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다루었던 질문, “대영광송은 언제 하나요?”를 읽고 애독자 한 분께서 추가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가톨릭성가'나 '청소년 성가'집에 수록된 곡 말고 다른 것을 노래로 부를 수 있는가?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저도 우선 답만 먼저 말씀드리자면, 미사전례를 성가대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성체성사를 주례할 분과 상의하여 정한다면 미사곡은 그날 전례에 맞게 선별하여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좀 더 넓게는 미사전례를 꾸미는 구성원들이
“글로리아(gloria, ‘영광’이라는 의미)”로 시작된다고 하여 우리말로는 대영광송이라고 불리는 이 찬미가는 보통 주일미사의 본기도 바로 앞에서 노래하거나 낭송하게 됩니다. 노래를 하든 낭송을 하든 주고받는 식으로 미사에 참여한 이들이 함께 바치는 찬미가입니다.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대영광송을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실 겁니다. 오늘 질문을 하신 분은 언제는 하고 언제는 안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셨지만 그 기준을 잘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냥 주일미사 때는 하고, 평일 미사 때는 안
영적인 사람을 딱히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네요. 하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로 연상해 보는 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깊이, 따스함, 기도, 웃음, 겸손, 지혜, 자비, 부드러움 등이 떠오릅니다. 공자가 사람의 나이 예순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 표현한 것으로 봐서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만큼 많은 것을 나눠 줄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물론 공자는 사람이 나이 드는 이치가 그렇다라기보다는 그 나이가 되면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 것이겠습니다만, 사람은 모름지기 나이가 들수록
주일 미사와 대축일 미사 때 강론과 공동체의 보편지향기도 사이에 오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미사통상문을 들춰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신앙고백문(신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니케아(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니케아신경)”, 다른 하나는 “사도신경”입니다.담고 있는 내용이나 구성은 비슷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좀 더 장엄하며 성부, 성자, 성령에 관한 설명이 좀 더 자세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사통상문의 설명을 들여다보면, 두 개의 신앙고백문 중 전 세계 교회가 일반적으로 바치는 것이 니케아신경임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지옥을 만드셨다고 한 성인이 있다고 하던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오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진짜 그런 말을 한 성인이 있다면.... 그 성인은 괴팍하기 이를 데 없는 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이 쓸데없다니요! 얼마나 심오한 질문인데 말입니다.엄밀히 따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은 그것이 우리에 앞서 창조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어느 본당에서 교리반을 맡고 계신 분에게 난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분 담당의 예비신자 한 분이 자신에게는 대부가 필요 없고 혼자 세례를 받겠다고 하셨답니다. 잘 설득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지 모르겠다 하시면서 대부모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대부모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 얄팍한 기억 안에 교회법상 대부모에 대한 역할과 자격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교회법상 반드시 대부모를 세워야 한다는 조항도 있을 것이라 어림해 봤습니다. 이에 별로 의심치 않으면서
다시 한번 혼인장애와 관련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자인 데레사 씨가 비신자인 모 씨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였습니다. 당시 결혼은 관면혼이 아니라 그냥 예식장에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즉, 교회법상 혼인장애 상태가 되었고 이후 데레사 씨는 성사생활을 멈춘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배우자인 모 씨는 외국 국적의 사람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데레사 씨를 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제 나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데레사 씨는 50대 사람이고, 떠난 남편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입니다.
오늘의 질문에 대해 제가 교회를 대표해서 드릴 답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이해는 나눌 수 있겠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매우 강하게 다가옵니다. 가난한 교회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교회는 가난해 보이질 않기에 교회의 현실에 대해 자문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검소하게 사는 수준에서 삶을 영위할 수는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사회복지 시스템이 지향하는 수준의 가난이고, 이 수준 아래에 있다면 가난이라기보다는 빈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빈곤은 당장 내일 먹을 한 끼니를
혼인성사의 집전자에 대해 묻는다면 별 생각 없이 주교나 신부라고 답하실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일견 교회법 제 1108조 2항을 보면, 혼인의 주례자는 그 자리에 입회하여 혼인 당사자들의 합의 표명을 요청하고 그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접수하는 사람만을 뜻합니다. 즉, 일반적으로는 주교, 사제나 부제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사실상 그 자리에 혼인유대를 위해 출석한 혼인당사자들임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 내용을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계십니다. 즉, 앞서 언급한 혼인의 주례자는 이 예식의 집전자라기보다는 혼인 당사자들
오늘 다룰 질문을 만나고 보니, '프리스트'('Priest', 안토니아 버드 감독, 1994)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영화가 나온 지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새삼 놀랍지만, 그 영화의 내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소녀가 첫영성체를 앞두고 첫 고백성사를 하는 부분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사제는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도록 소녀에게 충고를 해 주지만 소녀는 아버지가 두려워 엄마에게 알리지 못합니다. 결국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전 세계 공통의 전례주년을 살고 있습니다. 대림기간을 시작으로 전례상의 새해가 시작되고 일 년간 진행되는 전례의 독서와 복음이 전 세계 공통이라는 점은 세계의 신자들이 언어는 서로 달라도 모두 신앙 속에서 한 가족임을 실감하게 해 줍니다. 이것이 가능한 데는 '로마 보편 전례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례력은 당연히 로마 가톨릭의 전례 주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일정을 가지고 한 해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7년 작년까지는 대축일로 지냈던 날이 올해부터는 기념일로 변경
저도 한번쯤 기르고 싶은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사는 친구가 최근에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 친구는 여정 중에 성물판매점에 들러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를 위해 십자가를 하나 구했습니다. 여기에 강아지 이름과 보호자인 자신의 전화번호를 새겨 애견에게 달아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생각해 보니 '이거 성물에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이 생겼나 봅니다. 여러분은 제 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전에 다뤄 보았던 속풀이, “축성과 축복은 같은 말인가요?”
지난 10월 14일에 새롭게 성인 7명이 탄생하였습니다. 그 구성을 보면, 6명이 성직자 혹은 수도자입니다. 유일하게 평신도가 한 분 계시고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이었습니다. “Nunzio Sulprizio”. 비오 9세가 가경자로 선포했고, 1963년 바오로 6세가 그를 복자품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2018년 10월 14일에 눈치오 술프리치오는 자신을 복자품에 올렸던 바오로 6세 교황과 함께 시성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한 청소년, 그런데 시성이 된 한 청소년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시복(beatification)과 시성(canonization)을 통해 신앙의 귀감이 될 사람들을 알려 왔습니다. 시복은 모범적인 신앙인을 복자로 인정하는 것이고, 시성은 복자로 인정된 그를 성인품에 올리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영웅적으로 신앙을 증거한 이의 사후에 진행됩니다. 절차상 시복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에 시성 절차를 거쳐 시성이 이루어집니다. 보통 시복을 위해서는 그 시복 대상자에게 기도하여 일어난 기적이 한 가지라도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복자가 되고 난 뒤, 다시 그를 통해 일어난
“속풀이” 독자분께서 헌금에 관해 질문해 오셨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장례미사를 위해 미사예물의 액수가 정해져 있는지, 그리고 장례 뒤 위령미사를 봉헌할 때 미사 예물의 액수가 정해져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본당마다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장례미사를 위해서든 위령미사를 위해서든 미사예물이 있습니다. 각 미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평균가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위령미사는 미사 한 대에 보통 3-5만 원 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규정은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 그 이하를 혹은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세상 어디든 간다고 했던 예수회원들의 행동양식이 현대에도 지켜지고 있는지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영혼구제를 위해서 지옥까지도 쫓아간다는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그걸 귀엽게 봐주신다면, 그만큼 이웃 영혼이 멸망하지 않고 단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의 빛을 보게 되기를 바랐던 열정의 표현으로 이해해 주시길 청합니다.예수회가 창립되었던 16세기에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당연히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
사제 양성에 관심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종종 물어오십니다. 서품기념 상본(그림 카드)을 제작할 때 성구를 넣는데, 그게 정해진 것인지를 궁금해 하십니다. 여기서 성구는 서품식과 그 기념 상본에 사용된다고 하여 서품성구라고 합니다.과연 그것이 꼭 필요한가? 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꼭 정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서품 기념 상본을 준비하면서 성구를 정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는 주변에서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이것은 하나의 전통으로서, 따져 보면 주교들이 주교품을 받을 때 사목
며칠 전 보드게임과 관련한 세계대회가 영국에서 열렸나 봅니다. 그 대회에 참가한 절친의 고등학생 조카가 (어느 종목인지는 몰라도) 우승을 거머쥐고 이 실적을 핑계삼아 런던에서 며칠 더 관광을 하려 했습니다.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가야 하지만 런던이 가까운 곳도 아니고 하니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너그러운 분이시길 기대하게 되었습니다.제 친구는 조카가 이왕이면 런던에 있는 한인 본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사목하시는 수녀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저도 그게 매우 바람직한 생각이라 동의했습니
최근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 성당(의정부교구)"과 그 옆의 “민족화해센터"에 들를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교회 차원에서도 남과 북이 좀 더 자유롭게 오가게 된다면 충분히 실현시켜 볼 만한 다양한 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단 전과 지금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할지라도 북한 지역에서 가톨릭 교회가 활동했던 역사를 지워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없으리란 법도 없고, 장충성당과 같이 상징적 성당이 있는 한 언젠가는 그곳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보통 신자들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설립된 성당을 우리는 본당(本堂, 영어로는 parish)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의 파로키아(parokia)에서 온 말입니다. “이웃에 살다”, “함께 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가톨릭 대사전, “본당” 항 참조)가톨릭 교회의 행정 조직 안에서 본당은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준본당은 뭘까요? 기초 공동체에는 공소도 있는데 그것의 다른 말이 준본당일까요? 어림해 볼 때, 준본당은 공소와 본당의 중간 정도가 되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공소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