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문가주의의 기원의사와 성직자와 법률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부와 건달의 공통점은?”식의 우스개를 뒤로 하면, 이 세 가지의 직군은 서양 역사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전문 교육 과정을 거쳐 양성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신학으로 명성을 얻은 파리 대학, 최초의 의과대학인 살레르노 대학, 그리고 법학의 요람 볼로냐 대학이 12세기 후반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여 중세 대학 가운데 선구적 위치를 누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먼저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의 3학를 배운 다음, 산술, 기하학, 음악
1. 의료계와 문재인 케어최근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출과 그에 관련된 의사 집단의 행보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당선인이 건강한 토론과 협상을 이끌 시민적 자질을 갖추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선출 과정에서 보인 난맥상과 회장의 대표성 문제까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새 회장의 선출과 집단행동 예고 과정에서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대한 반감이 막말과 원색적인 비난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이 논의가 저열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의 진흙탕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한 것 같다. 이럴
1. 1987년 그 이후'1987' 영화를 보았다. “종철아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뽑혀 나왔던 그 말씀이 화면 위에서 재현되는 그 대목부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87에서 93년까지,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단말마와 거리의 함성이 맞부딪치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여러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물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2. 참교육 세대에서 헬리콥터 마더로1986년 1월 15일 새벽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전교 1등
1. 깨진 유리창 이론지하철 입구에 누군가 다 마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리고 간다. 단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 컵을 치우지 않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얼마 가지 않아 컵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담배도 그렇다. 한 사람이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면 슬금슬금 흡연자들이 모여든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실증하는 예다.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 이론은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이 이론에 근거하여 켈링은 뉴욕
1.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사례 1. 2013년 12월 23일, 경기도 S 병원 산부인과에서 이란성 쌍생아가 태어났다. 오빠는 건강했으나 여동생은 2.14킬로그램의 미숙아인데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설상가상, 합병증으로 심방심실중격결손증이라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어서 6개월 안에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더 급한 것은 십이지장 폐색증, 당장 막혀 버린 십이지장을 뚫어야 했기에 의료진은 12월 26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쌍생아의 부모가 경제적 부담으로 힘들어 할까 봐 의료진은 도움을 받을 여러 가지
2008년 2월 25일의 대통령 취임식으로부터 장장 9년 동안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힘들여 이루어 낸 역사의 성취가 하나둘 스러져 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한 번 이루어 낸 성취, 한 번 도달한 위치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확고한 업적으로 남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착각이었습니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에도 많은 이들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주목하면서 여러 형태로 권력의 분배 장치와 감시 장치를 만들었고, 시민들의 정치의식도 한결 세련되어졌지요. 그래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회귀하더라도 민주주의 자
1.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사회사람 많은 대도시일수록 사람과 마주할 일은 줄어든다. 출근길부터가 그렇다. 더 이상 버스에서 회수권을 받는 운전기사도, "오라이~"를 외치는 버스 차장도 없다. 후불식 교통카드가 단말기를 스치며 내는 삐익 전자음이 그 소리를 대신한다. 일찍 나오느라 먹지 못한 아침밥을 편의점 삼각 김밥으로 대신하는데, 여기서도 말이 필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대체로 어릴 적에 본 드라마들에는 꼬마들도 외울 만큼 전형적인 대사들이 있었다. 신파극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탐나더란 말이냐’ 투의 대사가 꼭 들어갔고, ‘전우’나 ‘113 수사본부’ 같은 반공드라마에는 ‘이 종간나 새x, 아오지 탄광’이 매회 빠지지 않았다. 사극 하면 기억나는 대사에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와 ‘성은이
1. 성공한 혁명가, 실패한 행정가부유한 병원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한 청년이 불의한 현실에 분노했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법대를 졸업하고도 굳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던 열혈 청년과 뜻을 함께하면서 청년 의사는 혁명가가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금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
1983년을 살았거나 그 뒤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목숨을 빚진 사나이가 있다. 스타니슬라브 페트로프, 그는 우발적 핵전쟁으로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었던 1983년의 어느 날 냉철한 판단으로 세상을 구한 옛 소비에트 연방 방공장교였다.우리에겐 KAL기 격추사건으로 기억되는 1983년은 미국과 소련 간의 신 냉전이 한창이던 해다. 미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1. 잉그램 가족의 비극1988년 여름, 성경학교에 참석해서 체험을 나누던 22살의 에리카 잉그램이 친부모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며칠 뒤 학교에서 교사에게 성적 학대 사실을 고백한 18살짜리 동생 주리의 경우는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친부의 성폭행으로 임신했다가 친부의 손으로 직접 낙태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자매가
1. 정치의 윤리화?“정치는 윤리적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스스로 도덕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서 윤리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언뜻 맞는 말 같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사생활 면에서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정치가로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에 국민적 지지를 받은 인물들이 여럿이다. 정치의 무대에서는 선전과 선동, 폭
2월 27일(현지 시간)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회의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은 대북 비난과 함께 북한의 심각한 인권 피해가 더 큰 재앙을 초래하기 전에 독자적, 집단적 조처를 해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비슷한 시각 대한민국 국방부는 롯데와 부지 교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사드(THAAD)의 실전 배치가 임박했음을 알렸고, 이에 중국 외교부는
1. 순교자와 배교자박해는 순교자들과 함께 배교자를 낳았다. 신앙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가혹한 일상을 견딜 수 없던 이들은 제국의 질서에 투항했다. 단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시대였다. 전례 장소가 파괴되고 성경을 압수당하는 가운데, 모든 신앙인이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길 기대할 수는 없었다. 더러는 늦어지는 그리스도
1. 신부님,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물대포로 쏴서 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80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 드려야 할지 몰라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할머니, 그래도 사람한테 물대포를 쏘면 되나요?”하고 넌지시 운을 떼니 이어지는 지청구는 딱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아니, 대통령도 인간인데 조금 잘못할 수도 있지
1. 만원 버스에서 만원 버스다. 이미 창문까지 밀려서 엉거주춤 서 있는 저 승객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틈새는 잘 안 보이고 문은 닫히려 하니 진퇴양난이다. 일단 발이라도 어깨라도 밀어 넣어야 한다. 구겨지는 옷과 체면은 잠시 잊자. 일단 타고 나면 도착할 때까지는 안심이다. 그런데 닫히려는 버스 문을 누군가 탕탕 두드린다. 안 그래도 비좁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