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물티슈, 간단한 음료와 함께 유인물을 나눠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 하시는 분들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엔 일상에 유용한 물건들을 받아 챙기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물건도 제공되지 않는데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소음에 가까운 구호를 듣게 되는 경우가 더욱 빈번합니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서 길을 지나는데 물 한 병과 유인물을 건네며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물건은 받아 챙기며 한마디 응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예수 믿어요.” 그랬더니 상대방도 한마디 덧붙이더군요. “그럼 제대로 믿으세
주일이나 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회중들이 듣게 되는 성경의 말씀은 1독서, 2독서 그리고 복음, 이렇게 세 가지가 됩니다. 그 외의 평일미사에서는 2독서가 없습니다. 1독서와 복음, 두 가지만 읽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미사에 참례하지 않은 이상, 이 독서들이 서로 의미를 주고받고 있음을 느끼셨을 겁니다. 좀 더 예민하신 분들은 1독서와 2독서 사이(혹은 1독서와 복음 사이)에 불리는 화답송(시편을 노래합니다)도 그날의 독서와 복음 내용에 부합하고 있음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례시기에 따라 정해진
고해소에서 가장 많이 고백되는 죄가 있다면, 그건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을 잘 의식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누군가 나의 행동이나 말투, 표정 등에서 뭔가 상처를 받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전혀 의도치도 않았고 의식하지도 못하면서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를 보는 이가 과거와 연관된 어떤 상처를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태도가 대면하기 거북한 지인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종종 선
그리스도교 안에는 가톨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과 그분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주류들 안을 보면 또 다시 여러 가지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다양함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다양함 안에서 우리 모두가 같은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교파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저는 가능하다라고 말씀
매우 생소한 단어인 “근본 유효화”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틴어로는 sanatio in radice(싸나티오 인 라디체)라고 표기되는 이 교회법률 용어의 원뜻은 "뿌리에서 치료함”을 의미합니다.이 용어는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유효한 혼인을 하지 않은 경우, 즉 무효한 혼인을 하여 현재 성사생활을 하는 데 장애를 가진 이들과 관계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 예가 혼인성사를 통해 결혼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교회법상 모든 신자는 혼인성사를 통해 결혼을 해야 합니다.우리는 흔히 배우자가 신자가 아니라서 유효한 절차를 밟
주변에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연륜 있는” 청년들이 여럿 눈에 띄다 보니 자연스레 이 친구들을 모아 활동 수도회 분위기의 공동체를 하나 만들어 볼까 하는 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때마침 그런 친구들 중에 한 친구가 수도회는 어떻게 설립될 수 있는지 물어 왔습니다.제가 몸담고 있는 예수회의 예를 들어 보자면, 수도회가 생기기 전 초창기 그룹은 의기투합한 사제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처럼, 함께 이스라엘에 가서 활동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 뜻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고, 심사숙고 끝에 교황 알현을 통해 자신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천주 성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복음 여기저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정작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시곤 했습니다. 교리 수업을 하다 보니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불리는 것에 대해 좀 어색해 하시는 분들이 계신 듯합니다. 예수님이 신앙의 대상이므로 지존의 자리에 모시고 최고 호칭으로 불러드리고 싶은데 “사람의 아들”이면 격이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부르셨는데요. 그래서 예수님을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인지 치매가 알츠하이머병인지 헷갈리지만 아무튼 알츠하이머병은 우리가 치매라고 부르는 뇌 질병의 가장 흔한 증세라고 합니다. 기억력과 사고력에 문제가 생기며 따라서 이상행동을 보입니다. 옛날엔 어르신들 중 헛소리를 한다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면 노망났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치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치매가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 만큼 누구든 치매에 걸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성직자도 수도자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보통 80살 전후로 치매 발병률이 높다고 하지만 더 일찍 뇌 기능에 이상이 올 수도 있습니
요즘 신앙생활에 눈을 뜨고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의 문제에도 귀를 기울이며 함께 힘을 보태고 있는 친구랑 신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일하면서 만나게 된 개신교 신자분이 있나 본데, 종종 제 친구가 세월호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해 연대의 노력을 보일 때 이런 사회참여가 성경에 나와 있느냐 하며 질문한다고 합니다. 제 친구는 자신이 뭔가 의미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개신교 신자 지인이 성경의 근거를 캐어 물으면 뭔가 속 시원히 답을 할 수 없고 부끄러워진다고 합니다.뭐.&h
학교 수업을 통해 알고 지낸 학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느냐 해서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최근에 예비자 교리를 들을 결심을 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하여 평소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언젠가 신학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생겼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속풀이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사실 “하느님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 아닌가?”에 대한 답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
[독자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원고를 서둘러 쓰다가 내용을 불분명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기사를 정정하여 올립니다.]어쩌다 304명의 희생자들이 생긴 걸까요?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침몰사고의 가슴 아픈 사연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올 4월 초에는 그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한 편, '생일'이 개봉될 예정이라는데 많은 분들이 관람하시길 기대합니다.2014년 4월 16일은 성주간 수요일이었고,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시간이
현대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를 들라면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그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반려동물을 찍은 사진과 흥미로운 동영상들이 넘쳐 나고 좀 더 넓게는 동물들이 보여 주는 온갖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들이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에게 세례를 줄 수 있나? 반려동물를 위한 장례미사도 가능하지 않느냐? 등의 질문을 받는 게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에도 우스갯소리로 들려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성당을 개보수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고민하는 본당사제의 이야기 기억나시나요?(“견진성사는 주교
성당에서 자주 성가 반주 봉사를 하는 후배가 물었습니다. 어깨보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 후배에겐 그 천이 어째 거추장스럽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뜻 엄청 부풀려 놓은 머플러 같기도 하거든요. 아무튼 예전에는 보통 황금색으로 제작되었고 금실로 무늬도 들어갔다고 합니다. 어깨보는 자주 볼 수 있는 전례복장이 아니라 미사만 다니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 듯합니다. 반면, 성체강복 등의 전례에 참여해 본 분들은 어깨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실 겁니다. 폭은 약 90센티미터, 길이는 거의 2.8미터 정도가 되는 긴 직사각
어떤 분이 묵주반지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선물하신 분이 좀 성급하셨던 모양입니다. 선물 받을 사람의 손가락 굵기를 감안하지도 않고 얼추 맞겠다 싶으니까 사제의 축복까지 받아서 선물을 했던 것이지요. 막상 고맙게 받고 손가락에 끼었는데 좀 헐렁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물해 주신 분에게 물어서 반지를 산 성물판매소를 알아냈습니다. 구매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찾아가서 좀 더 작은 묵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런데 판매소에서는 그것이 이미 축복받은 것임을 알고 교환이 어렵겠다고 하더랍니다. 이럴 땐 어쩌죠
가끔씩 성당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현장에서 수도자와 함께 일하는 신자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분들에게 수도자는 독신을 서약하고 산다는 것 외에는 세속에서 같은 터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수도자를 보면 뭔가 구분되고 특별히 더 대접을 해 드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귀감이 될 만한 수도자라면 마음으로부터 그런 마음이 우러나겠지만, 대하기 불편한 수도자라면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는 평신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분들의 하소연을 듣게 되면 수도자인 저도 은근 미안해집니다. 성품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편이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느슨한 것 같지 않은데 뭔가가 허한 것 같다. 불행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행복한 기분도 아니다.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하는 것이었습니다.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아도 건강에 이상이 온다면 그 일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적잖은 이들이 나로 인해 고생을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쉴새 없이 바쁘게 지내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제단 위와 그 주변으로 여러 가지 사물이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대, 십자고상, 감실 등입니다. 감실(龕室, tabernaculum)은 예수님의 성체를 모셔 두는 곳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마련된 성체가 남는 경우 그곳에 보관합니다. 이렇게 보관되는 성체는 우선 특별한 사정으로 미사 참례를 못한 사람이나 병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 참례자 수에 비해 성체가 충분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조학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미사 이야기 2", 대전가톨릭대
미사를 위해 제대상을 차린 봉사자가 냉장고에 특별한 표시가 없이 들어 있던 물병에서 물을 덜어 제대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미사 주례자는 포도주와 물을 섞었을 때도, 나중에 성혈을 마실 때도 별 눈치를 못 챘습니다. 이상 징후를 인지하게 된 것은 성혈을 마시고 성작을 닦기 위해 물을 붓고 들이켰을 때였습니다. 물에서 짠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연을 듣고 저도 몇 년 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피정집에 가서 봉헌했던 미사 마지막 부분에 성작에 부었던 물을 마시는 순간 느꼈던 그 맛. 성수는 사제의 축복을
언제부터인가 시내를 오가다 거리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장면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그 미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긴 이들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위해,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과 경고를 하기 위해.… 등등 이렇듯 다양한 지향을 가지고 세상에 예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 친구가 그처럼 거리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은 어느 교구에 소속된 이들인지를 물어 왔습니다. 모든 사
공동체 형제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거나 가볍게 막걸리라도 한잔 하는 일이 벌어지면 종종 사목이나 전례, 신학 일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곤 합니다. 어느 날 저녁에는 갑자기 성혈에 날파리가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가 불쑥 화제에 끼어들어 왔습니다. 언젠가 속풀이에서 “성체가 땅에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죠?”라는 질문을 다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실수로 성작을 엎어 성혈을 흘렸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날파리 등의 벌레가 성작에 빠진다거나 바람에 나뭇잎이 성작에 빠진다거나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