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잠’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받았고,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어서 외국에서 먼저 소개된 후 한국에서 개봉했다. 영화에는 정유미와 이선균이 부부로 등장하고, 부부가 살아가는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거의 모든 액션이 이루어지며 일상 공간에 침입한 공포를 소재로 한다.“누가 들어왔어.” 어느 날 자다 깬 남편 현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로써 행복하던 부부의 일상은 180도로 바뀐다.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만삭 임산부로 직장 일도 열심인 아내 수진과 단역배우로
스무 날 정도 여름 휴가를 다녀왔더니 집 안에는 거미줄이, 텃밭에는 온갖 넝쿨과 바랭이 무리들이 무섭게 장악을 하고 있었다. 집은 몰라도 밭의 경우는 승부를 겨룰 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농사일에서 손 떼고 편하게 좀 살아 보자’ 싶은 마음이 우세했다. 여행을 떠나서 보니 대다수 사람은 농사 안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지 않던가. 농사는 여행 한번 마음껏 떠나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구속이다. 나도 한번쯤, 적어도 다음 해 봄까지만이라도 고단하지 않게 살아 보자! 풀과 맞서기 싫은 마음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정
1923년 9월 1일, 관동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여파로 발생한 대화재로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역은 궤멸하다시피 큰 피해가 생겨났습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4만 명에 이르렀고, 이재민은 340만 명에 달했습니다.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대지진의 참변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민심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경찰과 자경단을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관동대지진을 관동대학살로 몰아갔습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습니다.그들은 폭도로 변한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했
북경의 4호선은 청록색 라인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중 절반이 하이디엔취(海淀區)를 통과한다. 북경의 서북쪽 지역이다. 이름난 대학과 연구소가 잇따라 늘어선 곳이다. 중국의 교육 1번지다. 국가도서관도 거기 있다. 이름 그대로 ‘국가’ 최고의 도서관이다. 우리는 4호선 국가도서관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도서관의 맞은편으로 가야 한다.걸음을 재촉하면 공원 하나에 이른다. 석각예술박물관(石刻藝術博物館)이다. 옛 비석과 석조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거기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북경에 오래 산 이들도
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유토피아’20세기에 유행했다가 지금은 뜸해진 단어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처음 ‘유토피아’의 개념이 제시되었지만,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 이후 일반적으로 널리 쓰였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라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 가 합쳐진 단어다. 한마디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며 평화로운 사회를 말하는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없는 곳’이며 콘크리트와는 더더욱 어울릴 수 없는 단어이
지난 8월 1-6일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참가 후기입니다. 글을 쓰신 이전수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내가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줄로 알지만,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그동안 세계청년대회가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세계청년대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계청년대회 경험이 없
정양모 신부님은 저서 "내 글 보고 내가 웃는다"에서 예수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빠의 지선하심을 깊이깊이 느끼고 맑게맑게 보여주는 삶을 사셨다. 백성에게, 특히 사람이면서 사람대접 못 받던 천민들에게 가없는 연민의 정을 품으셨다.”예수의 삶은 그리스도론의 핵심입니다. 그 핵심 중의 핵심은 민중에 대한 연민의 정 다시 말해서 측은지심입니다. 예수는 연민의 정을 품으시고, 자비행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예루살렘 북서쪽 성벽 밖에 있던 형장 골고타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셨습니다. 주교의
“우리의 교회, 우리의 도서관, 우리의 천문대입니다. 프랑스의 문장(紋章)이 새겨진 우리의 집입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선교단의 먹잇감으로 둘 순 없습니다. 그건 견딜 수 없는 수모입니다.” (1774년 10월 1일, 북당의 선교사 조제프 아미오의 편지)예수회, 해체되다예수회가 끝났다. 1773년 7월 21일,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교서 '주님이신 구세주(Dominus ac Redemptor)'에 서명했다. 예수회를 해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북경에도 전해졌다. 이듬해 8월이었다. 교서가 북경에 닿은 건 그로부터 1년이
후쿠시마핵발전소의 핵사고에 의한 핵 오염수의 해양 투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핵 오염수의 바다 투기에 대한 반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자갈치 시장을 찾아 핵 오염수 바다 투기 반대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일본 정부의 해양 투기에 대한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일본 정부의 해양 투기는 그 어떤 이유에도 불문하고, 돈 때문입니다. 숱한 핵종으로 오염된 방사능 피폭 오염수를 콘크리트로 고체화해서 육지에 보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다핵종제거설비로 정화해서 30년 동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고명재의 산문이다.올해 읽은 산문 중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들 때문에 조금씩 아껴 읽게 되는 책이었다. 실제로 기도하듯 매일 아주 조금씩 읽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한두 챕터씩 읽으면서 여기 쓰인 문장처럼 꿈속에서만이라도 가 닿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다.그곳은 주변 어른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어린 시인이 자란 사랑의 품속 같은 곳이었다. 이제는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의 박탈감, 각박하고 무서워지는 세상의 어둠에서 탈출해 작은 빛으로 나
팬데믹 3년 동안 극장 시장의 붕괴에 걱정이 많았다. 영화관 최고 성수기인 여름 시즌에는 블록버스터가 경합하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는데, 지난해에 ‘한산’, ‘외계+1인’, ‘비상선언’, ‘헌트’가 경쟁하면서 누구도 크게 웃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올해 초 팬데믹이 해제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꽤 시간이 흘러도 영화관은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올 여름 시즌도 지난 3년처럼 지지부진하면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를 극복할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오랫동안 시름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었다.위기일수록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올해는 지난해
유다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문점들유아세례를 받고 한참 지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첫영성체 교리를 듣는데, 첫 시간에 인간의 원죄와 대속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가 나온다. 인과론적으로 보면 유다의 배신이 있었기에 예수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다. 교리상으로 유다를 배신자이며 나쁜 놈으로 배워 그런가 싶었지만, 세월이 지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유다를 정말 매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언젠가 유튜브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그가 유다는 예정설에 따르면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일 수
7월 8일 부산역 광장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결사반대 부산시민 총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미래세대의 발언들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날 미래세대들의 발언들을 소개합니다. 지금의 세대가 미래세대들의 언어를 정독하며 전환의 삶을 위해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저는 부산온배움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채은입니다.발언에 앞서 방사능 유출을 비롯한 환경파괴로 인해 세상을 떠난 수많은 존재들을 애도합니다. 저는 지구 모든 생명이 자기 수명대로 살며 각자의
어떻게 ‘남성의 자리’를 다시 찾을 것인가?인천에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주점을 운영하며 노동자와 함께하기도 했던 예수회 김정대 신부는 개인 체험에서 ‘남성성’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주로 노동 문제와 사회정의 문제에 헌신했던 한 사제는 어떠한 연유에서 남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라는 제목의 책에서 남성에 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봤다.이 책은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2021, 2022년 2년간 에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출간됐다. 저자가
영화 ‘수라’를 만났다. 제20회 국제 환경영화제에서. 황윤 감독과 갯벌 지킴이들의 삶을 보면서 함께 눈물이 났고 화도 났다. 동시에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 끊어 놓은 생명 에너지를 맨몸으로 부활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에 감동과 미안함이 뒤섞여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군산에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는 전라북도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 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다. 사업 자체는 전라북도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 금강, 만경강, 동진강
앙리 베르탱(Henri-Léonard Bertin, 1720-92). 루이 15세의 재정총감(1759-63)이자 농림부 장관(1763-80)이다. 뜻밖에도 그는 북당의 예수회 선교사들과 밀접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편지뿐만이 아니다. 그가 선교사를 통해 입수한 물품도 상당했다. 그의 소장품들은 ‘진기한 중국 문물 소장고’(cabinet de curiosités chinoises)로 일컬어졌다. 거기엔 북경에서 건너온 그림 수백 점, 서적, 갖가지 공예품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중국 수집품에서 베르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