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두어 주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잔인한 4월에 치를 떨며 알레르기성 소양증으로 수 주간 신고를 치르고 난 게 겨우 두어 달 전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한 달은 단지 가려움증에서 벗어난 해방감만으로도 쾌적했다. 그런데 마감을 앞둔 번역 작업에 좀 몰입하다 보니 보름 전부터 지병인 3차신경통이 슬슬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편두통 약을 먹고 동네 지압원에서 어깨 마사지를 하고 비상대책으로 압봉치료까지 받았건만 쉽게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집안 행사에 가서도 보탬은커녕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재미삼아 찾아간 어느 점집, 아니, 역학원―점 보러 왔다고 했다가 혼났다―에서 내 이름이 고독하고 고달프고 고집스럽다며 3고의 불운을 역전시킬 새 이름을 권한 것이 앞뒤 글자만 서로 바꾼 ‘명자’였다.

하지만 시인 아버지가 지어주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본명을 포기할 수 없어 그대로 살아왔는데, 고독하고 고집스러운 건 나 자신이 별 불편을 못 느끼니 상관없으나 늘 고달프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사실 인생고해라고,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지 않은들 세상살이 고달픈 줄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나로선 중년 이후 절절히, 생생하게, 줄기차게 겪고 있는 고달픔이 있으니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거쳐 온 질병의 역사는 가족 병력과 얽혀 있어, 아버지와 두 오빠가 모두 앓았던 폐결핵에서 시작한다. 20대 초반에 발병해 2년여 투약으로 완치된 줄 알았던 게 20대 중반에 재발, 또 2년여 약을 먹고 잠잠해졌다가 신혼 초에 다시 발병하여 선지피를 토하는 바람에 미안케도 남편은 일찌감치 팔자 고치는 줄 알았을 거다.

현대 의학 덕분에 그도 잘 치료하여 30대를 무사히 넘겼으나 40대 초반에 3차신경통이란 듣도 보도 못한 병통이 찾아들었다. 게릴라 기습처럼 느닷없이 닥치는데 귀 뒤쪽 후두부를 전기침처럼 쑤셔대고 전기톱처럼 저며 대는 그 통증은 필설로 다할 수가 없다. 방치하면 안면근육 마비가 오고 얼굴이 돌아가 밥 먹기조차 힘들어 진다. 하여간 그 고약한 병증을 15년 넘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빚쟁이처럼 달고 사는 동안 갑상선 암 수술을 하게 되어 5년여에 걸쳐 항암치료도 해야 했다.

이후 편두통, 견비통, 좌골 신경통 따위는 연중 단골손님으로 모시고 사는 중에 근년 들어 묘한 귀빈을 맞게 되었으니 다발성 근염이라는 난치성 희귀질환이다. 이 병에 ‘묘한’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완치의 수단이 없다고 알려진 중병인데도 남들은 당사자가 병을 앓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나 정도 초기 상태에서는 겉으로 보긴 멀쩡한데도 사지의 근육이 점점 훼손되고 무력화되어 노상 넘어지고 바닥에서 단번에 일어나거나 높은 데 있는 물건을 꺼내지 못하고 병마개를 제 힘으로 열지도 못하는 등 일상생활이 꽤나 불편하다는 게 그 대표적 증상이다. 심해지면 장기 근육까지 훼손된다 하니 몸서리쳐질 일이지만 다행히 그 전에 명의 지인의 처방으로 발병 전 상태의 6할 정도는 근력을 회복하였다. 한창 안 좋을 때 다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류마티스 내과에서 처방한 스테로이드 복용을 수개월 했는데 부작용이 너무 커서 한방으로 전환한 것이다.

길에서 다른 이들 놔두고 하필 나한테 다가와 만두집이나 찐빵집 위치를 물어보는 이들이 생길 정도로 풍선처럼 부푼 얼굴을 하고 있을 당시엔 사실 많이 비감스러웠다. 이렇게 더 살아서 뭘 하겠나, 싶은 절망감에 나 없는 삶에 대한 준비가 돼 있을 리가 없는 자식과 남편의 처지를 떠올려 보며 한숨짓기도 했다. 그런 즈음엔 3차신경통 따윈 사소하게 여겨져서 기습을 당했을 때도 그 통증을 대수롭잖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그 3차신경통이 또 문제인 것이다. 그것도 전면전으로라도 갈 듯이 육박해 오고 있는 이 심상찮은 느낌……!

엊그제도 나는 번역 작업을 하던 중 통증의 강도가 슬슬 높아지려는 걸 감지하고 컴퓨터 앞을 물러나려다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를 클릭했다. 그 카페엔 휴식과 명상에 좋은 음악들이 더러 올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음악방을 클릭하려다 자유게시판에 새로 올려진 영상을 발견한 나는 ‘실제 태양계의 움직임’이란 제목에 끌려 그것을 클릭했다. 누가 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태양계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한 동영상물인데 그것을 보며 나는 잠시 머리의 통증을 잊었다.

시속 78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평면도로 봤을 때와 달리 입체도로 보니 단순히 회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태양은 마치 혜성처럼 그 후류에 행성들을 끌고 다니며 어딘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태양도 행성들도 소용돌이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과학용어로는 그것을 볼텍스(vortex) 운동이라고 부르는 듯, 그 동영상은 계속해서 은하계, 고사리, 장미꽃, 유전자 구조, 회오리바람 등을 보여주면서 모든 생명은 이렇게 볼텍스 운동을 한다고 자막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이 이러했다. “우주 공간 속을 달려가면서 이 사실을 생각하시라.”

우주 공간 속을 달려가면서 생명의 소용돌이 현상을 생각하라니! 나는 순간 머리에 전기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3차신경통이 주는 전기고문적인 느낌이 아니라 꺼져 있던 전구에 불이 환하게 밝혀지는 느낌이었다.

아, 내가 어디론가 소용돌이치며 나아가고 있구나. 그래서 이리 몸살을 하는구나. 질병도 존재의 운동이구나. 내 존재를 평면도가 아닌 입체도로 조망하면 그렇겠구나. 나는 이제껏 인생을 오르고 내리는 포물선이거나 돌고 도는 순환의 원으로만 파악했었는데, 이렇게 소용돌이치며 나아가는 세계가 있구나. 나는 하나의 생명이니 내 세계도 그러하겠구나. 내 머리 속에서 만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명자도, 개똥이도 똥개도 다함께 크나큰 생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녹아들었다. 다함께 소용돌이치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이동해 가고 있었다. 오메가 포인트*가 곧 눈에 잡힐 듯 했다. 아득한 듯 가까웠다. 광대한 듯 조밀했다. 심오한 듯 단순했다. 온 천지가 하나인 듯 따로인 듯 소용돌이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 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자연계의 복잡성과 인류의 인지 능력은 하나의 궁극적 상태, 그가 ‘오메가 포인트’라고 정의하는 종착점으로 나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전 우주와 인간의 의식이 함께 완성을 향해 진보하고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졸다가 전화 벨 소리에 깨어났다. “얘, 별일 없니? 네 꿈을 꿨어.” 친구가 수화기 너머로 걱정스레 안부를 물었다. 잠이 보약이구나! 나는 신통하게도 내 머리가 보름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통증 없이 가뿐해진 걸 느끼며 대꾸했다. “응, 잘 지내. 나도 방금 우리 꿈 꿨는데, 하하하…….”


 
구자명 (임마꿀라타)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소설 쓰기가 주업이고 이따금 부업으로 번역도 한다. 최근에는 동료 문인들과 함께 ‘문학적으로 자기 삶 돌아보기’를 위한 미니 자서전 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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