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대연 정체성 혼란과 그 이유

요즘 서가대연(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서가대연이 망했다’는 말도 종종 들린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관련 동아리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더니, 그래서일까?

하지만 서가대연이 전반적으로 회원 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매년 여름마다 200명 가까운 서가대연 회원들은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와 연대하여 생태농활을 떠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서가대연 회원들은 익지도 않은 농사일에, 마을회관에서 9박10일 동안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발로 고생을 자처하고 있다.

사정이 되지 않아 농활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을 고려하면 회원 수로 위기를 느낄 수준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회원이 없는 문제가 아니다. 서가대연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다.

서가대연의 위기는 사람 수의 부족이 아니라 공통기반이 없기 때문

“수업이 없을 때 갈 곳이 없었는데, 마침 가톨릭학생회는 활동이 별로 없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올해 초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한 어느 1학년의 말이다.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렇게 ‘그저 쉴 곳’을 찾아 동아리 방문을 두드린다. 동아리 방에 비치된 컴퓨터를 쓰거나 잠을 자기 위해 동아리 방을 이용하면서도 정작 정기모임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 회원들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회원들이 서로 공감하는 신앙의 공통기반도 약할 수밖에 없다.

▲ 서가대연 53대 의장 김현욱(야고보)
서가대연 의장 김현욱(‘07, 고려대)씨는 “신앙생활의 기본은 예수의 삶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라며 “가톨릭학생회 안에서 (예수의 삶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 판단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회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예수의 삶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성경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도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신세한탄, 자기위안 위주의 나눔으로만 흘러가버려 정작 예수의 삶에 대한 이해에 실패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예수의 삶을 기준으로 하는 회원들 간의 공통기반도 만들기 어렵다.

서가대연 부의장 고현민(‘07, 숙명여대)씨는 “성경내용과 관계없이 다들 이번 주에 힘들었던 것들을 나열하다 모임이 끝나곤 한다”고 지적했다. 밥상을 차리려고 해도 재료가 없어서 엄두를 못내는 것처럼, 서가대연의 회원들이 자신들의 활동방향을 정하려고 해도 기본적인 꺼리가 없다는 것이 현재 중앙집행부들의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어려움이다.

활동은 신앙고백에서 출발해야

그렇다면 서가대연의 정체성 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서가대연에서 정체성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서가대연이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이란, 신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 없이 서가대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 의장이었고, 서가대연에서 간사로 일했던 고동환(‘91, 한양대)씨는 신앙고백과 관련된 서가대연 정체성 위기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가톨릭학생회 내부에서 있었던 '외피론 논쟁'을 그 예로 꼽았다. 외피론 논쟁이란 신앙을 외피로 두르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등 다른 사상이 활동의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은 이들에 대해 문제제기했던 당시의 논쟁을 일컫는 말이다.

“서가대연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부터 활동의 방향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다른 한 축에는 자신의 활동의 중심을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 등 외부논리에 두었던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다른 회원들은 이 둘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쪽은 외부논리를 활동의 중심으로 놓으면서 그 언어도 그대로 끌어왔고, 다른 한쪽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활동의 중심이 신앙고백이 아니었던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면서도, 외피론 논쟁 덕분에 얻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가대연의 미사양식이 달라진 점, 대학 가톨릭학생회들의 전례가 다양하고 활발해진 점, 그리고 전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 전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례위원회가 중앙조직 내에 만들어진 것이 외피론 논쟁의 성과들이다.

▲ 52차 서가대연 총회

동의되지 않은 활동방향과 팜플렛 수준의 동원

서가대연 중앙집행부가 활동에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서가대연의 이번 총회에서, 서가대연의 목적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사회 복음화 실천 활동을 벌여낸다’로 규정한 회칙이 도마 위에 올랐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관련기사-53대 서가대연의 정체성을 묻다).

이번 53대 서가대연의 정책국장격인 문대훈(‘07 고려대)씨는 “과거의 변혁운동은 구체적인 감이 있다”며 구체적인 면을 긍정하면서도 “현재는 회원들이 예수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포괄적이더라도 논의가 활발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가대연 동부지구 주체였던 계혜정(‘02, 한양여대)씨는 “서가대연 활동 당시 운동에 동원되었던 느낌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서가대연 집행부는 이라크파병반대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회원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도 아니었고, 중앙집행부 내에서도 참여수준에 대한 조율이 부족했다.

그는 당시 서울 동부지역 학교들을 대표하고 있었기에 “'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지 못하냐'고 질책받는 느낌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A4 한 장 정도 성명서를 주고는 '이걸 보면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아?'라고 재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머리로 판단할 수 있는 여유를 뺏긴 느낌이었다.” 그는 파병이 문제라는 생각이 있어서 참여했지만, 참여할수록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

다른 한편으로, IMF이후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개인들이 파편화되고 있는 캠퍼스 분위기에서 가톨릭학생회만 노아의 방주가 될 리는 없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경쟁이 심해지면서 ‘신앙에 의한 가치 판단’ 같은 것은 어렵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박동욱(‘01, 고려대)씨는 변해가는 분위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학생운동이 더 의미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대훈씨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동아리는 안식처 개념이기도 해서, 밖이 너무 각박한데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며 그런 이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만 계속 흘러가면 발전이 없을 것”이라며 회원들이 인식을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서가대연, '평화'를 통해 희망을 꿈꾸다

하지만 서가대연의 정체성이 위기라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장에 공통기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1월 총회까지 의장을 맡았던 서윤호(‘06, 광운대)씨는 서가대연의 회원들과 '평화'를 주제로 많은 사업을 벌였다. 그는 서가대연에서 ’평화‘만큼 보편적으로 공감 받는 주제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서가대연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공통기반으로 논의를 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현 의장인 김현욱씨 역시 “평화가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서도 “단지 전쟁반대 뿐만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평화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11월 13일 기륭전자 신사옥 앞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추모예배. 사회를 보고 있는 서가대연 52대 의장 서윤호(바오로)

다른 단체들이 서가대연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는 점도 서가대연에는 희망적이다. 이미 우리신학연구소와 서가대연은 몇 차례의 공동기획강좌를 열었다. 예수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서가대연 회원들을 위해 커리큘럼을 만드는 작업도 함께하기로 했다. 고동환씨 역시 공동강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회원들에게 예비자 교리를 재교육하겠다는 53대 서가대연의 정책을 재고하기 바란다면서 “‘역사적 예수연구’와 해석학에 관련된 강좌를 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역사적 예수연구’는 2000년 전의 예수가 어떠했는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해석학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이런 분야의 강사를 초청하는 데에 우리신학연구소가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자체 교육에 서가대연 회원들을 참여시켜 참가자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전례문화를 전수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합정동의 공동체 ‘밀알의 집’을 개방하여 서가대연 회원들이 모임공간으로 쓰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