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제대 앞에서”, 전숭규, 에체, 2023전숭규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인 2012년 “매일미사”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묵상집으로, 동창 사제들이 그의 10주기를 추모해 만들었다.전 신부는 1962년 태어났고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동기들보다 열 살 정도 늦은 나이에 입학해, 1997년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는 종종 지병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도봉동 보좌신부, 서울대교구 복음화 사무국 차장, 서울대교구장 비서 등을 맡아 헌신했다.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
봄빛이 깊어지면서 아침이 점점 빨리 찾아오고 있다. 겨울에는 주로 밥 달라고 울어대는 고양이들 울음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면, 요즘은 집 앞 텃밭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눈을 번쩍 뜬다. 어제 심은 옥수수 모종은 밤새 안녕할까? 씨 고구마 묻어 놓은 데 덮어놓은 낙엽더미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을까? 완두콩에 꽃이 피었을까? 오늘 아침에도 딸기 꽃은 이슬을 맞아 더 어여쁠까? 상추 새싹이 좀 더 자랐을까? 너무 궁금해서 용수철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간다.한편, 뒤따라 튀어 나오는 다랑이와 다나의 마음은 새
브라질의 환경운동가였던 치코 멘데스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무채취 노동자였으며, 아마존을 보존하기 위해 대지주들을 상대로 타협을 모르고 투쟁했습니다. 1988년, 치코는 아마존 숲을 태워 기업형 농장이나 목장을 만들려고 하는 축산업자들의 아마존 훼손과 맞서서 싸우다가 축산업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치코의 암살사건은 전 세계의 언론에 주요 뉴스가 되었습니다. 치코의 생애와 죽음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아마존 열대우림의 훼손과 보존 문제를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1989년
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우리 북당의 앞뜰은 ‘라 플레슈’(La Fléche)의 정원을 닮아 있습니다.”라 플레슈와 북당건륭 37년(1772), 북당의 선교사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프랑스 예수회원 씨보(Pierre-Martial Cibot, 韓國英, 1727-80)의 서신이다. 그는 1760년에 북경에 온 뒤로 줄곧 북당에서 살았다. 편지에 언급한 ‘라 플레슈’는 프랑스의 예수회 학교다. 씨보를 비롯해 북당의 많은 선교사가 거기서 공부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수학했던 곳이기도 하다. 강희(康熙) 연간
어느 사회에서나 참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대응에 따라서 그 사회는 달라집니다. 적어도 ‘이 참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와 참사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밝히는 것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발 방지를 위한 지침이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을 겪은 우리 사회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태원 참사입니다. 우리는 159일 전의 이태원 참사에
2021년에 제작한 독일 예술영화 한 편이 뒤늦게 개봉했다. 영화관은 불황이어서 기술적으로 풍성하게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아니면 흥행이 어려운 지금, 조용히 개봉하여 조용히 묻혀 버리는 좋은 예술영화들이 많이 있다. ‘나의 연인에게’도 그와 같은 처지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결코 작지 않다. 청춘의 사랑과 질곡을 다룰 것같은 제목이지만, 영화는 사랑 이면에 놓인 거대한 신념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원제는 ‘부조정사, 세상은 달라질 거야’이다. 파일럿을 꿈꾸는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부조정사가 되어 달라고
베트남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꺼라오족 마을을 가는 길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장에 들렀습니다. 베트남 국수와 ‘반미’라고 부르는 바게트 종류의 빵과 베트남 맥주 한 캔을 마셨습니다. 동행하는 이들에게 한국말로 ‘반미’는 ‘양키 고 홈’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행하던 이들이 놀라면서도 웃었습니다. 마트를 나오는 길에 햇살 가득 담은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눈부신 역광으로 그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나에게 담배를 권했습니다. “노 스모킹”이라고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그는 계속 담배를 권했습니
얼마 전에 우리 집 닭장에 사는 최고령 청계 할머니(7-8년째 동거 중)가 일을 냈다. 할머니는 주로 닭장 내 2층 공간(경로당)에서 생활하는데, 닭장에 들어간 다울 아빠가 우연히 거길 살피다가 할머니가 고이 숨겨 둔 달걀 네 알을 발견해낸 것이다.“검은 닭이 아.직.도. 알을 낳나 보네.”“검은 닭이 알을 낳는다고요? 에이, 설마.”믿기 어려웠지만 정말 내 앞에는 달걀 네 알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낳아 얼마만큼 오래 숨겨져 있었는지 모를 알들이었다. 혹시나 하고 깨뜨려 보았더니 노른자 모양이 조금 이상하고 흰자 점성도 묽어진 상
1595년, 프랑스 두에(Douai)에서 출판된 책이 있다. 제목은 ‘오라토레스’(Oratores). 고대 그리스의 연설 모음집이다. 17년 전, 이 책이 중국의 유명한 고서적 경매 카탈로그에 실렸다. 주최 측은 이 책을 예수회 선교사 트리고(Nicolas Trigault, 金尼閣, 1577-1628)와 연결시켰다. 그가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져온 책이라는 추정이다.이유는 두 가지였다. 두에는 트리고의 고향이다. 트리고는 1617년 즈음에 고향을 방문했고 여러 책을 수집했다. 또한 두에는 작은 마을이다. 이런 라틴어 책은 발행 부수가
비엣남 서북부 소수민족 여성들은 강인했습니다. 그들은 중국과 몽골, 일본과 프랑스와 미국의 침탈에 저항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비엣남은 구리와 주석, 고무 등의 천연자원과 군사적 요충지로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야 했습니다.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북부의 거친 산악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입니다. 비와 바람의 영향으로 카르스트 지형은 칼날처럼 날카로왔습니다. 쌀농사가 불가능한 그 바위들 틈을 개간하여 옥수수와 채소 등을 심고, 자급자족했습니다. 손이 모자라면, 품앗이를 통해 부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마에스트로(‘마에스트라’라고 불러야 하지만 리디아는 스스로 마에스트로로 부르고, 딸에게는 스스로를 아빠로 칭한다)로서 최고의 실력과 명예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 성공했기에 존경이 마땅한 그녀는 기실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영화 오프닝은 줄리어드 음대에서 특별 수업을 하는 에피소드를 길게 다룬다. 리디아가 바흐를 사례로 들자, 사라 장을 존경하여 줄리어드에 왔다는 한 유색인 남학생이 자신은 “비백인 팬젠더(모든 성별 정체성을 가
“너는 마흔네 살에 죽었다. 너무나 젊은 나이다. 그러나 네가 천 살을 살았다 해도 나는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이다. 슬픔은 오롯이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고 이 슬픔은 꽤 오랜 시간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상실은 불현듯 찾아오고 우리는 다 나누지 못한 삶의 조각들을 서둘러 찾아보지만 이제 그(그녀)를 다시는 볼수 없다는, 영원히 만져볼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 이번 책 "상실 수업"은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
저는 지금 베트남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베트남을 방문하고 싶었던 작은 꿈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베트남은 50여 소수민족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수민족들 중에서 베트남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중국과 라오스 국경 지대에 있는 곳을 중심으로 소수민족들의 사람들과 삶을 담고 있습니다.오늘은 제가 다닌 곳 중의 작은 풍경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3000미터가 넘는 판시판산은 ‘동남아의 지붕’이라고 부릅니다. 서북부 지
“성경, 내게 말을 걸다”, 배성연, 생활성서, 2023성경 묵상을 글로 쓰면서 치유와 회복력을 경험한 저자가 자신의 체험과 성찰을 담았다. 더불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되돌아보는 데 적절한 심리학적 질문을 제시한다.저자 자신이 경험했듯이 성경 묵상 글쓰기를 통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알게 모르게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심리학적 주제를 쉽게 설명하면서 그 이론을 적용하는 예를 저자의 삶과 성찰에서 찾고 보여 주기 때문에 심리학을 성찰에 활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저자 배성연은 아동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