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처 = CRUX)(존 앨런)바티칸은 일을 생각할 때 수백 년을 한 단위로 본다는 전설적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바티칸의 이러한 일 처리를 놓고 이렇게 농을 친다. “이번 수요일에 얘기해 주세요. 그러면 300년 안에 회답을 드리겠습니다.”이번 9월 초에 프란치스코 교종이 몽골을 방문한 것은 교종으로서는 사상 처음인데,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교종의 몽골 방문은 지난 800년간 계속 추진돼 온 사업의 결과다.교종 사절이 몽골 대칸 궁정에 처음 이른 것은 1245년, 지금으로부터 778년 전이었다. 당시 교종 인노첸시오 4세가
스무 날 정도 여름 휴가를 다녀왔더니 집 안에는 거미줄이, 텃밭에는 온갖 넝쿨과 바랭이 무리들이 무섭게 장악을 하고 있었다. 집은 몰라도 밭의 경우는 승부를 겨룰 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농사일에서 손 떼고 편하게 좀 살아 보자’ 싶은 마음이 우세했다. 여행을 떠나서 보니 대다수 사람은 농사 안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지 않던가. 농사는 여행 한번 마음껏 떠나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구속이다. 나도 한번쯤, 적어도 다음 해 봄까지만이라도 고단하지 않게 살아 보자! 풀과 맞서기 싫은 마음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정
1923년 9월 1일, 관동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여파로 발생한 대화재로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역은 궤멸하다시피 큰 피해가 생겨났습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4만 명에 이르렀고, 이재민은 340만 명에 달했습니다.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대지진의 참변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민심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경찰과 자경단을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관동대지진을 관동대학살로 몰아갔습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습니다.그들은 폭도로 변한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했
1993년 우리 정부(국방부)가 추진했던 FX사업은 공군 전력을 보강하는 차기 전투기(FX: Fighter eXperimental) 도입 사업으로, ‘전투기 120대를 구입하는 대형 사업’에 세계 굴지의 군수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개최한 ‘1996년 서울 에어쇼’(서울 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는 FX사업에서 ‘돈 냄새를 맡은 군수업체들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각축장’이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로 FX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60대만 수입하기로 결정, 그에 따라 2
발리에서 만난 청년들몇 년 만에 하는 현장 행사인가. 코로나 감염병이 끝물이지만 항공료는 여전히 고공행진이고 더욱이 펀드 문제로 행사를 불과 몇 달 앞두고도 개최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좌불안석하기를 여러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하기로 최종 결단을 내렸다. 확실히 개인의 수고로움은 너에게는 ‘남의 일’이다. 그럼에도 현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자약하다면 그만큼 배알이 꼴리고 배신감이 꿈틀거린다. 발리 공항에 내렸을 때 인류가 전에 겪은 적이 없다던 그 공포스런 코로나
북경의 4호선은 청록색 라인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중 절반이 하이디엔취(海淀區)를 통과한다. 북경의 서북쪽 지역이다. 이름난 대학과 연구소가 잇따라 늘어선 곳이다. 중국의 교육 1번지다. 국가도서관도 거기 있다. 이름 그대로 ‘국가’ 최고의 도서관이다. 우리는 4호선 국가도서관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도서관의 맞은편으로 가야 한다.걸음을 재촉하면 공원 하나에 이른다. 석각예술박물관(石刻藝術博物館)이다. 옛 비석과 석조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거기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북경에 오래 산 이들도
이 글은 40호(2023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조인승 할아버지의 ‘외침’(9월 1일은 지진으로) 집이 위험하다고 해서 아라카와荒川 둑으로 가니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1일 저녁에는 불이 타들어오기에 요쓰키四ツ木 다리를 건너 동포 14명과 함께 있었다. 그곳에 소방단원 4명이 와서 밧줄로 우리를 염주알 꿰듯이 묶고는 말했다. “우리는 이 자리를 뜨지만 밧줄을 끊으면 죽이겠다!” 가만히 있으니 밤 8시경 건너편의 아라카와 역(현재 야히로八広 역) 방면의 둑이 소란스러웠다. 조선인을 죽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아시아 가톨릭 청년과 신학자 및 활동가들이 공동협력성(synodality)이나 공동합의적 교회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사회 문제, 특히 토착원주민 공동체 및 생태 위기에 적극 대처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8월 19-28일 인도네시아 발리의 종교영성센터(Rumah Khalwat Tegaljaya)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아청년아카데미/실천신학포럼’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한국, 독일 등 아시아 8개국 청년과 강사 45여 명이 참가했다.이 행사는 우리신학연구소가
일본 정부가 핵 폐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핵 폐수 방류 문제는 최초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2019년 이후 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론 태평양 국가들과 전 세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핵연료 혹은 핵폐기물과 접촉한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안전하다고 포장된 핵발전소도 다량의 방사성물질(최근 논란이 되는 삼중수소 포함)을 배출하지만, 이는 직접적으로 핵연료를 냉각하거나 세척한 오염수가 아니고 간접적으로 냉각할 때 발생하므로 이론상으로는 ‘안전’한 수준이라는 포장이 덧붙여져 가능했다. 최근 일
(편집자 주 :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유토피아’20세기에 유행했다가 지금은 뜸해진 단어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처음 ‘유토피아’의 개념이 제시되었지만,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 이후 일반적으로 널리 쓰였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라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 가 합쳐진 단어다. 한마디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며 평화로운 사회를 말하는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없는 곳’이며 콘크리트와는 더더욱 어울릴 수 없는 단어이
지난 8월 23일부터 2박 3일 동안 종교환경회의 소속 5대 종단 종교인들의 생명평화순례가 있었다. 종교인들은 군산 동국사에서 불교 기도회로 순례를 시작했다. 종교환경회의 상임대표 법만 스님은 발원문을 통해 “바닷물은 태양을 받아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고 샘물이 되어, 다시 내를 이루고 강물이 되어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이렇듯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친밀하게 소통함으로 생명이 된다. 하지만 이런 생명의 길이 인간의 탐욕으로 단절되고 가로막혀 죽어가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2023년 10월 4-29일 열리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1차 본회의까지 한 달 남짓 남았지만, 일선 본당에서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듯하다. 2021년 10월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2022년 상반기에 휘몰아치듯 지역 교회 차원의 만남과 경청, 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본당과 교구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상황 종료’된 느낌이다. 마치 고3 수험생이 수능을 목표로 중고등학교 6년을 공부만 하다가 수능이 끝난 직후의 허무함, 상실감이 이런 느낌일까?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
(기사 출처 = UCANEWS)인도의 동방가톨릭교회인 시로말라바르 전례 가톨릭교회가 전례 문제를 놓고 지난 수십 년간 내분해 온 끝에, 해결책을 찾기 위해 파견한 교종 사절의 명령문에 사제와 평신도 대다수가 공개 불복하고 나섰다. 이로써 시로말라바르 전례 교회는 분열할 위험에 처했다.논란의 핵심은 미사 중에 사제가 신자를 보고 설 것이냐, 아니면 제대를 보고 설 것이냐다. 라틴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를 계기로, 사제가 신자석을 등지고 제대를 보고 미사를 드리던 것을 제대를 가운데 놓고 신
날씨가 정말 덥습니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폭우와 폭염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함을 체험하고 있는 가운데 늦은 밤까지 가시지 않는 더위로 밤잠을 설치며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더위를 잘 이겨내는 일도 만만치 않아 하루가 고단하게 느껴지는데, 여러 뉴스도 갈수록 더 크고 무거운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부끄러운 정부의 행보들과 학생, 교사, 학부모를 둘러싼 교육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장애, 빈곤, 노동 현장과 주택 문제 등 사회적 약자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 혐오와 불신이 더 크게 확산하고 대낮의 흉기 난동 등 흉흉한 사건들
지난 8월 1-6일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참가 후기입니다. 글을 쓰신 이전수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내가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줄로 알지만,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그동안 세계청년대회가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세계청년대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계청년대회 경험이 없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가는 처음부터 저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경쟁이었습니다. 반을 정하는 배치고사부터 쪽지 시험 그리고 중간, 기말고사.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웠고, 그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조금이나마 남들보다 앞서야 하는 것, 그런 현실은 고등학교에 가서 더 심해졌지요. 순간순간 기준에 따라 세워지는 줄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숨 막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서 만난 현실은 완전 달랐습니다. 배려와 형제애를 배우게 되었지요. 그리고 군대를
장마와 태풍으로 잠깐 누그러들었던 폭염이 막바지 기세를 내뿜는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면 폭염은 서서히 물러서겠지만, 원고 압박은 더위 핑계 따위를 양해하지 않는다. 1년 중 이맘때 잠깐 눈 딱 감자면서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켠다. 전기요금이 걱정되는 건 아니다. 탄소 배출 줄이자는 글을 써야 하기에 망설일 따름이다.여름이 전 같지 않으니 에어컨 타령에 공감하는 이가 거의 없다. 부자만 설치하는 걸로 알았던 에어컨은 혼수품 반열에 오르더니 이제 목록에서 제외될 것 같다.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마다 천장 여기저기에 당연히
(기사 출처 = )(원문 편집자 주: 이 칼럼에는 영화 “바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캐슬린 캐버니)핑크색은 가톨릭의 전례적 전통에서는 기쁨과 연관된다. 하지만 이는 고통과 후회, 비탄이라는 속 깊은 경험의 색조를 띠지 않은 기쁨이 아니다. 대림 시기라는 어두운 때에, 예수의 탄생이라는 빛을 열망하는 가톨릭 신자들은 핑크색을 써서 대림 제3주일(Gaudete Sunday, 기뻐하라 주일)을 기념한다. 겨울이 지나갈 즈음 사순 시기에는, 핑크색은 사순 제4주일(Laetare Sunday: 즐거워하라 주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