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읽는 헌법 - 8]

슬아, 너희 학교에도 ‘방송부’와 ‘교지 편집부’가 있지? 혹시 학내 언론이라고 불릴 만한 동아리도 있니?

거의 모든 중 · 고등학교에는 방송부와 교지 편집부가 있어. 하지만 청소년들이 학교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신문과 방송을 제작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아. 익산의 청소년들이 힘을 모아서 발행하는 <벼리>라는 신문처럼, 청소년 스스로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언론과 몇몇 ‘인터넷 언론’들이 있다만, 아주 소수인 것 같네.

슬아, 혹시 너는 학교에서 네 글과 생각이 심사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기분 나빴던 적이 있니?

슬아, 헌법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그 허가와 검열을 금지하는 규정도 두고 있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된단다. 민주주의는 사회 내 여러 다양한 사상과 의견이 자유로운 교환과정을 통해 사회 곳곳에 전달되고,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가능하거든. 또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스스로 공동사회 일원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는 가장 유효하고 직접적인 수단이 바로 언론과 출판이잖아. 결국, 언론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겠지? 조문을 한 번 볼까?

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가져요.
제2항 언론 ·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지요.
제3항 통신 · 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합니다.
제4항 언론 ·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 돼요. 언론 ·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요.

언론 ‧ 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조문이란다. 혹시 눈에 확 들어오는 조문이 있니? 오빠는 헌법 제21조 제2항의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건 검열과 허가가 금지된다는 거야. 그러면 검열은 뭐고, 허가는 뭘까?

헌법재판소는 검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

보통 영화, 음반, 비디오물의 사전심의나 등급분류제도와 같은 것들이 사전검열이 아닌지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 그러면 허가는 뭘까?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판시(헌법재판소 2001. 5. 31. 2000헌바43등)했어.

언론의 내용에 대한 허용될 수 없는 사전적 제한이라는 점에서 위 조항 전단의 ‘허가’와 ‘검열’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할 것이며 위와 같은 요건에 해당되는 허가 · 검열은 헌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허가의 개념을 검열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내용’의 규제에 국한하는 것으로 파악한 거야. 곧, 표현의 내용이 아니라 방식, 예컨대 시간, 장소, 방법 같은 것들을 제한하는 ‘내용중립적인 규제’의 경우에는 허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지.

슬아, 한 번 너의 일상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학생들은 보통 숙제를 하면 선생님들께 검사를 받잖아. 이것이 허가나 검열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아. 교육 과정에 불과한 거지, 여기에 언론과 출판 자유의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학교가 규제를 한다면, 거기에는 허가나 검열의 문제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청소년들이 특정한 청소년 인권 문제들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자치 언론을 꾸리는 일을 할 때 선생님들, 또는 교장 · 교감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고, 방해를 받는다면, 헌법 제21조에 반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

헌법재판소의 판시에 따르면 허가와 검열의 주체는 행정권자여야 해. 국 · 공립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행정권자일까? 맞지. 발표되기 전의 예방 조치로써, ‘검사’를 해서 내용이 부당하면 발표하지 못하게 학교에서 통제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검열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 같고. 더욱이 그렇게 허가받지 못한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게 실제로 통제했다면, 그건 정말 헌법에서 금지하는 ‘사전검열’이 맞는 것 같아. 충격적이지 않니? 그건 헌법상 금지되는 건데 말이야.

오빠 이야기를 좀 해볼게. 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운영위원회의에 학생 대표도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학내에서 설문조사도 하고 친구들이랑 안양 시가지에서 피켓 시위도 했어. ‘초중등 교육법 개정 운동’을 벌인 거야. 학교를 운영하는 데, 당연히 학생대표도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오빠는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당시 초 ‧ 중등 교육법에서 지역대표랑 학교대표, 학부모대표는 규정해 놓고 학생대표는 쏙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래서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글도 남겨서 교육감 면담 요청도 했었지. 그랬더니 1학년 말 즈음에 교육감 면담 대신, 교장 선생님께서 오빠를 한 번 부르시더라고. 그런데 그때 당시 교장 선생님께서는 오빠가 스스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나중에 들어보니 오빠의 담임선생님과 동아리 지도 선생님께서 그 일로 곤욕을 치르셨다고 하더라고. 오빠는 그 일 이후로 교육청에 교육감 면담을 신청하지 않았어. 그 이후로 학교 안에서의 활동은 포기하고 오히려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려서 활동을 했지.

슬아, 오빠에 대한 당시 학교(교장 선생님)의 행동은 오빠와 친구들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인 제한 아니었을까?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해야 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오빠와 토론을 하고 오빠를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오빠의 의견이 교육청 사이트에 올라가지 않도록 오빠에게 요구했던 것이니까.

슬아,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고등학교 3년을 거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청소년들, 특히 학생들은 ‘얌전히’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학문 체계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기계’에 불과할까? 오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선, 교과서 자체가 얼마나 유의미한 것일까? 이미 알고 있는 교과서들도 내용 자체가 ‘틀린’ 경우가 너무 많고, 논쟁적인 내용들도 많고, 가변적이잖아. 예컨대 ‘문학’의 경우에는 시험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특정한 해석론을 외운다는 것이 너무 비참하지 않니? ‘도덕’의 경우에도 전두환 정권의 유산으로서 ‘착한 노예’를 기르기 위한 교육에 불과하고 긍지 높은 자유인을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지. 결국 청소년들에게 ‘교과서 읽고 외우기’만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고자 하는 언론 ‧ 출판의 자유를 가능한 한 제한하려는 어른들은 ‘위헌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읽는 것도 ‘공부’지만, 자신의 소신을 용기 있게 발언하는 것을 ‘실전’으로 배우는 것도 ‘공부’라는 점에 대해서도, 우리 고민해 보자.
 

 
차진태 (모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이며, 구속노동자후원회 자문위원, 대학원자치회 대표를 맡고 있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배동교육(청년교육)을 받은 회원이며, 서울대 가톨릭 기도 모임 ‘피아트(FIAT)’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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