하상점자

하상점자는 평신도 시각장애인들의 모임인 가톨릭맹인선교회가 설립한 하상장애인복지관으로부터 비롯됐다. 가톨릭맹인선교회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선교자료, 영성자료, 성가, 성경을 제공하는 활동을 벌이면서 하상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됐다. 복지관을 통해 녹음도서관, 학습지원센터 등을 마련하고 다양한 녹음도서와 점자자료를 제공하던 중, 점자도서 보급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만든 것이 도서출판 하상점자다.

종합복지관으로서 시각장애 관련 부분을 특화해 점자도서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일반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지면서, 기존 정보와 도서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초중고, 대학생을 위한 교재, 직장인들을 위한 전문 서적을 제공하기 위해 2008년 기존 센터 내 지식정보센터를 사회적일자리기업으로 전환했고, 2010년 12월부터 사회적기업이 됐다.

▲ 하상점자에서 만든 통합도서. 출판물 위에 점자가 찍힌 특수 스티커를 붙여 시각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제작한 도서 ⓒ정현진 기자

하상점자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크게는 전자도서와 점자도서 제작으로 나뉘는데, 학습교재, 전문도서, 세미나 자료, 아동통합도서, 아동촉각도서 등은 물론, 선거 공보물, 점자 명함,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제품 매뉴얼 등을 제작한다.

특히 주력하고 있는 데이지(DAISY,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도서는 세계 40여 개국이 사용하는 시각 및 독서 장애인용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를 통합해 각각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자도서다. 점자책의 경우, 책의 부피와 제작시간, 비용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음성지원이 되고 이동이 간편하며 필요할 때는 점자 출력도 가능한 멀티미디어 방식으로 기록한다.

이태혁 팀장은 올 6월부터 12월까지 국립중앙도서관과 LG상남도서관에서 의뢰한 이용자 신청도서를 데이지 도서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이번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데이지 도서 제작 사업에 참여한 경력도 있어, 현재로서는 하상점자가 가장 실력을 갖춘 곳이라고 자부했다. 올해 초에는 주문량이 너무 많아 설 연휴도 온전히 쓰지 못했지만, 그만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자료가 늘어나는 것이니 보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차별과 제한 없이 읽고 들을 수 있도록
점자책과 전자책 생산, 각별한 정성과 노력 필요해

시 · 청각장애인의 경우, 원하는 책을 자유롭게 빌릴 수 있는 전문 도서관이 부족하고 일반 판매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하상점자 민혜경 부장은 일반 학교를 다니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늘었고 직업군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들을 위한 환경 조성은 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막상 학교에 입학해도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다. 초 · 중 · 고등학교까지는 정부가 교과서를 제공하지만, 대학생의 경우 학기가 시작되어야 수업자료가 정해지는 상황에서 교과서 없이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하상장애인복지관을 비롯해 4곳의 학습지원센터가 생겼지만, 한 사람당 1년에 2권까지만 지원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권 이상이 필요하면 할 수 없이 개인이 유료봉사자를 구해서 10~20만 원의 제작비를 치러야 한다.

하상점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교육과 더 나은 일자리를 원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제한 없이 필요한 자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양질로 제공하는 것이다.

▲ 도서출판 하상점자 일꾼들. (왼쪽부터) 올 가을 마지막 수학 검정에 도전하는 점역교정사 전현정 씨. 이태혁 팀장, 하상장애인복지관과 하상점자의 산 증인 민혜경 팀장 ⓒ정현진 기자

민혜경 부장은 시각장애인 자료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으로는 하상점자와 도서출판점자 두 곳이 있고 일부 사기업에서도 생산하고 있지만, 사기업 자료의 경우 여러 모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점자책의 경우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가 나오지 못하니까, 시각장애인들은 주어진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고 점자 번역과 교정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일반 서적을 점자화해서 기계로 찍어내는 사기업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요. 비용도 적게 드니 가격 덤핑을 하게 되면 제대로 만들려는 기업은 사업적인 면에서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가 특히 많이 제작되는 시기는 선거기간이다. 공보물과 후보자 명함 주문이 쏟아지다보니, 선거철에만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업체도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이 지난 대선 때 제작된 공보물을 분석했는데, 결과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고 민 부장은 전했다.

신뢰로 만든 점자책, 점자책으로 전하는 신뢰
전 직원 점역교정 자격증 취득이 목표

현재 하상점자에는 대표를 포함해 22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에서 10명이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가졌다. 점자 번역과 교정을 볼 수 있는 전문 인력이다. 입사 때부터 자격증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전 직원이 점역교정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방침으로 정하고 지원하고 있다.

한글, 영어, 과학, 음악 부분 검정을 거쳐 1급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가진 전현정 씨는 5년 전 하상점자가 생길 때부터 함께했다. 점자책, 녹음책 교정을 모두 보고 있는 그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쉬운 책을 맡았으면 좋겠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보다 좋은 책이 번역되기를 바라게 된다면서 웃었다.

전현정 씨는 기존 점자도서나 녹음도서가 데이지 도서와 같은 전자도서로 더 많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만든 책을 서점에서 찾아봤지만 없었다”면서 일반인들을 위한 점자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정작 시각장애인들에게 절실한 책을 쉽게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그는 베스트셀러나 소설 외에도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분야의 책을 쉽게 구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톨릭맹인선교회, 하상장애인복지관으로 이어지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의 열매로 맺은 하상점자. 이야기 나누는 내내 이들이 강조한 것은 ‘신뢰’였다. 손끝의 감각과 소리로만 세상을 읽어야 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신뢰’를 전하는 것. 사회적기업으로서 가치실현을 통해 신뢰 받는 것, 좋은 일자리와 양질의 생산물을 통해 하상점자에서 일하는 이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것. 그들은 그 신뢰를 통해 볼 수 없는 이들에게도 세상의 빛을 전하고 싶어 했다.

▲ 점자 성경. 점자책은 점자의 특성상 일반 책보다 크기와 두께가 훨씬 크다. 일반 영한사전을 점자로 번역하면 108권이 나온다고 한다. 점자로 번역한 성경은 ‘잠언-지혜서’ 편만 성경책 두께, 크기는 약 2배다. 전현정 씨는 “녹음책으로 듣는 것보다 점자로 읽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동과 보관이 어렵다는 것이 큰 단점”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 도서출판 하상점자 홈페이지(www.hasangbraille.com). 점자 인쇄물이나 점자 명함 제작을 의뢰할 수 있고, 점자에 대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