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흘러가는 노래 - 5]

한OO 씨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려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멋진 인상을 가진 그가 서울에서 산골 마을로 내려온 것은 20여 년 전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지 위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하면서 검사해보니 심장질환과 대장암, 식도암에 당뇨까지 온몸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던 그는, 병원 문을 나서면서 아내가 알고 있던 절에 내려와 발병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씨 부부는 절 근처 마을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한 씨의 부인은 수차례 거듭된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노심초사했던 남편의 병간호 과정을 말하면서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씨의 부인은 텃밭에서 캐온 감자를 삶아 남편에게 건네주며, ‘그래도 이만하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OO 씨는 공기업의 지역 본부장을 지낸 인물로 기업체 경영 진단 전문가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의 간부로서 탄탄한 승진을 거듭하며 기업체 사장들과의 잦은 술자리를 일과처럼 즐기고 살았다. 주말에는 골프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였으니 일주일에 몇 차례나 술과 유흥이 거듭됐다.

그러다가 3년 전 급성 백혈병이라는 암 진단을 받았다. 골수 이식을 기다리다가 깊은 산골에 내려온 그는 지금은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는 정상치의 혈액으로 회복되었다. 휴직 중의 그의 주된 일과는 오드리 헵번처럼 예쁜 마누라와 함께 땀 흘리며 텃밭을 가꾸고, 자식처럼 키우는 두 마리의 개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순전히 도시 여자인 아내가 가끔 문화적인 차이로 이웃과 갈등을 겪기는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이렇게 좋은 삶을 평생 누려보지 못했을 거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복직하여 출근한 그가 어느 날 서울 출장을 다녀오더니, 서울에서 돌아와 집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더라고 고백한다.

ⓒ박홍기

이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즈음의 톨스토이가 생각났다.

“나는 50세도 되지 않았다. 사랑하고 있었고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귀여운 어린애와 광대한 영지와 명성과 건강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나의 생활이 정지되었다.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살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진리를 알기를 바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인생은 광기라고 하는 것이 진리였다. 심연에 이르러서 자신 앞에는 죽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뚜렷해졌다. 나를 인생 밖으로 밀어내려는 힘이 나보다 강했다. 그것은 전에 가진 일이 있는 인생에 대한 갈망과도 같은 갈망이기도 했다. 나는 이 갈망에 너무 빨리 양보하지 않도록 자신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행복하였던 나는 자신으로부터 밧줄을 숨겼다. 저녁마다 혼자 옷을 벗는 거실의 옷장 사이의 들보에 목을 매달지 않기 위해서였다. 40년 동안 한 일과 고통과 발전, 그 결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다니! 아무것도 없다. 내 뒤에는 썩은 고기와 구더기 밖에 남지 않으리라.” (로맹 롤랑, ‘톨스토이의 생애’에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던 톨스토이는 자연 속에서 일하는 민중의 생활을 보며 자신의 고뇌에서 구제되었다. 신앙의 힘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단순한 삶 속에서 삶의 의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톨스토이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앞에서 소개한 두 사람의 삶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두 부부는 우리 부부와의 인연으로 가톨릭에 입문하여 신앙의 힘을 찾아가고 있다. 이OO씨는 주객이 전도된 종교의 모습이 싫다며 망설이고 있지만 자신의 아내가 택한 길은 막지 않는다. 아마도 성직자들의 교만이나 위선에 대한 상처가 남아있는 것 같다.

가끔 그들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순식간에 지나간 짧은 시간일 뿐인데도, 마치 천년만년 누릴 듯이 욕심의 노예가 되어 몸을 돌아보지 않고 가정도 소홀히 하며 지냈다고 회고한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자신들이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아프게 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더 멀리 가기 전에 인생의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과 함께 우리들의 본향을 노래하며 앞 산 골짜기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본다. 하얀 날개옷을 입은 천사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구름에 달 가듯이’를 당호로 지은 이OO 씨가 집 옆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죄짓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었다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린 겁니다. 세상풍조라고 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허깨비에 속지 않고 인간이 살아야 할 길을 따라왔다면 복 중의 복을 받은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에요. 이상한 일이죠?”
 

이장섭 (이시도로)
아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주님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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