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매튜 본 감독, 2011년작

▲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매튜 본 감독, 2011년작
방대한 엑스맨 시리즈의 밑그림

1984년에 유리 겔라가 한국에 와 텔레비전에서 한 판 쇼를 벌였다. 고장난 가전제품도 고치는 등 몇 가지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숟가락 휘는 것은 나도 놀랐다. 같이 따라하면서 나도 조금은 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 사기였다고 하지만. 그런 낮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이 영화에서는 돌연변이라 부른다.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초능력을 갖게 된 돌연변이와 보통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다. 한때 동료였던 찰스와 에릭(매그니토), 그들 각각을 따르던 돌연변이의 대격돌이 주요한 내용이고, 그 사이에 돌연변이가 갖는 다양한 함의가 살며시 비쳐진다. <엑스맨: 퍼스트클래스(X-Men: First Class)>는 엑스맨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며, 어떻게 엑스맨들이 태동하게 되었고, 왜 찰스와 매그니토가 갈라지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에릭은 유태인이었고, 한때 찰스와 절친이었다

사실 매그니토, 에릭은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인간이다. 그는 유태인으로서 나치 시기에 수용소에 끌려가는데 그때 그의 초능력이 드러난다. 다 알다시피 그의 능력은 금속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또 다른 돌연변이 악당 세바스찬 쇼우는 어린 에릭의 초능력을 훈련시킨다. 세바스찬 쇼우 앞에서 동전으로 실험을 하는 중 제대로 하지 못해 그의 어머니는 사살을 당한다. 그때서야 에릭의 괴력이 발휘된다.

쇼우는 에릭에게 그 동전을 쥐어준다. 전쟁이 끝나고 에릭은 복수에 나선다. 먼저 스위스 비밀은행을 찾아가 수용소에 있던 나치의 정보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거기서 자신이 있던 수용소의 나치 잔당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세바스찬 쇼우를 찾아야 한다.

훗날 엑스맨 시리즈에서 매그니토에 맞서는 찰스 프랜시스 자비에르, 프로페서 X는 미국의 유복한 집에서 자라난다. 찰스는 남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의도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 우연히 집을 찾아온 레이븐(미스티)을 쭉 돌보면서 유전학 교수로서 돌연변이를 연구한다.

세바스찬 쇼우는 미 · 소 양국을 오가며 군 당국자들을 통해 핵무장을 자극한다. 미국에게는 터키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도록, 소련에게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도록 협박한다. 그의 능력은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여 불멸을 얻는다. 그리고 그 빨아들인 에너지를 파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에릭은 쇼우에 대한 복수를 위해 찰스와 손을 잡는다. 이 둘은 CIA와 협력해 자신들과 같은 돌연변이들을 모으고(그때 울버린도 찾는데 “둘 다 꺼져” 한다) 초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한 체계적 훈련을 한다. 에릭은 찰스의 도움을 얻어 분노로만 발현되었던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훈련을 한다. 즉 분노와 평정을 조정해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킨다. 이때 에릭과 찰스는 깊은 우정을 키워간다. 사실 엑스맨 시리즈 전체에서 이 둘은 적대적으로도 맞서지만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고, 가끔 한때 우정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실제로 3차 대전 일보 직전까지 간 쿠바일 미사일 위기를 배경으로 이어진다. 러시아인들은 쇼우에게 생각을 읽지 못하게 하는 헬멧을 만들어준다. 찰스와 에릭을 중심으로 돌연변이들은 가까스로 쇼우의 음모를 막고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

에릭은 쇼우가 자신을 실험했던 그 동전으로 쇼우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그가 썼던 헬멧을 쓰면서, 복수에 이글거렸지만 선한 눈빛의 에릭에서 이제 매그니토가 된다. 그 헬멧은 에릭이 찰스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선을 그으면서, 훗날 엑스맨 시리즈 내내 결정적 악인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 에릭은 미 · 소 양군이 쏜 미사일을 그들에게 되돌린다. 그의 인간을 향한 불신과 증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종료되면서 이제 돌연변이는 갑작스럽게 미 · 소 양국 공동의 적이 된다. 에릭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미 · 소 양군을 향해 날린다. 찰스는 그들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에릭에 맞선다. 이때 에릭은 말한다. “명령에 따르던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았어.”

이 말은 참 의미심장한데, 마치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자 아이히만에 대한 글에서 ‘악의 평범성’을 논하는 맥락과 통한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심각한 범죄에서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기소유예를 받은 사건도 떠올랐다. 그로 인해 자위를 위한 또 다른 악이 정당한가는 뒤로하고, 바로 그 지점이 에릭의 상처이자 인간에 대한 불신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에릭은 심각한 역사 속의 피해자임에 분명하다.

핵의 자식들 돌연변이, 공존과 분리의 기로에서

이 영화에서 돌연변이는 핵 이후 방사능 때문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한다. 이들은 인간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서럽게 살아왔으며, 언제나 위협적 존재들로 오해를 받기 일쑤다. 인간들의 시선도 문제이지만, 타인과 다른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화 속 돌연변이는 현실 사회의 온갖 소수자들을 연상시키는데,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해 여러 대응 양상을 보여준다.

자신이 돌연변이라는 걸 끔찍하게 생각한 행크 맥코이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더욱 심해진다. 레이븐은 자신의 파란색 피부를 경멸했지만 맥코이를 향해 “돌연변이는 자랑스러운 거야”라고 말한다. 에릭이 주장하는 돌연변이의 우월성은 쇼우가 “기껏 파란 눈에 금발머리”냐며 나치의 유전학적 발상을 비꼬던 맥락과 비슷하다. 찰스는 돌연변이가 인간 사회에서 잘 어울릴 수 있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그래서 훗날 프로페서 X가 되는 찰스는 돌연변이 훈련소를 세워 외따로 힘들게 살아가는 돌연변이들을 모은다.

▲ 찰스와 에릭,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그 둘의 잠시 동안 같았던 길과 길고도 지루한 다른 길.

하여튼 돌연변이는 앞서 이야기한 미사일 공격에서 볼 수 있듯이 기껏 이용해먹고 쉽사리 용도 폐기될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이미 잘 알았던 에릭이 다른 돌연변이를 선동할 때 했던 “사회는 우리를 거부한다. 우리만의 사회를 만들자”는 말은 돌연변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일 전제했을 때 정당했는지 모른다. 에릭은 쓰러진 찰스를 안고 “다 같이 힘을 모아 서로를 지켜주자!”고 한다. 그러나 찰스는 서로 갈 길이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토록 절친했던 친구들은 돌연변이와 인간의 관계 모색에서 이견 때문에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동안 뻔하기 그지없던 찰스는 ‘선’이고 에릭은 ‘악’이라는 도식이 석연치 않게 된다. 일종의 통합주의와 분리주의의 대립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모든 분리주의는 차별과 억압에 따른 결과일 수 있기에 함부로 부정적으로 몰기 힘든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조금 더 질러보자면 마치 1960년대 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맬컴 엑스의 모습을 교차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왠지 에릭, 매그니토에 더욱 초점을 두게 되는데, 볼거리 많은 SF영화가 알고 보면 기가 막힌 정치영화일지 모른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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