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경 신부의 내 자랄 적에 ②
여섯 살, 일곱 살 때(1945-1946)

  

                                                                        

  막돌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이 작은 이야기를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바친다.

   다시는 세상에 사상싸움과

   전쟁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정호경 신부는 안동교구 사제이며, 현재 경북 봉화군 비나리에 살며 밭작물과 매실나무를 가꾸고,  책을 읽거나 나무판각과 글을 쓰신다.

 

• 할아버지 : 우리가 살던 집은 봉화경찰서 바로 앞, 경찰서장 관사 바로 옆에 있었어. 어느 날 오후 경찰서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새까만 옷과 모자를 쓴 경찰들이 총을 든 채 경찰서 주위를 둘러싸더니, 도랑이나 길바닥에 엎드렸는데, 어떤 이는 경찰서를 등지고 또 어떤 이는 경찰서를 향해 총을 겨누더니, 여기저기서 총질을 했어. 주위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어. 바로 우리집 앞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곧 알게 되었는데, 그날이 바로 광복절인 8월 15일이었어. 아버지 어머니도 손을 맞잡고 ‘해방이야, 이제 해방이 되었어요!’ 하며 기뻐하셨으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찰이 그날 한 행동은, 일제 때 못할 짓들을 많이 해 본 경찰이, 사람들의 습격을 두려워해서 그랬다는 거야.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거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날 봉화읍내에서 만세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 만일 만세행렬이 있었다면, 나도 분명히 나갔을 텐데. 아마도 모든 읍민이 숨을 죽이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경찰의 총질 때문이었을까?

• 슬기 : 해방되던 해 12월에, 모스크바에 미국․영국․소련외상이 모인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중대한 결정을 했잖아요. 조선은 앞으로 최고 5년간 미국과 영국, 중국, 소련의 신탁통치(특정나라가, 안정적인 정치질서 수립 때까지, 유엔의 위임을 받은 몇 나라에 의해 통치되는 것)를 하겠다는 거였지요.

• 할아버지 : 그 결정 때문에 잠복해 있던 좌우익 갈등이 심각해지게 되었어. 처음엔 북이나 남이나 국민의 정서에 맞는 신탁통치반대(반탁)을 주장했지. 40여년 나라 뺏긴 서러움을 격은 뒤라, 당장이라도 독립된 나라를 세우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머지않아 북의 김일성이 소련의 지령을 받고 친탁(신탁통치찬성)으로 돌아섰어. 찬탁이다, 반탁이다, 좌익이다, 우익이다 난리였고 혼란스러웠지. 지금 차분히 생각해보면, 국민의 정서로는 반탁이 당연하지만, 길어야 5년만 참고 준비하면 통일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 남의 힘으로나마 일제 압제에서 해방된 민족이,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으니 통탄할 일이지.

• 슬기 : 해방 이듬해 여름, 이승만이 남한단독정부 수립계획을 발표하게 되고…… 그리하여 철천지한인 분단이 착착 진행되었거든요.

• 할아버지 : 우리집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야. 아버지는 직장인 금융조합을 그만두시고,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에 나타나셔서 어머니랑 수군수군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가끔 어린 우리를 껴안으시고 우시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아버지랑 행복하게 살 거라고 하셨고, 또 어떤 때는 밤에 그림동화책을 주시고 어디론가 사라지시기도 했지. 그즈음 아버지가 주신 <집없는 천사>인가 하는 그림책을 보고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좌익(사회주의) 운동을 하신 거야.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밤중에 잠시 들러가시던 아버지, 우리집 분단은 그렇게 시작되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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