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 분들이 답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답을 드리면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될 듯합니다. 오늘 질문에 대해서는 저 역시 교회법 전공자께 문의를 드리고 얻은 설명과 사전의 정보를 토대로 되는 대로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베네딕도 수도회 가족들이 읽어 보시고 정정할 것들을 짚어 주시길 기대합니다.한국 천주교주교회의 회원을 보면, 왜관 수도원장인 박현동 아빠스가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주교회의 회원명단에 올라 계신 것을 보면 아빠스는…. 주교와 비슷한 지위
가톨릭 교회의 장례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빙장(promession, 氷葬)을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매장이나 화장만 알고 있는 제게는 관심 밖의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다양한 장례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빙장은 21세기에 들어 개발된 최첨단 장례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의 몇몇 나라는 친환경 장례라 하여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설립에 거부감이 많은 화장장을 대신하여 빙장장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빙장은 시신을 액체 질소에 냉동시킨 뒤 동
미사에서 노래가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억해 보세요. 미사 처음에 입당송이 나오고, 자비송이 나오고, 응답송이 나오고.… “송”은 영어로도 노래잖아요. 즉, 노래 없는 미사가 없다는 뜻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듣고 계신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영어의 Song이 입당송, 자비송, 응답송의 송은 아닙니다. 입당송부터 시작해서 자비송, 응답송 등의 송은 노래를 뜻하는 송(誦) 혹은 찬양한다거나 기린다는 의미의 송(頌)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음이 같아서 오래전부터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매우 특별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를 준비하던 지인이 궁금한 듯 물어 왔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티아고 길 코스도 길게 잡아 40일이면 다 걷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나일강 유역에서 가나안 땅까지 어떻게 40년이나 걸렸냐는 겁니다. 거리가 좀 멀었나? 사람이 남녀노소 합쳐 수백만 명이었으니 느릴 만도 했겠지….라는 이유를 대 봐도 4년도 아닌 40년은 너무 과장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40년이라 기록되어 있고, 교리반에서도 40년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지도를 보고 확인해 봤습니다. 세계전도를
사제들은 보통 사제품을 받을 때 선택한 서품성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서품성구는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길에서 빛이 되어 줍니다. 서품성구에 대해 생각이 미치다 보니 신자분들은 좋아하는 성구를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졌습니다.6개월 동안 예비신자 교리반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예비자 교리 일정 안에는 마르코 복음 필사가 이행 과제로 있었습니다. 예비자들에게 성서 필사 노트를 나눠 드렸고, 거기에 정성껏 마르코 복음을 적어 오시라고 했습니다. 노트의 끝에는 성경 필사 후 소감문을 적는 페이지가 있었습니다.적잖은 분들이 그 소감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직후에 신자들은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하는 선포를 듣게 됩니다. 이에 맞춰 신자들은 1)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혹은 2)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혹은 3)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 이 셋 중에 하나로 응답합니다.“신앙의 신비여”에서 말하는 신비는 전례적 맥락으로 볼 때, 직전에 제대에서 벌어진 거룩한 변화를 가리킵니다.(전례사전 참조)좀 더 넓게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시력을 잃게 된 소년이 한때 삶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어 나중에는 음악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보면,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질문은 자신이 지닌 장애에 대해 아쉬움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앙을 가진 가정의 자녀가 이런 식의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자기는 가톨릭 신앙을 가질 의사가 없었는데 부모가 자신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자신이 자유롭
알고 지내는 한 신부님이 “장엄서원”에 대해 물어오셨습니다. “장엄서원”은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웅장하고 엄숙한 서원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서원은 보통 수도자들이 하느님께 서약하는 내용들로서,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대표적 덕목을 가리킵니다. 복음 삼덕 혹은 복음의 권고라고도 합니다.수도자들이 발하는 것과는 달리, 서원의 내용들은 서원을 발하는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용이 바뀌거나 추가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교회가 인정하느냐 단지 개인적 차원의 서원이냐, 무기한이냐 유기한이냐,
저희 공동체에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목을 수행 중인 형제들이 많습니다. 개강을 맞아서인지 공동체의 아침 식탁에서는 드물지 않게 수업 관련 화제가 오고 갑니다. 가르치는 주제에 관한 것들도 있지만 형제들이 과거 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갑니다. 오늘 아침 듣게 된 이야기는 “교회법”. 더 정확히는 그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 신부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침식사는 자율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대략 아침식사를 하는 시간에 식당에 나가면 비슷한 생활리듬을 가지고 있는 형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침식사 때 만나는
열정적인 신심을 지닌 신자 분들 중에는 성체를 모시고 있는 주변 성당이나 경당을 찾는 것보다 아예 성체를 집에 모셔 두고 싶다는 바람을 느껴 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늘 곁에서 주님께 기도드리고 사랑을 키워 나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에서 그쳐야지 진짜로 집에 성체를 모셔 두고 지내실 수는 없다는 걸 알려 드립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성체훼손이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불순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가 성체를 집에 모셔다 두는 건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실 수 있지만 그것
수도회 공동체에서는 보통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모여 미사를 봉헌합니다. 하지만 사목활동에 무게를 싣다 보면 종종 개인적으로 혹은 같이 사목하는 이들끼리 소규모로 미사를 봉헌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수사님과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보통 수사님이 복사 역할을 합니다. 현재 신학생 단계의 신분이고 이미 “시종직"(라틴어 acolythatus, 영어 acolyte)을 받은 상태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그러던 어느 날 수사님이 성반이나 성작을 주례사제에게 건넬 때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 왔습니다. 음&hel
“하얀 거짓말” 혹은 "선의의 거짓말”이 있는데, 그것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니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라는 제 8계명을 위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부모님은 불교 신자라 내가 성당 다니는 것을 원치 않으신데 나는 주일 미사에 가야 할 때 다른 핑계를 대고 성당에 가는 경우입니다. 부모님께는 명백한 거짓말일 수 있으나 교회는 그런 태도를 마다할 리 없습니다. 과연 거짓 증언이란 것이 “선의의 거짓말”의 발목을 잡는 걸까요? 성경 본문을 잘 살펴보면 “거짓 증언”은 사실 이웃과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제가 담당하고 있는 교리반에서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인공 수정에 대해 교회가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자녀들을 낳지 않으려는 부부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지만, 인공수정을 해서라도 친자녀를 낳고자 하는 분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입니다. 인공수정은 체내 인공수정과 체외 인공수정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체외 인공수정입니다. 난자와 정자의 수정 성공률은 전자보다 후자가 더 높다고 하고, 시술비용도 체외 인공수정이 더 비쌉니다. 아기를 갖길 원하는 부부의 마음은 충분히 지지받아야 할 일임
미사 전례 중 말씀의 전례에서 1독서든 2독서든 독서 봉독 마지막엔 “주님의 말씀입니다”로 마치고, 회중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응답합니다. 그래서 독서 봉독 직후 독서자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전례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생략하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 그런데 탈출기 14,21-15,1ㄴ까지를 낭독할 때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를 생략합니다. 부활성야 미사 중에는 모두 7개의 독서와 하나의 바오로 서간을 읽습니다. 이 독서들 중에는 생략할 수 있는 독서가 있고 없는 것
오늘 다뤄 볼 속풀이 질문은 일종의 문제제기처럼 들립니다. 관습적으로 생각한다면, 결혼을 하는 이들에게 결혼생활을 하는 선배로서 존경받는 이가 혼인 주례를 맡는 것이 당연해 보이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문제제기를 한 가지 더 한다면, 종종 주례자 없는 결혼식도 있는데 과연 주례가 필요하긴 한 걸까요?하지만, 신랑 측과 신부 측의 합의를 통해 예식의 형식을 나름대로 꾸밀 수 있는 일반적 결혼식과는 달리 혼인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사건이며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조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소는 성당에서 사제
예비 신자 한 분이 기도의 한 방법으로서 성시간을 안내받았나 봅니다. 성시간은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를 물어 오셨는데 질문을 좀 넓혀서 성시간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시간은 말 그대로 “거룩한 시간”으로서 예수성심에 관한 신심 중 대표적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홀로 맞으신 고통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뒤 겟세마니(혹은 올리브) 동산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지만 제자들은 계속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
묵주기도에는 전통에 따라 요일마다 그리고 해당하는 신비의 각 단마다 묵상해야 하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묵주기도가 아직 서툰 분들은 서툴다는 이유로, 익숙하신 분들은 너무 익숙한 까닭에 무심결에 묵상 주제의 순서를 앞뒤가 바뀐 채 하실 때가 있습니다.만약 이처럼 묵상 주제의 차례가 바뀌었다면, 묵주기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과연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칠 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엄밀히 묵상 주제 순서가 바뀌는 일은 혼자서 기도할 때 일어난다고 해야겠습니다. 공동체 차원에서는 집단 차원이
독자님들 대부분 어떤 모임이나 행사의 날짜나 요일을 혼동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난 그런 적 없다시면 그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정도로 멈추셔야 할 것입니다. S대 인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명석의 끝판왕이셨던 선배 신부님께서도 나이가 드니 기억과 판단에 좀 헛점이 생긴다 하시더라고요.오늘 속풀이에 요청하신 질문은 어떤 소공동체에서 진행된 미사를, 예를 들어 화요일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데 모두가 착각하고 수요일 미사로 봉헌했다면 그 미사가 유효한가?입니다.어떻게 날짜를 헷갈린 채 미사가 진행될 수 있지? 의아해 하실지 몰
묵주기도 바칠 때, 지향을 일일이 다 열거할까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다 아시기에 지향을 이야기할 필요 없이 바로 묵주기도를 시작할까요?흠.… '교회상식 속풀이'를 몇 년째 진행하다 보니 제가 말하면 자칫 어떤 판례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식은땀이 납니다. 어느 공동체인지 모르지만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는 데 지향을 말하느냐 안 하느냐를 가지고 음영이 강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급기야 “속풀이”에 물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을 것이야….라고 상상을 해 봅니다. 지향을 밝히는 게 나을까요
교구에서 발표하는 인사이동을 들여다보면, 가끔 정직, 면직 등의 용어를 접하게 됩니다. 거기에 얼마 전부터 환속이라는 용어가 추가된 모양입니다. 살펴보면, 인사이동과 관련한 용어들이 교구별로 조금씩 다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어림해 볼 수 있습니다. “정직"(suspensio)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룬 바가 있습니다.("정직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성품성사에서 기인하는 권리와 의무를 잠정적으로 제한하는 정직과 달리, “면직”은 그런 권리와 의무 자체를 박탈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