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저 강물의 밑바닥에도 손이 달려 있다고 믿어야. 이 산 저 산기슭에서 몰려와 작업라인이나 판매라인 앞에 붙어선 아이들처럼 일렬로 늘어선 손들이 안간힘으로 강바닥 후비며 앞으로 한 손 나아갈 때 꽉 째인 톱니바퀴처럼 무거운 저 강물도 비로소 울컥, 한 바퀴 굴러가는 거라 믿어야.-송경동, 모래톱 고운 모래사장이 결 따라 펼쳐진 강변에 나가 본 지 참 오래
저것을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
돌아오는 이보다 떠나는 이 더 많은 역으로 가는 길이 숨차다 가던 길에 짓밟히고 오던 길에 짓밟혀 신음을 깨물고도 아프다는 한 마디 없이 텅 빈 길 홀로 늙어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기다림 하나로 일생을 바친 세상의 모든 역은 어머니를 닮았다 -박영희,
압력버튼이 하얀 쌀밥이 되고 알아서 빨래가 삶아져 나오는 기술의 진보에 잔솔가지 군불 지피던 어머니의 부엌에서 해방된 아내는 오늘도 맥도널드 정자점에서 양배추를 썬다 시급 2100원 이한주 /하이테크『노동의 종말』이라는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가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찬찬하고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편 삶의 희망보다는 위기 의식을 많이 느끼게 하는 책
저 부처들 벌 받고 있는가? 戒를 받는가 고래 심줄 같은 그리움 도끼로 잘라버리고 전라도 화순 땅 운주사에 가서 보아라 인간들의 기다림에 기가 질려서 만정이 떨어져 부처는 세상을 팽개치고 벌렁 나자빠졌다 느닷없이 안식년 선포하고 결의문 채택하여 기똥차게 농성장을 차려버린 부처들은 결연하다 사랑하지 마라, 기다리지 마라, 현수막도 걸어 놓고 소낙비 오는 아침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 길에 마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는다 네 식구가 열일곱 평 낡은 아파트에서 뒹구며 사는 일이 이렇다 내가 출근을 하려 나간 문으로 학교 끝난 딸아이가 들어오고 아내가 머리 감고 나온 화장실로 아들놈이 바지춤을 부여잡고 뛰어들어간다 들어오고 나가고 먹고 싸는 일 그치지 않는 이 단순한 형식이 결코 가볍지 않아진 건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는 작은 집에 살고 나서부터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