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그 휴게소- 닐숨 박춘식 새해에는 하느님을 연거푸 부른다면서고속도로를 바람처럼 달립니다하느님을 잇달아 부르며 휴게소 들립니다 하느님, 하느님,,,점심을 뭐로 먹을까요 그러다가두리번거리며 커다란 차림표를 올려봅니다‘딩동 딩동’하느님을 잊은 채 국수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데‘딩동 딩동’ 연신 들리는 ‘딩동’이원 세상에, 어찌하려고 시방은하느님께서 저를 찾는 제 이름으로 들립니다‘국수 먹으면서도 나를 불러야지, 딩동 딩동’ 저는 하느님을 잠시 잊고 후루룩 쩝쩝대는데하느님께서는 저를 ‘딩동 딩동’으로 부르신 그날그 고속도로 그
십자가를 먹는 새해 아침- 닐숨 박춘식 새해 첫날 수녀원 성당에서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축복을 나누는 다과상이 보입니다으 으 으사탕을 혀로 돌리니까 마음도 굴러갑니다므 므 흐 흐반듯한 네모 캐러멜을 먹고 사과도 먹습니다 젤리로 만든 ㅜ 타우 십자가를 그리고기억 모서리에 니은을 얹어 〸 십자가로 구운빵 과자를 새해 축복으로 먹습니다십자가를 꿀꺽 넘기면서 눈을 감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깊은 입맛 안에서생명과 빛이 가득한
새해 아침의 첫 기도- 닐숨 박춘식 평화의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증오는 평화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욕망은 평화를 죽죽 찢어 먹는 폭군임을 보게 하소서거만은 평화의 사약(死藥)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용서는 평화의 첫 단추임을 명심하게 하시고포용은 평화의 종소리를 포옹하는 감동임을 알게 하소서기도는 평화의 다리를 만드는 기적임을 느끼게 하시고겸손은 평화의 튼튼한 뿌리임을 의식하게 하소서 평화의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많은 분들이, 새해에 한반도의
선물도 준비 못 했는데- 닐숨 박춘식 ! 신은 죽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심신 약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신은 존재하든 안 하든 나와 상관없다 ? 누가 하느님을 무시하도록 잠자코 있었는지? 누가 하느님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는지? 누가 하느님을 보여주지 못하였는지? 누가 하느님을 죽이도록 만들었는지 - 바람이 지나가며 제 모자를 연거푸 집적거립니다- 죽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제 발등을 내리칩니다- 눈송이가 양 볼을 만지며 겸손을 일러줍니다- 별들이 ‘진보라 눈물’을 선물하라고 손짓합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
평화를 말하는 이력서- 닐숨 박춘식 장독대에서 팔을 곱게 굽혀 기도하는묵언의 잠자리는, 저에게 평화를 보여줍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마냥 조잘거리는직박구리 부리에서, 저는 평화를 듣습니다 강아지가 벌렁 누워 잔디에 등짝을 비비대며발버둥 칠 때, 저는 춤추는 평화를 생각합니다 딸그락거리는 책가방으로 엄마에게 뛰어가는어린이를 보며, 저는 뜨거운 평화를 느낍니다 시골길 성당 종탑의 커다란 별 그리고 저는‘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글자를 보며저 유명한 평화의 기도를 소리 내어 바칩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2월
나이라는 날개- 닐숨 박춘식 쉰이라는 날개는쇠재두루미처럼 히말라야를 굽어봅니다문득 찾아온 예순에는 백로 날개로 가다가 잠시나뭇가지에서 심호흡을 길게 잡아당깁니다이럭저럭, 고희를 만나던 날 오후낯설지 않은 타조가 여유로운 기품을 보여줍니다 근데, 팔순 잔치 해거름에하느님께서 펭귄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오시어‘지금 니 머하노’ 애잔하게 보시더니어린애처럼 하루에 천 번 만 번 합장하면하늘 날개를 환하게 붙여주겠다고 하십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나이 많은 분을 만났을 때, ‘세월이 바람처럼 후
샛별을 만나는 순간- 닐숨 박춘식 하늘 정원, 아버지의 품에서불로장생 꿀단지를 몰래 짭짭 넘기던머스마와 계집이 하늘 밖으로 쫓겨납니다어둠에 짓눌려 우는 불쌍한 자식을 구하려고하늘 마음은 끝내 흙바닥에 내려앉습니다 천사를 시골로 보내어 마리아에게 당부합니다태양을 가슴에 깊이 숨기고등불을 들어 자식들의 길을 밝혀주라고또 먼저 꼭 겸손을 보여주라고 일러주십니다 차갑고 긴 밤 멀리서 샛별을 바라보는암흑의 자식들이 빛을 더듬거립니다샛별이 다가오는 만큼천년만년의 어두움은 사각사각 물러갑니다 “정녕 주 하느님은 태양이고 방패이시며주님께서는 은총
우리에게 대림시기는- 닐숨 박춘식 성조(聖祖) 아브라함의 족보를 꿰어 외우면서천 년 이어온 천 년의 한(恨)이며하늘 바라보며 몸통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에덴 동쪽의 번쩍이는 불 칼을 거두시고하늘 문을 열어주는 자비를 기다리는애절한 몸부림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7:14)이사야가 목청을 한껏 높여 예고한그 아들, 그 이름을 기다리는 긴 침묵이며그 아들, 그 이름을 불러 보려는 끈질긴 갈망입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애벌레의 연두색 꿈- 닐숨 박춘식 - 저승 대문에 들어서니까 - 저를 아는 분은 - ‘야고보가 드디어 왔구나’ - 저를 모르는 분은 ‘애벌레 한 마리가 또 올라왔구나’ - 하시며 큰 죄인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 저는 ‘이승의 사람은 벌갱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 마중 나온 분들을 살펴보니까 - 보일 듯 말 듯 - 하얀빛 날개로 미끄러지듯 다닙니다 - - 하늘 한구석에서 - 어둠을 씻으며 - ‘이왕이면 연두색 날개라면 좋겠는데’ - 중얼거리니까 - 어느새 제 앞에 자줏빛 날개를 들고 있는 천사가 - 빙긋 웃습니다 - 이승을 벗어
어느 상갓집 이야기- 닐숨 박춘식 화장(火葬)이냐 토장(土葬)이냐구교우 어른들이 관습과 시류를 두고초저녁부터 진지하게 의논하였습니다자정 무렵 화장터로 의견이 기울 때중학생인 손주의 말 한마디가상갓집을 온통 웃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연옥 불을 미리 예습하니까, 화장이 좋아요” 작은할아버지께서, 이놈, 크게 야단쳤지만킥킥대는 웃음은 구석구석 소리를 낮췄습니다구순을 훌쩍 넘긴 호상(好喪)이어서그날 밤어린 손주는 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연옥’이라는 단어와 ‘연옥 교리’는
헤어짐을 묵상하는 11월- 닐숨 박춘식 갑자기 출국한다며 머뭇거리는 목소리,지금도 보듬고 있는데 어쩌나 그님과 저녁을 먹을 때는 묵묵,마지막 만남이라며, 돌아가는 길목어느새 별이 된 듯 멀리 아른거립니다 주님, 찢어지는 마음이지만헤어지는 통증을 하늘 보약으로 삼키도록저의 쓰린 감정을 보듬어 주소서한참 후, 그님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이끄소서 그러므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5:9)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이별은 만남보
유서 적는 피정- 닐숨 박춘식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들이 울대를 누르지만유서 피정에서 세 노인의 글만 소개합니다 -70대 근엄한 할아버지-나이 60되기 훨씬 그전에‘자연은 곧 하느님이시다’라는 진실을호흡으로 꼭 믿기 바라고 반드시 느끼기 바란다 -경상도 육순 할머니-‘신앙은 기도로 자라고, 덕행은 겸손으로 깊어진다’아침 기도 끝에 꼭 중얼중얼거려야 한다이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가 빤이 내려다볼끼다 -구부정한 80대 노인-못난 아비가 오만한 혈기로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에도‘하느님께서는 잠시라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구나’하는 진실을 꽤 늦게
묵주 구슬을- 닐숨 박춘식 마음 구슬로 곱게 다듬어20단 신비를 끈으로 손으로 이어가면가물거리는 하늘길이 보입니다 그 십자가 언덕길로그 엄마 엄마를 부르면서그 아드님에게 올라가고 있습니다온 세상을 기도로 이어주는묵주의 모든 알맹이는 지금파란 눈동자로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묵주기도는 다른 어떤 기도보다 분심이 오락가락 설치고 온갖 잡념이 춤을 춥니다. 곰곰이 이유를 따져 보니, 중요하고 간단한 소리기도(염경기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며, 묵상 내용이 예수님의 일생이며 그리고
DONA NOBIS PACEM !- 닐숨 박춘식'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예고 없이 나타난 불개미가 독을 던지고먼지바람은 몸속 깊은 골목에 재를 뿌립니다DONA NOBIS PACEM ! 철새들의 우아한 군무는 가끔 걱정을 안겨주고매 맞아 죽은 강아지가우리 마음을 슬프게 멍들게 만듭니다DONA NOBIS PACEM ! 거창한 건물 안에서는 연신 폭탄을 만들고빗물은 난민들 천막촌의 눈물을 닦아주면서죽지 말라고 폭탄으로 죽지 말라고 소곤거립니다DONA NOBIS PACEM ! 어미 새가 모이를 물고 철조망 높이남에서 부지런
묵주 피정 1박 2일- 닐숨 박춘식 묵주 피정 때묵주기도를 밥상차림으로 말하는 어느 할머니 1단은 현미 잡곡으로 지은 밥2단은 따끈한 산나물 국3단은 된장과 절기 냄새나는 찌개4단은 김치 그리고 맛깔스러운 반찬들5단은 쌀뜨물 숭늉 묵주기도는 매일 성모님에게 올리는 밥상입니다묵주기도 안 바치는 날은, 빈 밥상으로온종일 성모님을 쫄쫄 굶기는 무서운 날이 됩니다나중에 천당 가서무슨 낯짝으로 성모님 만나려고 하는지 도무지도대체 ...아이고 우야꼬, 그다음 말이 머더라 ...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0월 8일 월요일)
사막으로 가시는 하느님- 닐숨 박춘식 하느님께서, 처음 그전에, “빛이 생겨라” 하시니찬란한 빛살이 암흑을 찢으면서 끝없이 달립니다 요즘 사람은 “불 켜” 한 마디 던지면번쩍 전등불이 환하게 빛납니다한술 더 떠서어린아이가 거실의 샹들리에를 보며 윙크하니까고운 멜로디 따라 수많은 전구가 반짝거립니다 하느님께서 슬며시 마을 밖으로 나가십니다전능(全能)을 도둑맞은 듯한 쓰린 걸음으로멀리 사막을 바라보며 홀로 걸어갑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0월 1일 월요일) 신형 전자제품으로 모든 일이 편리하고 흥미 있게 해결되니
기도를 이어 기도하면- 닐숨 박춘식 삼천 번 이상종일 하느님을 생각하면부서지는 오만의 틈새로 겸손이 보입니다 삼천 번 더온종일 아이같이 성모님을 부르면백두대간(白頭大幹)이 목청껏 노래합니다그러면 나무들이 놀라운 축시(祝詩)를 만듭니다 삼천 번 이어 기도하면서진종일 순교자들에게 애절히 호소하면구름 한 점 없는 천지(天池)의 하늘로비둘기들이 하얀 바람으로 날아옵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9월 24일 월요일) 사람은 밥을 먹어야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음식부터 골고루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구월 엄마의 눈물- 닐숨 박춘식 불치병으로 점점 오그라드는 아이를상큼한 초가을, 바다로 손잡고 갑니다모래사장으로 힘겹게 걸어가더니아이는 ‘엄마사랑해요’를 손가락으로 씁니다그리고 커다란 하트를 그리더니하트 안에 ‘감사하느님’ 다섯 글자를 씁니다아이 앞에서 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중얼거렸던 엄마는, 모래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립니다그날 저녁, 밤의 평온 안에서순교자 전기를 읽던 엄마는, 금세 눈물을 떨어뜨립니다피를 쏟으면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고비둘기 모양으로 번지는 선혈의 모습을 묵상합니다극단의 행위예술로 숭고함을 보여준 순교자들에
인각사의 일연 스님에게- 닐숨 박춘식 인각사에 갔었던 날, 700여 년 시간을 넘어일연 스님을 고이고이 만났습니다삼국유사는 ‘한반도 창세기’라고 말씀드렸더니그윽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제가작금의 ‘한반도 탈출기’를 적어 주시기를 청하자올 것이 왔구나, 하시는 듯 얼굴이 환해졌습니다가까이 또 멀리서 엿보는 오랑캐들에게홍익이념을 한껏 높여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출신 종교 계층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새 겨레로,천리만리에서도 보이는 솟대로, 다시는 셋이나둘로 갈라지지 않는 겨레로 밝혀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주 하늘의 하느님,비참하게 된
저승길 강변에서- 닐숨 박춘식 몸통을 빠져나와 저승길을 걷습니다바다 같은 큰 강이 보이는데저승사자가 나루터로 인도합니다목선 범선 잠수함 군함 등 많은 배가 보입니다수상비행기와 로켓이 보여 가까이 걸어가니새 붉은 날개의 선녀들이 가로막습니다금괴 돈 보석 몽땅 주겠다고 말하자, 절레절레임금 옷을 입고 오겠다는데도, 절레절레오직 순교자만이 탈 수 있다는 말을 듣고온몸 뜨겁게 무너집니다 뒤돌아 일어나서 눈을 번쩍 떠 보니9월의 커다란 달력 안에수많은 십자 깃발이 빛나고 있습니다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9월 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