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떼제의 수사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일반적인 호기심도 있지만, 거기에는 “많은 수도회 가운데 왜 하필 떼제를 택했느냐? ”는 뜻도 포함된다. 초교파 국제공동체에다 프랑스에 사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좀 독특하게 보이는 것 같다.사실 나는 여러 수도회를 비교 검토한 끝에 떼제를 택한 것이 아니다. 가까웠던 수도회를 손꼽자면 '예수회'가 첫
7월과 8월에 중국과 한국을 다녀왔다. 떠날 때는 여름이었는데 돌아오니 벌써 초가을이다. 여름 막마지라 순례자의 수가 줄었지만 떼제의 언덕은 여전히 젊음의 물결로 넘친다.한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 오후에 공동체 시간이 있었다. 반나절 동안 떼제를 떠나 우리 형제들끼리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여기서 5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성당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많은 형제
토요일 저녁 기도 때 새 형제가 공동체에 입회했다. 독서 후에 원장 수사가 긴 소매의 흰 전례복을 입혀 주었다. 새 형제는 중국 산동성 출신이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산동성에 처음 가서 제남(濟南)의 대성당에서 기도 모임을 했을 때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연락을 가끔 주고받았는데 프랑스로 유학 와서 떼제를 찾아왔다. 방학 때 여기 와서 오래 머물렀던 그는
올해 프랑스의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외국인과 다른 문화, 특히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혹은 은밀하게 드러내는 정당이 지지받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프랑스 정치 현실이 어둡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조화롭게 어울려 더불어 사는 것은 아름다운 현실이고 가능한 미래다.지난 주일 오후, 떼제에
우리 공동체와 가까왔던 두 분의 할머니가 부활 주간에 영원의 세계로 떠났다. 한 분은 십남매를 낳아 기른 체코의 여성이고, 다른 한 분은 떼제 근처 클루니에서 평생 독신으로 사신 프랑스인이다. 두 분 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졌다.우리가 “마담 카플란”이라 부르던 마리아 카플라노바(1928~2014)는 가톨릭 작가의 딸로 태어나 영어와 불어를 가르쳤고 외신
얼마 전에 프랑스 중부의 한 수녀원에서 열린 첫 서원식에 다녀왔다. 떼제에서 300㎞ 가량 떨어진 도시로 중세의 성당과 건물이 도심에 잘 간직된 곳이다. 서원자는 단 한 명으로 한국인.주교관 바로 옆에 자리한 수녀원의 큰 건물과 넓은 안마당,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아름다운 경당이 옛날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수녀님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중년의 몇 사람은
이십대의 우크라이나 청년 둘이 찾아왔다. 지난 겨울 내내 키예프의 민주화 시위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꿈꾸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젊은이들이었다.알렉산더가 떼제에 도착했을 때는 심각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겪은 일과 나라의 상황 때문인 듯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음날 아침, 성경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3월초 르몽드 신문의 주말 잡지에는 한국 입양아의 어머니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가난 때문에, 혹은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낸 여성들이 지닌 죄책감과 상처는 깊고 컸다. 아이를 잊지 못하고 평생 괴로워하는 사람의 사연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록에 의하면 1953년에서 2004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어린이는 15만
나날이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고 있다. 맑은 날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에 가득 담긴다. 박새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고 앞뜨락에 심어놓은 야생 수선화가 화사하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봄이 다가오는 신호다.봄바람은 교회에도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취임 후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교회에 불어넣은 새 기운은 대단하다.
프랑크 수사가 선종했다. 두 달 뒤면 79세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그는, 거기서 생일을 지내고 프랑스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흡은 더 가빠졌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예정을 앞당겨 떼제로 돌아오던 중, 이스탄불에서 심장의 고동이 멎었다. 평생 순례자였던 그는 길에서 삶을 마감했다.네덜란드 출신인 그
성탄절부터 1월 초까지 알자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지냈다. 라인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에 접한 이 도시에는 유럽 의회를 비롯한 여러 유럽 기관이 있다. 여기서 우리 공동체가 주관하는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이 열렸다. 떼제의 유럽 모임은 1978년에 시작했으니 이번이 36번째다. 그 사이 유럽은 아주 많이 변했다.올해는 개최지 인원을 포함해서 약 3만
넬슨 만델라의 서거 뒤에 추도 기간을 보내면서 한동안 잊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베네딕트는 25년 전 내가 처음 떼제에 왔을 때 같은 그룹에서 만났다. 여덟 명 가량 되었을까, 우리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첫 날, 서로 소개를 할 때부터 유일한 흑인이었던 베네딕트는 좀 특별했다. 모두 자기 이름과 함께 영국, 독일, 벨기에, 필리핀,
겨울, 떼제는 고요하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끝없이 밀려오던 젊음의 물결도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 언덕에는 지난주에 내린 눈이 여전히 쌓여있고 바람은 매섭게 차다. 그래도 어제오늘 햇살이 넉넉하고 따스하다. 겨울에는 흐리고 습한 날씨가 대부분이라 이런 날이면 잠시라도 밖으로 나와 걸으려 한다. “햇살 찬란한 날에 안에만 있는 것은 죄는 아니라도 거의
베이징에 있는 중국 가톨릭 전국 신학교에서 일주일 남짓 지냈다. 학년별로 떼제의 기도 방식과 젊은이 사목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신학생들과 매일 함께 기도했다. 한 달 전에 베이징에 갔을 때는 옌징 신학교(개신교)를 방문해서 전교생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중국 개신교회에는 아직 떼제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말로 떼제공동체와 떼제의 노래를
다시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중국과 북한을 다녀왔다. 처음 외국에 나갔던 3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것이 설레지도 긴장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사회를 찾아가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은 소중한 체험이다.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갈 때 스스로의 가난을 체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떼제에는 오늘도 젊음의 물결이 넘실댄다. 예외가 있지만 흔히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유럽 교회의 현실에서 떼제는 특별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드는가?우선 이곳의 자연 풍광을 빼놓을 수 없겠다. 낮고 완만히 굽이치는 구릉들, 그 사이로 길게 펼쳐진 들판, 드문드문 소와 말, 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