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면접 자리에 갈 일이 있었다. 참고로 내 키는 176센티미터이고,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키가 몇이에요?"다. 그래서 키에 대해 알려 주는 일도, 내 키를 듣고 놀라는 감탄사를 듣는 일에도 익숙하다. 나를 처음 본 면접관께서 딱딱한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는지 키를 물으셨다."키가 몇이에요?""176입니다."다음에 보통 나오는 말은 "생각보다 크시네요."라거나 "뭘 먹고 그렇게 컸어요?"이기 마련이고, 아마 바람직한 것은 처음부터 키처럼 외모와 관련된 사항을 묻지 않는 것이리라. 어쨌든 이 대화
연일 '이건 아니다' 생각이 들 만큼 뜨거운 날씨 속에서 문득 몇 년 전 방문했던 캐나다 몬트리올을 떠올렸다. 다녀온 뒤 여름마다 한국과 달리 습하지 않은 그곳의 여름 날씨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이런 건조한 여름이라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곳의 여름을 그리워했던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내가 무엇을 입고 돌아다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의 분위기였다. 몬트리올을 다녀오고 내 SNS에 이렇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헐벗고 다녀도 아무도 등짝 때리지 않아서 좋았다.'무슨 이야기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봤다. 어떤 사람이 "원래 우리 동네에 이렇게 꽃이 많았나?"라며 꽃 사진을 올렸는데, 다른 사람이 "꽃이 많은 게 아니라 꽃이 많이 보이는 나이가 된 거다." 라고 답한 것이다. 왠지 내 이야기 같아서 뜨끔했다. 예전에는 엄마가 왜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꽃밭을 해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에 동생이 보내 준 꽃 사진을 프로필로 해 둔 나를 발견했다. 나이 먹을수록 꽃이 좋아지는 것은 인생의 순리인가? 알 수 없다.그러나 꽃을 좋아한다고 꽃과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젊은 사람이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어떤 분은 젊은이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수녀원에 들어갔던 사연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해서 크게 웃었다. 평소에 왜 신학을 공부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자주 묻기도 한다. 특히 공부가 힘들 때 말이다. 가끔 곰곰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쩌다가 이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아마도 10살 때 즈음의 일이다. 어떤 친구가 수녀님에게 질문했다. “수녀님, 하느님은 여자예요, 남자예요?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가졌던 날을 기억한다. 아마도 초여름이었는데, 학원에서 돌아와 보니 새 책상과 새 침대가 놓인 나만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까지는 항상 할머니나 언니와 같이 방을 썼는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 문 앞에 서서 방을 바라봤던 순간은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완벽한 장면이다.방이 생기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아무도 없다. 고로 자다가 팔다리를 마음껏 뻗쳐도 상관없다. 새벽까지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들어도 뭐라고
우연히 친한 언니와 옆 동네에 놀러 갔다가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처음 가 보는 동네라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보면서 걷고 있는데 승합차 하나가 멈춰 섰다. '여성 안전 귀가' 전용 차량이라고 적힌 승합차 앞 좌석에 타고 있던 여자분이 전철역까지 가는 길이면 타라고 했다. 약간 망설이고 있는데 그분이 재차 권하기에 어색하게 차에 올라탔다.전철역까지 가는 아주 짧은 시간. 분명히 '안전' 귀가 차량이고 나 말고도 여럿이 타고 있었으며 아마 자원봉사자인 것 같은 아주머니들이 다음에도 이 차가 보이면 꼭
추위가 가시고 2월이 되자 졸업과 입학의 계절이 왔다. 연일 학교 안에는 꽃을 들고 학사모를 쓴 사람들이 가득하고 여기저기 축하 메시지가 담긴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다. 때마침 지금 다니는 대학원 졸업식의 송사를 부탁받는 바람에 나의 지난 입학식들과 졸업식들은 어땠는지 곰곰이 떠올려 봤다. 어색함에 계속 뒤에 있던 엄마를 돌아봤던 초등학교 입학식, 난생처음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줄지어 서서 남들보다 밝은 머리카락 색을 지적받았던 중학교 입학식, 또 다시 머리카락 색을 지적받고 그 때문에 전교생 앞에서 불려 나갔던 고등학교 입학식과 굳
나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 지는 너무나 오래되었고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가끔은 기억이 돌아오기도 하는데 그 기억도 그렇게 자세하지는 못하다. 3초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해서 나는 가끔 내 앞에 있는 할머니가 매 순간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면면을 품고 있기 마련이지만 할머니는 마치 한여름 태양 빛을 반사하는 놀이터의 모래알처럼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 같다. 병을 앓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고독을 느
2017년이 거의 지나갔다.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면서 문득 ‘20대에 하길 잘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역시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일이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과거에 TNR(포획-중성화-방사)을 핑계로 고양이를 마구잡이로 죽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9년 전, 우리 집 고양이들의 엄마는 그렇게 잡혀가 사라졌고, 새끼들만 남았다. 처음 이 고양이들을 집 근처 동물 병원에 데려갔을 때, 간호사는 이미 이 새끼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마 우리뿐 아니라 이 버려진 새끼고양이들을 가엽게 여긴
2017년을 시작하면서 동료에게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한국 여성의 전화’라는 시민단체에서 나온 다이어리인데, 기존에 쓰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일단 월경 주기표가 들어 있고, 폭력을 겪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많은 번호와 방법이 나와 있다. 또 달력에 적힌 기념일들이 다양한데 누가 알려 주지 않는다면 절대 모를 것들이다. 넘기면서 보니 1월 12일은 제주해녀 항일운동기념일, 2월 8일은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일, 3월 19일은 문학가 허난설헌의 사망일이다. 6월 19일은 성폭력 친고죄 폐지 시행일이고,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몇 년간은 어린이들에게 그림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자식은커녕 조카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어린이와 대화하며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린이들 특유의 혀 짧은 발음을 알아듣기도 어려워서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져서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을 수도 있게 됐다.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다 제각기 개성 있고 생각이 번쩍거리는데, 나는 왜 버릇처럼 ‘애들은 빤해. 애들은 단순해.’라고 생각했을까? 왜 내가
난 어릴 때부터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배움이 느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완전히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후로는 줄곧 그랬다.특별히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왠지 그냥 글자를 읽는 것이 좋았고, 지금도 뭐든 사면 설명서부터 읽어 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히 치약이나 샴푸 뒤에 있는, 읽어도 뭔지 알 수 없는 성분표를 천천히 읽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성분표는 어찌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낱말들의 나열이지만, 읽고 나서 ‘음, 그렇군’ 하는 것으로도 무언가 끝마친 기분이 들고는 한다.이
얼마 전에 방 정리를 크게 했다. 사실 물건들의 배치를 조금 바꿔 보고 싶었는데 가구들이 너무 크고 짐이 많아서 실패하고 말았다. 속마음으로는 방에 작은 침대를 하나 놓고 가구들도 통일감 있게 바꾸고 싶었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가구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그냥 빨리 결혼을 해!”엄마의 사고 흐름은 이렇다. 결혼을 하면 이사를 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구들을 사겠지? 결과적으로 나는 새 침대도, 통일감 있는 가구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결혼을 한다면!결혼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