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천국처럼!’ 우리 공동체의 격문(檄文)이다. 그러나 정작 마을의 삶에 천국은 없다. 소유를 풀어버린 생활임에도 몸을 쓰는 노동과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쉽지 않다. 가족들은 ‘지상에서 천국처럼!’을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평화롭게!’로 바꾸자고 한다.공동체의 평화로운 삶의 엔진은 ‘좋은 대화생활’이다. 서로 미워하고 뒷말로 허물을 들추기까지 한다면
우리 산위의 마을 방문자들은 마을 건너편으로 소백산 구봉팔문과 연화봉 줄기로 어우러진 풍광을 한결같이 좋아하면서 속이 후련해서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인사에서 넘어오는 길에서는 약 3km 멀리 해발 500m 눈높이에 우리 마을이 보입니다. 뒤쪽 북서쪽으로 930m의 용봉산이 둘러있어 마치 소쿠리에 담겨 있는 듯 포근한 마을로 느껴집니다. 성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 20,18)예수님은 처형되어 무덤에 묻혔는데, 그 다음 어떻게 되셨나? 부활하셨다.부활하신 다음 어떻게 하셨나?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만나셨다.그 후에는 어떻게 되신다 했나? 승천한다 했고 그대로 하셨다.이상의 세 가지 사실은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어 알려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알림을 받은 자는 마땅히 특별한 사명에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 10,28)산위의 마을에서 체험생활이라도 해 본 이들 중에는 아주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단히 힘든 생활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노동을 해야 하니까요. 이제까지 머리 굴리고 꾀를 내어 유통 마진과 수수료만 받아먹으면서 도시의 삶을 살아온 우리가 몸을 굴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 축일에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는 서소문 유적지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작년 이래 주교님의 강론에는 순교의 신심과 더불어 서소문 성지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만이 아니고 각 교구마다 순교자 유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19) 그날, 혹시나!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지만, 역시나! 빈 배로 돌아온 아침. 내일을 기약하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오라 하시기에 즉시, 정말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습니다.함께 살아온 날들 안에서,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옛날 수안보 온천 계곡에는 전국에서 많은 나병 환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치료 효험의 소문 때문이었겠지요. ‘베짜타’라는 못은 주기적으로 샘물이 솟구치는 현상이 있는데 그 순간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면 신묘하게도 치유된다고 합니다.어떤 사족을 못 쓰는 불구자가 치유의 기적을 얻고자 여차저차 어떻게 해서 그곳 까지는 갔는데, 물이 솟을 때면 다른 장애인이
레브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생애를 보면, 그는 50세에 이르러서 사상적 혼란에 봉착해서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배계급의 폭압 정치와 지주들의 농민 착취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까지 상류층과 같이 놀아나면서 썩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자신의 젊은 시절 방탕과 현재의 신앙, 문학정신을 볼 때에 미사려구로 가득차 있을 뿐 진리에 기초한 삶이 아니었습니
이 이야기는 실화라고 합니다. 일본 나가사키대 의과대학 출신의 청년 의사가 국제청년의료단으로 케냐에 파견되었습니다. 약혼녀를 두고 떠난 그는 3년 동안 원주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국의 약혼자로부터 자신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 같죠?그 사연을 청년의 대학 동창 친구가 알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것에 대한 정보를 잘 수집하고 전문교육을 받기도 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여러분은 성서를 열심히 읽습니까? 종교인이라면 자기 종교의 경전에 대한 마니아가 되어야 하겠지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저는 신학생 때 성서 묵상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사제가 되고부터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루가 13,6-9) 기질이나 성격적으로 유별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형제간 중에도 그렇고 동서들 가운데도 그렇고 가정이나 마을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어떤 집합을 막론하고 그런 이가 있게 마련인 것은 인간이란 것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지요.공동체에도 성격이 유별나기 때문에 못 어울리거나 부딪히는 경우는 말할
우리 산위의 마을 손님들은 생활일과나 전례 등 일정한 체계와 틀이 갖추어져 있는 것 같은데 가족들의 신심과 관계의 소통, 문제해결 능력 등 정작 공동생활에 중요한 내용들은 많이 부실한 것 같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충고들을 잘 알아들어야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등에 기름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품삯을 주고 싶소(마태 20,1~16)”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들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삶,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대단한 욕심이고 도전이지요.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무엇을 교훈과 모델로 삼아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늘나라는 ...에 비유할
부자 청년은 예수를 따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재물이라는 위력을 가졌음에도 그것이 추종의 생에 불리하게 작동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던 순간을 회상했고 자부심도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보상받게 됩니까?” ‘정
‘천주의 모친, 원죄없으신 잉태, 평생동정, 승천하심’이 마리아의 4대 교리입니다. ‘천주의 모친’이 가장 오래 되었고 성모승천은 6.25가 나던 해인 1950년에 최종 선포되었습니다. 교리란 것은 생겨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합니다 ‘예수의 모친, 그리스도의 어머니, 주님의 모친이신 마리아, 원죄 없으시고 평생동정이신 마리아’ 하는 표현은 아무렇지 않지만,
신앙은 하느님의 존재 섭리 능력 교섭을 믿는 것이고 신학은 하느님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학이 생각이라면 신앙은 삶입니다. 생각이 삶이 될수도 있고 삶이 생각으로 정리될 수도 있고 생각 따로 삶 따로 일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폴 발레리, 프랑스 시인) 신은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와 구마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능력으로 한 동안 치유와 구마를 베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던 모양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그렇지요. 예수님은 믿음이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친절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 도울 수 있는 능력, 노동하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정답을 말하자 든든한 마음으로 칭찬하셨습니다. “너는 반석이다. 너를 반석으로 삼아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어 예루살렘에서 당할 고난을 이야기 꺼내자 베드로가 “맙소사, 말도 안돼요!” 저항했습니다.
1. 왜 수행을 말하고 있는가?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발레리) 사람들은 늘 나아지는 것을 추구하는데, 추구의 끝에는 유토피아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나빠지거나 무의미를 경험할 때 삶에 대해 부정하게 되고 관습적 삶을 불신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해답을 얻고자 고뇌하며 이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