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은 과연 철학일까? 현실의 삶과 멀리 떨어진 초월적인 것에 대한 동경만이 가득한 중세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중세는 억울하다. 중세를 살아간 이들도 자신들의 현실을 살았다. 현실을 살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 현실을 채우는 고민들도 상당히 유사하다. 가난보다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고, 될
철학은 고통으로 깊어진다. 원래 인간 삶이 그렇다. 고통이 인간의 삶을 깊어지게 만든다. 그 깊음만큼 철학도 깊어진다. 중세도 그렇듯이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가난하고 힘든 이들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고통이 존재의 자각이라 할 만큼 힘든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고통의 주체는 많은 경우 여성이다.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물
- 프란치스코 데 비토리아의 분노중세철학사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편논쟁’을 읽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공통된 본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가? 어찌 보면 참으로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두고 중세철학자들은 왜 그리도 깊게 파고 들었을까? 이것이 우리의 삶에 대체 어떤 유익이 되는 앎이란 말인가? 1511년 12월 21일
거대한 성당의 드높은 웅장함은 하늘의 빛을 가릴 지경이다. 청빈(淸貧, paupertas)의 삶을 신앙의 삶으로 여기던 교부의 정신은 사라지고, 민중의 현실에서 교회는 점점 멀어졌다. 이젠 민중의 아픔이 녹아내린 더불어 있음의 공간이라기보다 그저 또 하나의 이기 집단이다. 이기 집단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다. 얼마나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당당한 행복국어사전에서 ‘희망’을 찾는다. 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짐, 이것이 희망이다. 반대는 절망이다. 바랄 것이 없어 희망을 끊어 버린 상태다. 요즘 사람들은 절망을 산다 한다. 희망을 끊어 버린 지옥 말이다. 행복을 향한 희망이 깊은 외상을 입은 시대, 우린 그 시대를 살고 있다.돈을 행복 바로 그 자체라 생각한다.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