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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독서대에 오르는 것은 아직도 ‘임시적 위임’이다.11월 2일자 2621호 <가톨릭신문>과 992호 <평화신문> 모니터링

 

   
▲ 11월 2일자 가톨릭신문 10면
   
▲ 11월 2일자 평화신문 9면

 

 

 

 

 

 

 

 ‣ ‘여성’이 주교시노드에 사상 최대 참가하였다는 뜻은

‘주교시노드’라 일컫는 세계주교대의원 제12차 정기회의가 지난 10월 5일 바티칸에서 개막하여 10월 26일 폐막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개폐막 미사를 통해 “이번 시노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느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인간 삶의 중심에 놓여 져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시간이 될 것이며, 모든 신자들이 성경을 손쉽게 접함으로써 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하고 참된 사랑 안에서 성숙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시노드에 참석한 주교들은 성경을 주제로 한 의미와 교황의 뜻에 맞추어 3주간의 일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55개 항목의 건의안을 교황에게 제출했다. 아마도 건의안은 교황청에서 검토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거부할 것 혹은 보류할 것은 채택치 않는 모양이다. 교계신문들은 이미 지난 10월 12일자에 시노드 개막소식을 전한 바 있으며, 이번 폐막 소식을 11월 2일자에 <가톨릭신문>은 10면 전면으로 보도했고, <평화신문>은 1면 톱과 9면 전면에 보도하였다.

3주전 애당초 교계신문이 제12차 주교시노드에 대한 특색으로 강조하였던 것 중 하나는 놀랍게도(?) 여성의 사상 최다 참가라는 점이었다. 10월 12일자에 <가톨릭신문>은 ‘여성 참가자 25명 역대 최다’라는 기사를 실었으며(8면), <평화신문>은 ‘여성에게 열린 세계 주교시노드’라는 제목을 뽑았었다(7면). 사실 시노드에 참가한 여성 25명의 구성을 보면 각국의 주교 참석자를 제외한 41명의 전문위원 중 여성은 6명이고, 37명의 참관인중 19명이 여성인 점을 비추어 보면 언론이 주목하기에는 적지 않은 숫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참가자는 없었으며 전주교구장 이병호주교가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한홍순 한국평협회장이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애초 교계신문들이 이번 시노드의 특색중 하나로 보도한 “여성 최다 참가”라는 말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하등 해당이 없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교계의 여성 성서신학자들이 ‘성경’을 주제로 한 시노드에 전문위원이나 참관인으로 왜 참석을 못한 것인지 혹은 안한 것인지는 한번 살펴봤어야 했다. 또한 그렇게 주목하던 여성 최다 참가가 시노드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인지는 폐막을 앞두고 보도했어야 일의 앞뒤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여성이 25명 아니라 250명이 참가한들 그것이 시노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애당초 참가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전시행사란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이번에는 여성과 관련된 의미 있는 결정이 하나 나왔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서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 10월 12일자 가톨릭신문 8면

   
▲ 10월 12일자 평화신문 7면

 

 

 

 

 

 

 

 

‣ ‘여성’에게 ‘임시적 위임’이 어찌 ‘독서직’뿐이랴

앞에 말한 대로 주교시노드는 폐막을 앞두고 55개 항목의 건의안을 교황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계신문의 독자들은 55개 건의안 제목조차도 알 수 없다. 두 신문 모두 최종 메시지와 함께 건의안을 친절하게 ‘요약정리’를 해 주는 바람에 주교들과 전문위원들이 3주간 공들여 만든 내용조차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평화신문>은 ‘사상 최다 참가’한 여성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 소개 했다. 주교들이 건의안중 하나로 채택한 ‘여성 독서직 허용’이 그것이다. ‘독서직’이란 말씀 전례에서 독서자 임무, 즉 성경봉독 임무를 수행하는 직분이다. 그렇다면 미사전례 중 그동안 여성들이 해 온 것은 무엇인가? 한국천주교회 미사 참석자 8할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해왔던 주일미사 ‘제2독서’와 평일미사에서 대부분의 성경봉독을 해왔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 그것은 교회법상(230조 2항) ‘임시적 위임’으로 해 온 것일 뿐 ‘고정적’이지 않았는데 이번 건의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 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고정적’으로 윤허(?)해 달라고 건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그것도 만장일치가 아니라 191대 45로 말이다. 물론 그 결과는 교황이 건의안을 기초로 후속문헌을 발표해야 확정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독서대에 오르는 남성은 ‘고정적’이고, 여성은 ‘임시적’임을 전례위원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좋은 뉴스거리를 <가톨릭신문>은 전혀 전하지 않았다. <평화신문>은 1면과 9면에서 거듭하여 이 소식을 전했지만 <가톨릭신문>은 ‘여성 독서직 허용’을 기사로 채택하지 않았다. 뉴스가치는 편집권의 고유권한이기에 외부인이 콩 놔라 팥 놔라 할 수는 당연히 없지만 10월 12일자에 ‘여성참가자 역대 최다’라는 보도관점으로 본다면 당연히 ‘여성 독서직 허용’에 대하여 방점을 찍었어야 더 당연하지 않을까?

한편 <평화신문> 1면에 인용 보도한 바티칸 관계자의 “이 건의안은 자칫 교회법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에 교황이 이 안을 수용할 지는 미지수이며, 만일 수용하려면 독서직은 성품성사와 관련된 직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얻은 직이라고 강조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에는 절망감마저 든다. 행간에 의미를 실어 준 편집자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교계신문을 비평하다보니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사는 교계신문 기자들의 벙어리 냉가슴을 같이 앓는다.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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