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눈물이 없는 세상, 아픔 앞에 함께 우는 세상, 그 세상을 꿈꾼다.결국 함께 행복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 같이 조금 천천히 조금 덜 웃게 되어도 외롭게 웃는 세상이 아니라, 다 같이 더불어 웃는 그런 세상을 살자 말을 하고 싶었다. 길고 긴 이야기는 결국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더불어 행복하자. 조금 힘들어도 아니 많이 힘들어도 말이다.행복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치열한 고민의 결실로 약간의 웃음이 주어진다.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절대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모
- 착한 교회, 착한 주교, 착한 사제 그리고 착한 평신도가 그립다.옛날도 다르지 않다. 사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또한 쉽지 않은 길이기에 너무나 쉽게 타락할 수도 있는 길 또한 사제의 삶이다. 바로 그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들이 사제다. 많은 이들이 사제의 삶에 대하여 고민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도 사제와 주교의 삶에 대하여 고민했다. 591년 "사목교범"에서 주교직과 사제직이 무엇이며, 요구되는 덕성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규정했다. 쉽지 않은 길이라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길이기에 이런 교범으로 파락을 경계하기 위함
- 내 행복은 내 안에 있다. 내 손과 내 코가 내 몸에 있듯이 말이다.희망이 무시당하는 세상이다. 열심히 노동하던 청년이 지하철 사고로 죽었던 일이 멀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하다. 생수 공장에 실습을 나간 청년이 기계에 목이 끼여 죽었다. 여전히 가난한 이의 희망은 무시당하고 있다. 절망을 자발적으로 느끼는 이는 없다. 자발적 절망은 없다. 절망은 희망이 무시당하는 곳에서 강요되는 어쩔 수 없음이다. 그리 보면, 희망은 절망의 조건이다. 슬프게도 말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수백
- 생각하는 이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데카르트를 이단이라 소리친 이들이 있다. 당시 개신교 신학자인 보에티우스다. 왜 그의 눈에 데카르트는 이단이었을까? 여기에서 우린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바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이 명제는 너무나 유명하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특별한 교육 없이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정말 상식적이다. 어찌 보면 이 사실 자체를 의심하긴 힘들다. 의심이란 생각도 결국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결국은 이 명제를 증명하는 또 다
- 힘든 삶이 불행의 이유는 아니다나는 슬픈 일이라 생각한다. 간혹 누군가 자기 앞에 자기 삶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길 바란다. 적어도 나에게 이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누군가 제시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이 슬픔의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자기 나아갈 바를 고민하고 궁리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순간 다양한 선택지들이 앞에 놓이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의해 자기 삶을 일구어야 한다. 당연 그 책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11누군가 홀로 웃고 있을 때, 그 웃음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웃음이란 함께 웃을 때, 그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외로운 웃음은 웃음이 아니란 말이다. 더불어 웃어야 한다. 그때 웃음은 진정 웃음의 가치를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요즘 공동선이 문제다. 교회 안과 밖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바로 ‘공동선’이다. 혼자만 웃고 살자는 생각은 참 무섭다. 자연스럽게 타인의 울음에 소홀해지고 곧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몇만이 웃고 많은 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회를 두고 좋다 말하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10‘신앙’이란 ‘이성’과 모순되는 것일까? 신앙의 삶은 무엇일까?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의하면, 신앙은 이성 위에 있지만 신앙과 이성 사이 결코 실재적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계시를 부어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이성 가운데 빛을 심으셨기 때문이다. 즉 신앙도 이성도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하느님에게 나온 것이다. 그러니 진리와 진리가 서로 다툴 수 없듯이 신앙과 이성은 서로 모순이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오캄도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논리 속에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모색하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9서로 다른 여럿이 살아간다. 서로 다른 여럿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서로 살아가는 환경도 생각도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여럿이 하나의 공간 속에 하나의 우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운 다툼을 만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진보라 하고 누군가는 보수라고 한다. 진보라는 이들도 아주 많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보수 역시 다르지 않다. 아주 많은 결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두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8누군가의 아픈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될 때가 있다. 가족도 아니고, 가까운 친구도 아니다. 가까이 사는 이웃도 아니다. 그러나 남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될 때가 있다. 그때 나와 남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물론 하나가 되었다고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두 명의 나와 남이 하나의 존재로 녹아들어 서로의 개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7문제는 돈이다. 12-13세기 서유럽의 대부분은 더 이상 장원제 사회가 아니었다. 토지가 없어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대표적으로 ‘은행’이 등장하였다. 다른 육체적 노동 없이 이자 소득으로 매우 큰 이익을 만들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제노바엔 최초의 대규모 은행이 세워진다. 이 은행은 불행히도 채권자들이 합의점을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6많은 이들은 종교인에게 더 많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경우에 따라선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종교인이 보여주는 일탈은 더 큰 실망을 준다. 많은 이들은 보이지 않는 민중의 고통, 그 고통의 옆, 왠지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그 고통의 옆에 종교가 있길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종교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5항상 불안하다.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자신이 불안하다. 기준에서 벗어난 것 같다. 벗어났다는 것이 두려움이 된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심리를 잘 활용했다. 행복은 이것이다. 행복의 기준에 미달했다. 빨리 기준을 따라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이런 권력자들의 요구에 불안한 민중들은 작은 기준의 틀 속에 자신의
- 오캄의 정치학 읽기 4철학의 욕망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고 싶은 욕망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향유하려는 욕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철학은 추상적 실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추상적 실천으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향유할 수 없으며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몽상가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래 오랜 시간 수많은 동서양의 사상들
- 오캄의 정치학 읽기 3많은 철학과 신학의 논쟁들도, 그것이 아무리 이해가 힘들어도 그 출발점엔 그저 평범한 인간 본능의 다툼들이 숨어 있다. 성상 논쟁도 그렇다. 과연 성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타당한 일인가? 혹시 그것은 우상숭배가 아닐까? 그래도 올바른 신앙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중세 초기 이와 관련된 논의들은 비잔틴제국의 황제
- 오캄의 정치학 읽기 2십자군은 큰 짐이었다. 많은 병사들을 먹이고 무장시켜야 했다. 아주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란 전쟁을 하기 위해 돈을 쌓아 두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을 쉬려 하지 않았다. 그 많은 경제적 어려움은 민중의 몫이었다. 힘든 삶 앞에서 교회가 이야기하는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의문
-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간 처지의 비참함" 읽기 4“예수께서는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자홍색 용포를 걸치시고 밖으로 나오셨다.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자,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19,5)한 사람이 많은 이들 앞에 섰다. 빌라도는 외친다. “자!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세상 권세를 드러내는 왕관을 쓴
-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간 처지의 비참함" 읽기 31343년 만들어진 중세의 한 법령, 풍속감찰관 법령은 참으로 흥미롭다.“기자 작위를 임명하는 예식의 경우, 집 밖에서 춤을 추는 것을 금지하며, 저녁 종소리에서 새벽 종소리에 이르는 밤 시간 춤을 추는 것을 가중 처벌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위하여 또한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이의 기사 작위를
-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간 처지의 비참함" 읽기 210세기 이후 상업은 빠르게 발달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돈을 가진다는 것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했다. 권력과 지배력 심지어 명예마저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돈은 여러 사회적 결핍 속에 아파하는 인간을 구원할
-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간 처지의 비참함" 읽기 1내 아들의 생일은 4월 16일이다. 그리고 4월 16일 세월호의 아픔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4월 16일은 그런 날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날이다. 그런데 누군가 세월호의 아픔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한다. ‘돈’, 사물의 가치 혹은 재산 축적의 대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그 ‘돈’ 이야
권정생 선생의 집을 찾았다. 아주 작았다. 거대한 건물이 가득한 도시와 다른 공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작은 집 한 채였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 전부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정말 보아야 할 것은 다를 것이다. 정말 보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작음이 아니라, 선생의 진실함과 소박함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그것을 보아야 했다.유럽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