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대째, 이른바 태중교우다. 내 발로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감히 그리스도의 사람, 그중에도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을 무엇보다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밥이다, 통째로 줄 테니 먹고 살라’(요한 6,51)는 성체성사와 ‘꼬치꼬치 묻거나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들이’(요한 8,11)는 고해성사다.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후자다. 우둔하게도 나이를 먹은 후에야 뒤늦게 깨달았다.눈물 콧물 다 쏟으며 고해성사를 본 적이 평생에 몇 번 있었다. 그때 느꼈던 홀가분함과 해방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이 종교계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최근에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순전히 남북정상회담 덕분이다) 그나마 개신교나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덕성을 인정받던 가톨릭이 맨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안팎으로 충격은 컸고 주교회의를 선두로 각 교구는 뒷수습과 예방책 마련을 서두르는 품새다. 성직자는 물론, 직원들을 상대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고 성교육을 새로 한단다. 교회가 직접 피해자 신고센터를 개설해서 민원을 접수한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름의 노력을 보여 주기 위한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원인은
우리나라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 어둡고 긴 군부독재하에서 수많은 의인이 귀한 목숨을 바치고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룬 결과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국민의 충복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천만에! 오산이었다. 오랜 세월 복종에 길든 우리 서민들은 권력의 속성을 잘 몰랐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뽑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나란히 감옥에 보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빤한 진리를 늦게나마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불행이며 다행이다.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 지명자는 국
사제라면 누구나, 아무 때나 교구장 주교를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교구장이 그렇게 하릴없이 한가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계통을 밟아 면담을 신청하고 시간 맞춰 찾아가서 굳이 쓴소리 하려는 사제는 별로 없다. 그럴 정도로 교회와 교구에 대해 애정과 열정이 절절하지도 않고, 언제부턴가 해 봤자 소용없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기회만 되면 주교와 사제 간의 일치와 사랑을 주문해도 현실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일반 신자와 본당신부 사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주교와 사제의 해명은 늘 판박
이미 공론화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뜬금없는 말은 아니다. 오래 고심했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그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냐?”는 동료나 선후배의 비난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다. 인정한다. 퇴직하고서야 비로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게 조금은 슬프고 미안하다. 나의 고질적인 게으름 탓이 작지 않다.조심스럽게 평가제를 꺼내는 이유는 이렇다. 지금까지 교회(성직자)의 개혁과 쇄신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종용하고 기대했던 면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을 십분 고려한 주문이었지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눈이 온통 강원도 산골짝 평창에 쏠려 있는 때입니다. 어느 나라의 누가 메달을 따느냐가 관심거리지만 그보다 더한 이슈는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등장이 아닌가 합니다. 남북단일팀이 급조되고 북의 예술단과 응원단이 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스포츠와는 또 다른 감동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최고지도자의 친서를 전달하며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는 여운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이 열기가 가시기 전에 애타는 심정으로
깜짝 놀랐다. 내가 ‘빛두레’ 1360호에 쓴 칼럼이 에서 열흘이 넘게 ‘많이 본 뉴스’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요즘 인천교구의 병원을 비롯한 천주교회의 기관들이 보이는 부끄러운 추태가 근본적으로는 사제가 가난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는 나의 지적에 공감하는 독자가 그만큼 많은 건지, 아니면 그럴 만한 또 다른 까닭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는 댓글이나 메아리가 없으니 더하다. 하지만 지대한 관심을 끈 건 분명해 보인다. 내친김에 지면 관계상 못했던
작금의 한국 교회에서 불거지는 갖가지 문제점들이 결국은 다 실권을 쥐고 있는 주교와 사제들 탓이라고 목청을 높이다 보니 숨이 차다. 잠시 숨을 고른다. 아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아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교회 용어 이야기다.언제부턴가 거리의 간판에 알아듣지도 못할 외래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명박 전 대통령당선자 시절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어뤤쥐(?) 발언이 나온 후부터는 회사고 상점이고 도무지 우리말 이름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대문만 나서면 눈에 보이는 상호들을 나열해 본다. ‘메르베일’, ‘헤어퍼밍’, ‘
일전에 ‘인천성모, 국제성모병원 정상화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창곤 씨(전 민노총 인천본부장)를 대폿집에서 만났다. 마침 인천교구 서품식이 있던 날 저녁이었다.“저는 오랫동안 노조활동을 하면서 천주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노동자 주일을 제정한 곳이 인천교구입니다. 그래서 미카엘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나는 그가 천주교 신자인 줄 몰랐다) 요즘처럼 이렇게 교회가 싫고 미운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녹음을 안 해서 정확한 인용은 어렵지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처음에는 성모병원 문제가 한
우리 국민의 87퍼센트가 종교인 과세를 찬성했다. 지금까지 교계의 눈치를 살피며 차일피일 미뤄 왔던 정부는 지난 연말에 국무회의에서 종교인소득 과세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일부 개신교의 반발이 거센 데 반해 천주교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한국 천주교는 이미 1994년부터 성직자들의 소득세 원천징수를 실시하고 있어서다. 세금만 내면 우리는 임무를 다한 것인가? 어쩐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예수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고 하셨지만 교회도 돈이 있어야 유지, 운영할 수 있고 자선사업이든 복음화 사업이든 원활
으레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제대 앞에 나와서 꽃다발을 받고, 영적 예물이 새겨진 근사한 패를 받고, 늘어선 교우들에게서 차례로 물적 예물(돈 봉투)을 받았다. 미사 후에는 떡 벌어진 잔칫상을 받았다. 주임신부님이 하라는 대로 했던 보좌 시절 나의 영명축일 축하식이다. 주임이 된 뒤에도 두서너 번 더 그런 행사를 했다. 전국의 많은 본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요 관례다.내게는 매달 받는 활동비의 몇 배가 넘는 꿈 같은 횡재였다. 동기들끼리 만나면 받은 돈의 액수를 비교하고 그 액수가 마치 내 본당의 수준이 어느 정도며 내
촛불은 헌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새 대통령을 세웠다. 누군가의 말대로 나라가 바뀌는 데 하루면 되는 것 같더니 반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청와대의 정무수석이 쇠고랑을 차고 해수부의 고위 공무원은 세월호에서 발견된 유해 조각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듣는다. 남 얘기가 아니다. 전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 교종이 탄생된 지 수 년이 지났건만 우리 성직자들의 사고나 언행은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겹겹이 쌓여 온 관습과 관행이란 얼마나 깨기 어려운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지난 초가을에 나는 운 좋게
“이 작은 마을에 지난 일 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수령의 행차를 보내고 또 맞느라고 마을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두 발로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수령의 전별금을 모으고, 돌을 캐고 다듬어서 송덕비를 세우는 사이에 신관 행차가 또 들이닥치니, 전관보다 신관이 더 두려울 것은 인지상정인지라, 새 현감을 맞느라고 길을 닦고 풀을 뽑고 동헌 지붕 수리하고 서헌에 도배장판 새로 하고 산에 올라가 꿩, 노루 잡고 강에 나가 은어 잡아서 잔치에 대령하고 곡식을 거두어서 예물을 장만하느라고 논에는 멸구가 끓
한국 천주교회는 20세기 후반 산업화와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교세가 급성장해 왔다. 인구 대비 3퍼센트 정도였던 신자들이 10퍼센트를 넘어서고 그에 따라 새 본당들이 신설되고 전국에 둘밖에 없던 신학교가 일곱 개로 늘었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자랑하는 한국교회만의 현상이다. 이런 부정할 수 없는 통계표를 앞에 두고 하나 묻자.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단순한 질문이다. 십자가 지붕이 늘어나고 신자가 많아졌으니 세상은 전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었나?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졌나? 열 사람에게 물어봐도 답은 하나
군인 주일에 이 칼럼을 쓴다. 나는 이미 한국 천주교회의 군종 제도에 관하여 지난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교회 안팎의 언론매체에 내 생각을 피력했는데 일언반구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판단에서였을까? 진부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한번 더 짚는다.천주교 주교회의는 1968년에 군인 주일을 제정하고 신자들에게 군의 복음화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을 권고했다.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사회의 어느 한 분야라도 교회는 사목적 배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당연한 처
북한은 김정은의 나라인가? 미국은 트럼프의 나라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한은 국호가 명시하듯 인민공화국이고 미국은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보루인데 어떻게 국토와 인민이 개인의 소유일 수 있나? 그럼 한국은? 자랑스럽게도 지난해 촛불은 대통령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아무리 안하무인인 김정은이나 트럼프라 할지라도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공복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그런데 요즘 북한이나 미국을 보면 슬며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에 서울교구 전종훈 신부(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의 긴 인터뷰 기사가 났다. 아, 한동안 소식이 끊겨 궁금하더니 벌써 4년째 지리산에 가 있는 걸 몰랐구나.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읽다가 한 대목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교회도 누군가의 지적으로 제자리로 가야 한다.”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국정원에게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이 소가 웃을 일이었다면 ‘거룩한’ 교회도 외부의 지적 없이 스스로는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걸 전 신부는 꿰뚫었다. 그는 “네가 교회의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고 윽박지
내가 쓰기로 한 이 꼭지의 주제가 ‘열린 교회’라는 건 첫 번째 원고를 보낸 후에야 알았다. 그만해도 다행이다.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닫힌 교회로 보고 우려를 금치 못한다. 닫힌 교회란 높은 담과 솟을대문을 세워 바깥사람들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거기서 누가 뭘 하는지 알 수 없고 왕래조차 못 하도록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그들만의 교회라는 말이다. 대문을 열고 담을 헐어서 남녀노소, 지위고하의 차별 없이 수천 명이 한데 모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정답게 나누어 먹는 잔치마당이 가 꿈꾸는 교회의 참모
편집자의 전화를 받고 사전을 뒤적여 쇄신이란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편지 한 장을 쓰더라도 단어의 뜻이 애매하거나 아리송하면 사전부터 찾는 저의 오랜 습관입니다.쇄신 :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 (표준국어대사전, 실용국어사전)가 왜 굳이 지금 ‘교회쇄신’을 말하려 하는지 그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다난한 역사는 때때마다 위기요 기회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지난해 촛불로부터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변화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라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