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폐허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민초들이 손에 든 촛불에서 부활의 빛을 봅니다.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사진/ 고동주. 김용길
2008년 11월경부터 남성구역장들이 구역활성화를 위해 매 주일 미사 후 국수잔치를 벌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요리하고 국수를 나르고 설거지까지 모두 남성 신자들이 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당에서 행사 있을 때마다 여성신자들이 음식 봉사를 도맡아 하고 있는데 고강동 성당의 남성구역장들이 성당에서 늘 여성신자들이 음식 준비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우리가
당신 손이 아름다운 것은 이웃에게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서로 마주볼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너의 해맑은 눈을 보며 찬미 노래 함께 부르면 험난한 오늘을 맞이할 용기가 나는구나.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예수님!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고 가심을 마음속에 새기며 우리 삶의 무게를 꿋꿋하게 지고 가게 하소서.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2월 18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일째 되는날. 명동성당 마당은 조문객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만큼 위로가 필요하고 그만큼 따뜻한 기억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그분은 가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가슴에 묻고... 생애가 준 고통은 이제 안식을 얻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자들의 삶은 계속되고...(민주화운동 관련자와 유족들이 봉헌하는
민속 고유의 흥겨운 가락과 흥으로 당신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하루하루가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무거운 일상의 짐을 놓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정월대보름의 넉넉함을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풍물패가 전하는 복을 받고 복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를 찾아가 그 복을 나누는 행복한 삶을 사십시오.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김용길/지금여기 기자
2009년 2월 7일 청계광장에서 있을 대규모 집회를 원천봉쇄한 경찰 촛불들이 모여 있어야 할 청계천의 모든 도로와 다리는 경찰들로 넘쳐났다.
주님! 제가 이웃의 눈물을 닦게 하소서. 제가 이웃의 분노를 다독이게 하소서. 제가 이웃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제가 이웃의 아픔을 나누게 하소서. 제가 이웃의 침묵을 듣게 하소서. 이웃의 모든 고통을 제 손에 오롯이 담게 하소서.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지난 1월 23일, 설 명절 휴가를 하루 앞두고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는 참사의 책임을 철거민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이명박 정권과 검찰의 수사에 항의하며 유족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서울은 두 얼굴을 지닌 도시다. 달동네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부자들에게 비굴하고 관대한 웃음을 짓는다. 서울은 위액으로 달동네를 삭여서 직사각형의 아파트를 토해 낸다.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옛 동네, 아려한 추억의 흔적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무뢰한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기왓장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면 뼈대만 앙상히 남아 기억 속에 조차 남아
이 밥상을 받기까지 당신이 걸어야 했던 험난한 길을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추위에 떨며 기다리지 않고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상을 받는 당신 얼굴에 미소를 봅니다. 부르면 곧바로 일터에 가고자 작업??하루도 벗은 적이 없는 그 간절함에 눈물이 납니다. 밥상을 깨끗이 비우고 그 자리에 애틋한 사연을 놓고 가는 당신의 자취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주님! 가난한 이 손이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한 걸음에 달려와 예물을 바친 동방박사의 손처럼 되게 하소서. 구유에 누워 계시는 당신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찬미의 손이 되게 하소서.
이 맘 때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영글어가는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갈망입니다. 굳게 닫힌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여시는 겸손한 예수님을 만나려는 갈망입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로 어느새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갈망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빛으로 물들기 바라시는 예수님을 만나려
불의한 사회로 인해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힘없는 이웃들이 있기에 침묵할 수 없었던 한 사제. 자신의 아픔, 그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버이로부터 이해 받지 못했기에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무심코 내딛은 발에 깔려 목숨을 잃은 미물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상처 받았을 이웃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것이 그리도 어렵다는 것을 미움이 솟구칠 때 알았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그리도 어렵다는 것을 분노가 폭발할 때 알았습니다. 희망하는 것이 그리도 어렵다는 것을 절망하는 순간에 알았습니다. 무기력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이웃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