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다. 한낮의 전주는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고 종종 더워서 옷소매를 걷어야 했다. 꽃들은 졌지만 여전히 바람이 불면 어딘가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코끝에 닿는 새침한 바람을 영원히 잡아 두고 싶었다. 바람이 헤집어 놓은 나의 설렘을. 그것은 순전히 너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낯설지만 동시에 낯설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굳이 이곳 전주까지 와서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건 적어도 내게는 나의 좁고 작은
엄마는 유방암 중에서도 삼중음성이었다. 유방암 종류는 대략 호르몬(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양성, 허투(HER2, 상피성장인자 단백질) 양성,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속하지 않는 삼중음성으로 나뉜다. 삼중음성은 호르몬, 허투 양성과 달리 수용체가 없는 암이고,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정확히 공략할 대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발성 전이가 잘 일어나 예후가 좋지 않다고 본다. 첫 진료를 받았을 때,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삼중음성.... 예후가 안 좋은데....”라고 의사가 말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치료해 볼 것이라면 굳
“중국인은 서양 음악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청각 구조가 서양인과 다른 까닭입니다. 기후 조건도 한몫하는 듯합니다.”아미오의 중국 음악 연구조제프 아미오(Joseph-Marie Amiot, 錢德明, 1718-93)가 쓴 글이다. 원고 제목은 ‘중국현대음악’(“De la musique moderne des Chinois”). 건륭 19년부터 몇 년간(1753-59?) 쓴 편지 모음이다. 그는 북당의 예수회 선교사였다. 1751년에 북경에 온 뒤로 생애 마지막까지 북당에서 살았다. 하프시코드를 곧잘 연주했고, 중국 피리 솜씨
우리는 지금 체르노빌 핵사고 37주기와 후쿠시마 핵사고 12주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사고 오염수의 해양 방류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그린피스와 탈핵부산시민연대 등은 티머시 무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생물학 교수와 숀 버니 그린피스 동아시아 원자력 수석 전문위원을 초청해서 “저선량 피폭과 삼중수소”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핵사고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대해 “국제적인 관행을 따르고 있다”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IAEA,
“당신은 노예입니까? 노예가 아닙니까?”페루로 이민을 간 지인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거기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비할 바 없이 오랜 세월을 식민지하에서 살아왔기에 자연스레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노예냐, 노예가 아니냐로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맥락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당신은 품는 사람입니까, 품는 사람이 아닙니까?”알을 품는 암탉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을 품는다는 건 무엇일까? 알을 품지 않거나 못 품는 건 왜 그럴까? 암탉만 알을 품을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수탉도 함께
오늘부터 화요일에 '정 기자의 간병 일기'를 총 9회 연재합니다. 2021년 여름부터 암으로 아픈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암 환자로서 그 보호자로서 처음 겪은 특별한 경험들을 나눕니다.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집필해 주신 정현진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2021년 8월 26일,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아빠를 재발 암으로 잃은 지 막 3년이 되던 때였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23년 3월 말, 5개월 모자란 2년이다. 아픈 엄마와 동행하는 일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아빠가 아
4월 1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시리즈 ‘퀸메이커’가 4월 3주 차에 집계된 시청 순위에서 전 세계 6위, 비영어권 부문 1위에 오르며 ‘더 글로리’에 이어 순조로운 기록을 보이고 있다. K 콘텐츠의 세계적 사랑은 이미 익숙한 상황이어서 이런 양호한 기록이 뉴스거리에 오르지도 않는 현실이다.정치, 경제적 암울함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버린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할 ‘퀸메이커’는 많은 정치, 경제적 사건을 스토리에 녹여내 다시 한번 환기하는 것으로 극의 몰입도를 끌고 간다는 면에서 화제로 삼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세상이라는 제대 앞에서”, 전숭규, 에체, 2023전숭규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인 2012년 “매일미사”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묵상집으로, 동창 사제들이 그의 10주기를 추모해 만들었다.전 신부는 1962년 태어났고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동기들보다 열 살 정도 늦은 나이에 입학해, 1997년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종종 지병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도봉동 보좌신부, 서울대교구 복음화 사무국 차장, 서울대교구장 비서 등을 맡아 헌신했다.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
봄빛이 깊어지면서 아침이 점점 빨리 찾아오고 있다. 겨울에는 주로 밥 달라고 울어대는 고양이들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면, 요즘은 집 앞 텃밭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눈을 번쩍 뜬다. 어제 심은 옥수수 모종은 밤새 안녕할까? 씨 고구마 묻어 놓은 데 덮어놓은 낙엽더미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을까? 완두콩에 꽃이 피었을까? 오늘 아침에도 딸기 꽃은 이슬을 맞아 더 어여쁠까? 상추 새싹이 좀 더 자랐을까? 너무 궁금해서 용수철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간다.한편, 뒤따라 튀어 나오는 다랑이와 다나의 마음은 새
브라질의 환경운동가였던 치코 멘데스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무채취 노동자였으며, 아마존을 보존하기 위해 대지주들을 상대로 타협을 모르고 투쟁했습니다. 1988년, 치코는 아마존 숲을 태워 기업형 농장이나 목장을 만들려고 하는 축산업자들의 아마존 훼손과 맞서서 싸우다가 축산업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치코의 암살사건은 전 세계의 언론에 주요 뉴스가 되었습니다. 치코의 생애와 죽음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아마존 열대우림의 훼손과 보존 문제를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1989년
“우리 북당의 앞뜰은 ‘라 플레슈’(La Fléche)의 정원을 닮아 있습니다.”라 플레슈와 북당건륭 37년(1772), 북당의 선교사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프랑스 예수회원 씨보(Pierre-Martial Cibot, 韓國英, 1727-80)의 서신이다. 그는 1760년에 북경에 온 뒤로 줄곧 북당에서 살았다. 편지에 언급한 ‘라 플레슈’는 프랑스의 예수회 학교다. 씨보를 비롯해 북당의 많은 선교사가 거기서 공부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수학했던 곳이기도 하다. 강희(康熙) 연간
어느 사회에서나 참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대응에 따라서 그 사회는 달라집니다. 적어도 ‘이 참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와 참사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밝히는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발 방지를 위한 지침이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을 겪은 우리 사회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태원 참사입니다. 우리는 159일 전의 이태원 참사에
2021년에 제작한 독일 예술영화 한 편이 뒤늦게 개봉했다. 영화관은 불황이어서 기술적으로 풍성하게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아니면 흥행이 어려운 지금, 조용히 개봉하여 조용히 묻혀 버리는 좋은 예술영화들이 많이 있다. ‘나의 연인에게’도 그와 같은 처지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결코 작지 않다. 청춘의 사랑과 질곡을 다룰 것같은 제목이지만, 영화는 사랑 이면에 놓인 거대한 신념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원제는 ‘부조정사, 세상은 달라질 거야’이다. 파일럿을 꿈꾸는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부조정사가 되어 달라고
베트남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꺼라오족 마을을 가는 길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장에 들렀습니다. 베트남 국수와 ‘반미’라고 부르는 바게트 종류의 빵과 베트남 맥주 한 캔을 마셨습니다. 동행하는 이들에게 한국말로 ‘반미’는 ‘양키 고 홈’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행하던 이들이 놀라면서도 웃었습니다. 마트를 나오는 길에 햇살 가득 담은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눈부신 역광으로 그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나에게 담배를 권했습니다. “노 스모킹”이라고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그는 계속 담배를 권했습니
얼마 전에 우리 집 닭장에 사는 최고령 청계 할머니(7-8년째 동거 중)가 일을 냈다. 할머니는 주로 닭장 내 2층 공간(경로당)에서 생활하는데, 닭장에 들어간 다울 아빠가 우연히 거길 살피다가 할머니가 고이 숨겨 둔 달걀 네 알을 발견해낸 것이다.“검은 닭이 아.직.도. 알을 낳나 보네.”“검은 닭이 알을 낳는다고요? 에이, 설마.”믿기 어려웠지만 정말 내 앞에는 달걀 네 알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낳아 얼마만큼 오래 숨겨져 있었는지 모를 알들이었다. 혹시나 하고 깨뜨려 보았더니 노른자 모양이 조금 이상하고 흰자 점성도 묽어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