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코로나-19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해도 한국 사회는 시민들이 적절히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 신종 바이러스와 나름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신자들이 모여 함께 성대한 부활 전례를 꾸리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는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언제보다도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을 잊지 마시고, 이런 이웃을 돕는 방법들을 교회 공동체가 모색해 본다면 사회에 던지는 부활의 기쁨이 훨씬 의미심장해질 것입니다.그래서인지, 부활 이전의 예수님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은 본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교회는 함께 모이지 못한 채 각자 집에서 특별한 사순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을 향해 축복을 보내는 교황님의 뒷모습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세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함께할 수 없을 뿐 사람들의 지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도 마음의 끈을 연결하기 위해 문명의 이기를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인터넷 온라인을 활용하여 미사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이 시간에 신자들은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실의에 빠진 신자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전 세계 신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2020년의 사순기간을 아주 특별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잠정적으로 교회에서 함께 모여 봉헌하는 미사가 보류된 상태로 몇 주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하여 '성체 공복상태’를 경험하는 신자분 중에 부활 맞이 판공을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분들도 계신 듯합니다. 고해성사는 사실 신자 개인이 평소에 삶을 성찰하고 정리하여 사제를 찾아가면 될 일이지만, 전통적으로 부활 혹은 성탄을 앞두고 적어도 한 해에 한두 번은 하도록 권장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전례시기가 그렇다
파공(罷工)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라 어림하면서 이번 질문을 다뤄 보고자 합니다. 언뜻 파공하니까 볼링공에 손가락 넣는 구멍을 뚫는 작업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실 듯한데, 한자를 들여다보면 ‘그만 두다’라는 의미의 ‘파(罷)'와 ‘노동’을 의미하는 ‘공(工)’이 합쳐져서 만든 단어입니다. 뜻 그대로 ‘일을 그만둠’을 가리킵니다. 문맥을 정확히 모르면 '가뜩이나 일자리 찾기도 힘든데 일을 그만 두다니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떠오를 겁니다. 파공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에서
중년이 다 되어 가는 프란치스코라는 청년과 그의 여사친*이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내심 드디어 프란치스코가 결혼을 하려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질 않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에 과거지사가 더해지더니 학창시절 성당 다니던 추억담이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란치스코의 여사친도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을 가진 신자라는 것과 그 둘이 성당 친구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니 더 잘됐네 싶었는데, 베로니카가 돌싱**이며 아이를 둘
시국이 시국인지라 2020년은 기억될 한 해가 될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못하고 지나쳤으니 말입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미사 참례를 하는 분들은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못했다는 건 큰 의미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해마다 사순기간이 회심의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던 상징적 예식을 그냥 건너뛴 것이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분들이 적잖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물어오셨습니다. 재의 예식을 제날에 못했다면 코로나가 한풀 꺾인 뒤에 할 수 있지 않
코로나-19(COVID-19)라는 전염성이 엄청 강한 바이러스 때문에 어린이집, 학교 등이 개학을 미루게 되었고, 급기야는 미사와 같은 종교행사도 잠정 중단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바이러스의 여파는 사람들이 경제활동마저도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냥 개인 몇 명이 앓는 감기가 아니라 집단을 인질로 끌고 들어가는 병마인지라 가까운 사람들이 보름 정도 서로 거리를 두고 지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간 우리가 너무
사순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아시다시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합니다. 재의 수요일에는 미사 중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특별한 예식을 진행합니다. 이 예식은 유대인들이 참회의 표현으로써 머리에 재를 얹던 의식을 그리스도인들이 도입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흙으로 빚은 피조물이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재의 수요일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속풀이의 다른 기사를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재의 수요일의 유래와 의미”)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전통적으로 지난해 성지 주일에
교회상식이라고 하기보다는 교회시사에 더 가까운 질문이 되겠습니다만, 최근 다시 접하게 된 것이라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답을 드리자면, 로마 가톨릭 안에서는 사제 독신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제 독신제 해제에 관한 가능성 타진은 사실 어제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란 것을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오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성직자가 독신으로 사는 것이 마음에 들어 가톨릭을 선택하신 분이 아니라면, 사제 독신제가 가지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나름 의견을 제시하실 수
철수 씨는 가톨릭 신자인 아녜스 씨와 약혼을 했고 혼인성사 날짜와 장소를 정해 뒀습니다. 철수 씨는 혼인성사를 위해 예비자 교리를 듣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아녜스 씨와 혼인성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혼인성사를 받기 전에 혼인신고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살게 될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야만 했던 겁니다. 교리시간에 철수 씨와 아녜스 씨가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본당 사제는 철수 씨의 세례를 혼인성사 이후로 미뤄야겠다고 합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인성사 전에는 혼인신고를
속풀이 독자 중에 십자성호 긋는 법을 모르는 분은 안 계실 겁니다. 성호를 그으면서 바치는 성호경은 가톨릭에 입문하는 모든 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성호는 우리가 흔히 아는 큰 십자성호와 미사 때 복음을 듣기 전에 머리, 입술, 가슴에 새기는 작은 십자성호가 있다는 거 아시죠? 작은 십자성호는 사람이나 물건을 축복할 때도 쓰입니다. 다시 한번 그 자세와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오늘 속풀이를 다뤄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왼손을 위장 부분의 배 위에 얹고, 오른손의 손가락을 모아서 이마 -> 배(가슴)
수도복은 당연히 수도생활의 시작과 관련 있습니다. 수도생활이 4세기 전반에 일어났으니 수도복도 그 무렵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형태였다기 보다는 당시의 평상복이었을 뿐입니다.평상복 중에서도 하층민들이 입는 옷이었고, 그 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싸고 거친 재질의 천으로 지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수도생활이 지향하는 청빈의 표지라는 것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거기에다 가난하기에 업신여김을 받는 것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복장만으로는 하층민들과 수도자들이 쉽게 구분되지 않았고 수도자가 자신을
미사 중에 “신앙의 신비여”에 이어서 미사 집전자가 전 세계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때 주례자는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 )와 저희 주교 ( )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하시면서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일치성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미사에서는 어떻게 기도가 이뤄지며, 로마 교구의 교구장은 교황인데 로마교구에서는
성체를 모시고 싶어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분이 계신가 봅니다. 그런데, 집안이 오래된 개신교 집안인지라 자기만 주일마다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보통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고 한 달에 한 번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괜찮은지를 지인을 통해 물어오셨습니다. 가능하다면 미사 참례를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가족과 예배도 가고 미사도 참례하라고 쉽게 말씀드리기 어려운 이유는 그분이 주일에 미사와 예배를 둘 다 하기에는 버거운 삶을 살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모 양 팬클럽'이란 아주 사사로운 단체의 클럽장을 맡고 있는 강모 씨가 그 팬클럽의 동반사제인 제게, 우리가 언제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헤어졌는지 기억이 아련해질 무렵 불현듯 질문을 해 왔습니다.신부님들은 왜 검은색 주케토(zucchetto)를 쓰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이죠.주케토는 주로 주교들처럼 고위성직자들의 복장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틴어로 필레올루스(Pileolus)라고 부르고, 이탈리아 말로는 '작은 바가지'라는 뜻의 주케토는 일종의 모자입니다.본래, 옛날 수도자들은 세상과 거리를
며칠 전 한 성당 성가대에서 전례 봉사를 하시는 분이 문의해 오셨습니다. 시기적으로 성탄이 머지 않은 대림 3주일 이후로는 미사전례 때 크리스마스 캐럴(carol)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캐럴은 본래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에 부르는 민요풍의 종교적 가곡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어원적으로는 중세 프랑스의 윤무(輪舞) 카롤르(carole)에서 유래한 것이고요. 윤무는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 처럼 원형으로 돌면서 추는 춤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춤에 어울리게 후렴구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었던 캐럴은 16세기부터는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성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라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영성체를 할 때 사제는 신자들의 손바닥에 성체를 올려 줍니다. 고전적 방법으로 입을 열고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시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요즘은 신자 대부분이 손바닥에 놓여진 성체를 손으로 잡아 직접 성체를 모십니다. 따라서 성체를 신자들에게 분배하는 사제나 받아 모시는 신자나 모두 성체를 손으로 잡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만 봤을 때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체를 이렇게 손으로 잡아도 되는지에 대해 의문
지난주에, 전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이 모여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하라는 본당사제의 안내를 잊어버린 미사 해설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다가 어떤 독자분이 연상작용처럼 '사도신경은 어쩌다 생긴걸까?'라는 질문을 떠올리셨네요.사도신경에 대해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비교하여 속풀이에서 간단히 다뤄 본 적이 있습니다만(“한국에서는 왜 '사도신경'만 바치는 건가요?”), 유래에 대해서는 매우 간단하게만 언급한 기억이 납니다.사도신경에 관해 전해 오는 전
어느 본당에서 순례자들을 맞아 미사를 드리고 나서 전대사가 가능하다는 공지를 했나 봅니다. 미사를 마치기 전 주례 사제는 미사 해설자에게 교황님의 미사 지향을 위해 기도하고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그리고 영광송을 신자들과 함께 바치라고 요청하고선 퇴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해설자께서 이것을 깜빡했던 겁니다. 신자들은 모두 떠났고 이렇게 된 상황에서 전대사가 유효한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대사(大赦)는 죄는 용서받았으나 저지른 죄에 대해 받아야 할 벌은 남아 있는데 이것을 사면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받아야 할 벌을 모두
친구 신부님이 가끔씩 소소한 질문들을 해 오십니다.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지내던 것들에 대해 사목현장에서 질문을 받으면 종종 속풀이에서 답해 보라고 속풀이 소재를 던져주는 은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며칠 전에 신부님에게 한 신자 분이 성시간 성체강복 때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며 성호를 몇 번 그어야 하는지 그리고 성체거동시 목례만 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목례를 하며 성호를 그어야 하는지를 물어오셨나 봅니다. 사실, 그 신부님도 대략의 답은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성호를 긋는 행위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