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다윗의 돌팔매]

일을 돕고 있는 안나푸르나의 한 소녀 (박오늘 사진)

지난달 히말라야 산맥 남부에 위치한 너무나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나라 네팔에 다녀왔다. 방문한 대부분의 곳에서 아침이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하얀 산맥을 보는 신비함을 즐길 수 있었다. 열흘 동안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농촌지역은 빈곤한 도시지역보다 더 빈곤하면서도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농민들은 거의 모두 맨손으로 논일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농촌지역의 생활과 음식은 매우 소박했지만 왕정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잘 짜여진 농민조직의 활동력 등은 은근히 풍요로운 분위기로 느껴졌다. 2년 전까지 내전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해 보였지만, 수면 밑에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힘겹게 경주되고 있는 것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민주화와 왕정복고를 몇 차례 겪는 우여곡절과 최근 들어 농민을 중심으로 반봉건투쟁을 주도한 마오주의 반군의 영향력이 확대되던 네팔은, 2006년 2월 봉건 왕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 봉기를 결정적인 계기로 해서 민주화 세력의 주도 아래 민주공화정으로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정치협상을 통해서 올해 5월 평화롭게 민주공화제로 이행한 새로운 네팔은 인구 40% 이상을 차지하는 빈곤층과 일반 서민들이 한편으로 새로운 희망을 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왕정이 남긴 산적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네팔의 모든 개혁 문제는 토지문제로 통한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지역의 한 마을에서
방문하면서 만나본 민주화 관련 정치권과 민간 지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는 문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네팔의 모든 개혁 문제는 토지문제로 통한다는 말을 가장 먼저 들었다. 인구 70%가 농업생산에 의존하고 있고 대다수의 농민이 소작, 반소작, 임대농, 노예농인 까닭에 농지를 실제 농가 중심으로 몰수, 재분배하는 과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풍부한 산악 수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력에너지 개발이 미비하여 전력난이 심했는데 이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새로운 각계각층을 골고루 대표하는 제헌의회가 선출되어 헌법을 입안하고 있는데, 어떤 연방체제와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선거제도와 정부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국가적 일체감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가 가장 큰 쟁점이라고 한다. 크게는 8개, 작게는 70여개의 언어집단과 5개 이상의 주요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간단치 않은 듯 했다.

그리고 삼림을 파괴하지 않는 친환경적 고생산 농업기술 개발과 유통 인프라의 개발도 중요하다고 하고, 또 오랫동안 내전에서 총을 겨누고 싸우던 왕당파 정부군과 반군의 군사통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여기에 내전에서 민간인의 살상이나 불법 납치, 고문에 관련된 양쪽 군 책임자의 처벌 문제도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지역별 출신별 직업별로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는 카스트제도의 혁파 역시 중요하고도 힘든 문제라고 한다.

한국과 네팔, 그리고 이주노동자

한국은 네팔과 오랫동안 그렇고 그런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데, 최근 네팔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도 크게 늘고 있고 일자리나 유학 또 연구 관련으로 한국에 오는 네팔인들도 크게 늘고 있다. 네팔의 큰 도시에서는 거의 모든 거리에서 한국 전자업체의 광고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수력발전과 도로건설을 위해 무상원조도 미미하게 제공해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는 6천여명 이상의 네팔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절반가량이 미등록노동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가 한국의 못된 문화와 노사관계로 핍박받고 있으며, 최근에 환율폭락과 경제위기로 더욱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특히 올겨울 눈물겨운 사연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한국은 기괴한 ‘강부자’ 정권이 들어서서 정부 차원에서는 네팔과 같은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거나 이주노동자에게 따뜻한 태도는 보일 것 같지 않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네팔의 민주화나 농업개발을 지원할 길이 많은 듯 하다. 농촌지역의 학교나 교육 지원, 농기계 지원, 시민단체와 농민 조직을 위한 컴퓨터 지원 같은 것은 한국의 시민사회 수준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너무나 멋진 히말라야 트래킹을 즐기는 한국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고난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만큼, 네팔의 민주화에 대한 지원도 늘어났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이대훈/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평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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