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읽은 어느 신부님의 글이 가끔씩 내 마음에 떠오른다. 그 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백 프로의 힘을 쓰며 살 수는 없다는 것. 그랬다간 오래지 않아 지친다는 것. 그러므로 자신은 평소에 80프로의 힘으로 생활하다 백 프로가 필요할 땐 그 힘을 쓰고 일이 끝나면 다시 80프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항상 최선을 다해 살 것을 요구받는다. 요샌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 어릴 땐 모든 초등학교 아이들의 목표가 서울대였다. 당시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위 1퍼센트에 들어가야 했는데 100대 1의
지난 성탄 때, 은사이신 신부님의 사모곡을 받았습니다. 임의 꾐에 넘어가 평생을 역사비평과 해석학을 기반으로 역사의 예수를 찾았던 정양모 신부님께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었습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음미하다가 독자들에게 신부님의 사모곡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의 사모곡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익명의 벗들까지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사랑이신 신부님의 글을 소개하면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은 어머니의 꽃다발이 자꾸 생각납니다. 치매를 앓으셨던 어머니가 온전한
2021년 1월 26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이 사업장의 안전체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법 시행을 1년 늦췄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추가로 준비기간 2년을 더 주었다. 예정대로면 이 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된다. 그런데 지난해 말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2년 더 유예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손 놓고 있던 정부와 여당과 사용자 쪽이 막상 시한이 되자 준비 부족과 경제활동 위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활동 포기법’, ‘실업자 양산법’이 될 거라며 또다시 시행
지난 3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희생자를 요구하는 파괴적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에서는 무기로만 싸우는 게 아니고 언론 플레이를 동원해 싸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방식의 '내러티브'와 '프레임 씌우기'다. 일어난 사건을 어떤 확고한 틀에 집어넣고 특정한 표현방식으로 얽어맨 뒤 그것을 지치지도 않고 무한반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처음부터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조직 하마스의 무장공격을 "괴물 같은" 혹은 "악마적인" 테러 행태로 규정하고, 그것이 사무치도록 깊은 유
종교에 입문하려는 이의 동기는 대체로 그가 바라는 바와 일치한다. 누군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에 입문했다면 이 동기가 대체로 그가 종교에서 바라는 내용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물론 한두 가지 동기가 전적으로 입교를 결정하지 않고 또 바라는 바의 전부도 아니다. 그 동기와 바라는 바도 그야말로 대표적인 것일 뿐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대부분은 자기 마음을 움직인 내적 동기를 잘 모른다. 이런 동기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눈치를 채는 경우가 흔하다.‘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데 지난 칼럼에서 새 신자의 가장
이번 '희망의 빛'은 마리아의작은자매회 이야기를 4회 연재합니다. 이 코너는 수도생활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수도회, 수도자의 모습을 직접 소개하면서, 쇠퇴기에 접어든 한국 수도회에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집필해 주신 박미영 수녀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마리아의작은자매회는 1877년 영국 노팅엄 하이슨 그린에 있는 낡은 양말 공장에서 가경자 메리 포터와 수녀 다섯 명이 시작한 국제 수도회다. 우리 회가 하는 사도직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과 함께하신 성모님과 일치하여 아픈 이들,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임종
“온통 허물어진 담장을 지나 거기 이르렀습니다. 차마 말로는 다 못할 서글픔이 거기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4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누추한 묘지에, 프랑스의 영광스런 자녀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소리도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중국인 학생들이 반복해 대는 콧소리만이 이 음산한 고요를 흩트리고 있습니다.”(부르불롱의 기록, “Relation de voyage de Shang-Haï à Moscou, ....” 중에서)부르불롱, 정복사 묘지를 기록하다1860년 어느 프랑스 외교관이 묘사한 정
우리는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걸까? 한동안 잠깐은 정말 겨울이구나 했는데, 그 뒤로 쭉 벌써 봄이 왔나 싶게 날이 푸근하다. 소한이 코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글쎄 지난 주말에는 마을 뒷산 정상에 올랐는데 꿀벌 몇 마리가 날아다녀서 깜짝 놀랐다. 12월 말에 꿀벌이라니 이게 웬말인가. 추웠다 더웠다 기온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꿀벌들도 어느 가락에 춤을 춰야 하는지 헷갈리는 모양이다.헷갈리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원고 마감일이 있어야 겨우 원고를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동장군의 독촉이 없으니까 월동 준비를 자꾸 미루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해서 이주민 사도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물음은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일단 이주민 사도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함의가 매우 근대적이다. 오늘날 정의평화나 생태환경, 이주민, 영성과 같은 한국 가톨릭교회에 익숙한 사도직 분야들은 전문화와 분업화라는 근대적 사유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주라는 이름 자체는 꽤 오래된 연원을 갖지만 이주민들을 위한 사목 역시 기껏해야 그 역사가 1871년으로 소급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에서 성 라파엘회가 설립되어 전 세계에 이주
지난해 교육계에 가장 많이 거론된 주제는 ‘교권’이었다. 교권 추락, 교권 붕괴 등의 기사 제목들은 어느새 학생 인권 탓으로 연결되더니 급기야 12월 15일 충남 학생인권 조례가 폐지되기까지 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어났던 교권 침해 사안들은 물론, 학교 폭력, 아동학대 신고, 교사 사망 사건들까지 모든 문제가 마치 학생인권 조례만 폐지되면 해결되는 것인 양 학생인권 사냥의 불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인권처음 학생인권 조례가 만들어진 시대는 ‘오죽하면 때리지 말라고 법으로 강제했을까’ 반성해야 할 상황이었다.
필자가 입사해서 채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다. 처음 배치받은 부서가 누구나 선망하는 국제금융부이고, 이동하게 된 부서는 아무도 자원하지 않는 관재부(부동산 매입과 고정자산 관리부서)여서 주변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많았다. 입사동기들은 아무도 부서를 이동하지 않는데 나만 이동하게 되었으니 여러 구설수가 많았다. 회사에서 겪은 첫 시련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시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이 시기만 지나면 잘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인 면도 있었고, 대학 시절 야학을
젊은이는 교회에서 살고자 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나를 포함한 젊은이는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의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자기 공동체에 발을 굳건히 디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열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진리를 향한 궁금증으로 학문적 소양을 갖추려는 젊은이가 있는 한편, 공동체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직무를 찾아 봉사하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다양한 가치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때에 젊은이가 교회에서 살고자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하느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오늘부터 매달 네 번째 월요일에 '하마터면 지구에서 살 뻔했다!'를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니체의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비인간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 전환의 주요 관점에 해당하는 문화 현상을 소개하고,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새로운 관계에 대한 문화비평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연희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가 얼마 전 작고했다. 쿤데라는 체코의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에 숙청되어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 저
이 글은 42호(202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가자지구“가자지구의 주민 어느 한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은 이가 없 다.” 지난 10월 7일부터 이스라엘 점령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적으로 행한 공격으로 한 달 만에 1만여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당했다. 1967년 이후 살해된 아동 총수보다 이번 한 달간 공격에 살해된 아동 수가 더 많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을 비롯해 2만 5000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해 병원 과 구급차를 폭격하고, 언론인을 표적 살해하며, 군
인생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 이들은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거 이런 이들은 제도 종교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 가운데 가장 진지한 이들은 출가(또는 성직)의 길을 선택하였다. 요즘은 어떨까? 아마 요즘은 이런 이들이 먼저 유튜브를 검색할 것 같다. 자신(이나 자기 단체)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싶은 이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을 벌이는 곳이 이 공간이니 말이다.그러면 여기서 해답을 찾고 이 해답을 심화(강화)하는 일도 가능할까? 지적인 면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답을 체화하는 일은 철저히 몸으로
올해는 성탄을 준비하면서 자꾸 2014년 성주간이 떠올랐다. 마침 그해가 학교 안식년이라 좀 외딴곳에서 성주간을 지내려고 수요일 아침 강원도 삼척으로 떠났다. 삼척행 버스에 탔더니 텔레비전 뉴스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모두 구출했다는 자막이 떴지만, 다시 오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삼척에 도착해 버스터미널에 들어가니 모두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뉴스를 보고 있었다. 삼척에서 머문 집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바다고 방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나는 철썩이는 동해의 파도 소리 속에서 남해의 깊은 물속으로
오늘부터 매달 네 번째 금요일에 '밑에서 보기'를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책과 영화 그리고 변두리 문화를 산책하며 여러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일상 그리고 사회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지환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이렇게 함께해왔음이 기적이요, 신비로세지난 17일 일요일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는 예수살이공동체의 아주 특별한 1000차 금요미사가 있었다. 금요미사가 일요일에 거행된 이유는 송년 감사미사를 겸하며 더 많은 공동체 성원이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미사가 열린 전·진·상센터는 한때 예수살이
오늘부터 매달 네 번째 금요일에 '나를 향한 신학'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비판적 신학 에세이로, 우선 '나'를 위한 구원적 글쓰기에서 '수많은 다른 나'에게도 조금이나마 생각거리를 던져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강창헌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놀 만큼 놀았다. 먹을 만큼 먹었고 마실 만큼 마셨으며, 헤맬 만큼 헤맸고 아플 만큼 아파도 보았으니 이제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나이쯤 되면 노장이나 요한계 문헌, 또는 경지에 이른 영성가
(기사 출처 = Americamagazine)프란치스코 교종이 사제들이 동성결합 관계를 비롯해 여러 비정규적 상황의 짝들에게 축복을 해 줄 수 있다고 허용했다. 이러한 축복은 “이들의 (교회법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유효하다고 인정하거나 혼인에 관한 교회의 항구한 가르침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바꾸지 않고” 이루어진다.이 조치는 교종청 신앙교리부가 12월 18일 발표했다. 신앙교리부는 이는 하나의 성사를 받을 때 주어지는 “예식적, 전례적 축복”이 아니라 더 넓은 사목적 관점에서 이러한 (성사적) 상황이 아니면서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축
오늘부터 매달 세 번째 화요일에 '김홍열의 디지털 카이로스'를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가상공간이 현실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과 일상, 믿음 모두 이 기술이 가져온 새로움에 도전받고 있는 지금, 디지털 카이로스와 일상의 크로노스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홍열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AI 챗봇과 대화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다. 지난 3월 벨기에의 헬스케어 연구자이자 아내와 두 자녀를 둔 한 남성이 AI 챗봇과 6주간 대화를 나눈 뒤 극단적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