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이 채 자리 잡기 전의 일이다.아침에 메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셔틀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나갈 채비를 했다. 항상 대외용으로 선보이는 바지를 꿰어 입고 옷장 깊은 곳에서 딱 한 벌만 꺼낸 유일한 아우터를 걸치고 머리를 손빗으로 빗는데 일 분이면 충분하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후...이정도면 영락없는 아줌마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비가 하염없이 오는데 이중창, 삼중창도 아닌 한 십중창 정도 되는 벌레들의 합창 소리가 빗소리를 배경으로 계속 변주 중이다. 그중 한 벌레 소리가 내 귓가에 대고 바로 울리는 듯 가깝고도 가까워 굳이 살피지 않고도 알겠다. ‘저쪽 거실 구석 어딘가에 귀뚜라미가 들어왔는데 여기가 어딘가 하며 낯설어 더 크게 목청껏 우는 거겠지. 여기 홀로
요즘 애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엄마들을 보고 꼭 예전 엄마였던 사람들(지나가는 아줌마, 지나가는 할머니, 지나가는 여자 상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요즘엔 애 키우기 정말 좋은 세상이다.”그러면서 옛날에 동네 빨래터에서 천기저귀 빨면서 애 키운 것부터 시작해서 산후조리가 뭐냐, 애 낳고 바로 밭에 가서 김을 맸니, 애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뱃속에 또 하나
이번 칼럼은 도통 쓰기가 힘들었다. 내 내면에서 우러나는 칼럼 내용은 온통 회한과 절망, 슬픔뿐이었는데, 그조차도 기력이 딸려서 쓸 수도 없었다.고백하면 메리는 쉬운 아이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돌까지는 상위 0.1프로에 드는 신이 내린 선물 같은 아이였다. 2개월여부터 밤잠을 7시간씩 깨지 않고 내리 잤고, 낮잠도 서너
메리가 도시 아파트촌의 놀이터에 놀러갔다. 한 아이가 메리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너 몇 살이야?”“나 다섯 살.”“어, 나도 다섯 살인데~”미끄럼틀 아래서 두 아이의 첫 만남이 흐뭇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 아이가 메리를 향해 두 번째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는.그 아이가 말했다. “근데 너, 왜 그렇게 새까매?” 쿠쿵!‘윽, 예리하군. 이젠 메리 새
* 주의 : 아기 똥에 면역력이 안 생긴 미혼 남녀와 식사 전후의 일반인들은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똥을 똥이라 하지, 응가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각종 똥 테러를 빼고서는 제대로 된 제 일상을 보여 드릴수가 없기에……. 스파게티 면을 삶고 있었다. 면 안에 심 있는 ‘알단테’까지 삶는 것에 내 모든 감
고등학교 시절 내게는 ‘지치지 않는 소녀’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래저래 잠이 모자란 학창시절엔 쉬는 시간에 흔히 ‘전멸’이라고 부르는 잠 대열이 마치 전쟁터에서 폭격 맞은 군부대의 풍경처럼 펼쳐졌는데, 아이들은 다음 수업시간이 될 때까지 책상에 엎드려 코 박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했다.물론 대체로 혈기왕성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논설문이
오늘은 바람이 참 이상도 하지. 마치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부는 바람 같아. 알게 모르게 다치고 지친 내 마음에 바람이 불어와 ‘다 괜찮다, 괜찮아. 어른이 돼서, 엄마가 되어서 힘들지? 내가 안다, 다 안다. 넌 아직도 예전에 내가 만났던 어린 아이, 눈물 많고 구름과 별을 자주 쳐다보던 아이인 걸 알지. 난 널 만나러왔어’ 이렇게 말해주는 거 같다.애들
아이들의 적응력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우리 가족 중 제일 먼저 세 살 욜라가 ‘촌아이’가 되었다. 대근육 발달이 좀 늦된 타입으로 16개월에서야 걸음마를 뗀 욜라는 이제 막 걸음에 속도가 붙고 좌회전, 우회전, 유턴 같은 방향 전환에 재미를 붙인지라 하루 종일 마당에 나가고 싶어 하는 ‘마당병’ 걸린 상태다.그래서 하루에 수 회 우리 집 마당을 중심으로
“애 키우는 거 힘들지?”누가 물으면 그 대목에선 늘 그렇듯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슬픈 표정이 되어 “응, 난 아무래도…… 애 보는 거 체질에 안 맞나봐”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존경하옵고 늘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즐겨 하시는 나의 은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이 애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냐? 체질에 안 맞으
요즘 들어 나의 아침은 더욱 혹독해졌다. 애 키우는 걸 함께하던 육아 동시대인 상당수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을 재개했거나, 집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치열한 육아현장에서 슬며시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내 주변 SNS에서는 아이가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출근하면서 “엄마 사랑해~ 빠이빠이~ 뽀뽀 쪽” 하는 사진과 증언들을
마당 있는 집으로 (괜히) 왔다.아침 아홉시. 메리 유치원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주고 이렇다 할 랜드마크 없는 시골길에 약간 현기증을 느끼면서, 이 집이 아까 그 집 같고 저 집도 요 집 같은 요상한 시골집들에 계속 헷갈려하면서 무조건 우리 집 빨간 지붕만을 찾아서 길을 거슬러 오는 길이다.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땅만 보고 걸으면 곤란하다. 이른 아침부터
태어난 지 15개월부터 사회생활(어린이집)을 8개월여 하다가 동생 본 덕분으로 다시 집으로 귀환하여 실컷 놀면서 1년 꿇고, 올해부터는 유치원에 다니게 된 첫째 메리워드(이하 애칭 메리)는 다섯 살 여자아이다.그리고 태어나서 제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주변의 찬사 속에 꼭 배우 송중기 정도 꽃미남으로 자랄 것 같던 카리스마적 눈빛과 오똑한 콧날, 브이라인 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