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반경 20킬로미터 이내는 영구 피난지역으로 선포됩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모든 가축들은 살처분됩니다. 즉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는 곳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죽음의 선포에 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한 곳으로부터 14킬로미터 안에서 소를 살처분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저항하며 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요시자와 마사미 씨(62)입니다.요시자와 마사미 씨는 한 목장의 ‘소치기’였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고농도 방사능이 덮쳤습니다. 순식간에 방사능 수치
우리 집에 이 시대 마지막 간 큰 남자가 살고 있다. 쉽게 눈치를 챘을 테지만 바로 다울 아빠! 평일에는 회사 가서 돈 벌어 오고 주말에는 애들하고 놀아 주고.... 그런 평범하고 자상한 아빠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생활을 하고 있다. 그저 자기 소신대로 (돈벌이 전혀 안 되는) 농사 짓기, 그거 하나만 한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컴퓨터를 손에 쥔 채 혼자 노는 걸 좋아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고.... 오죽하면 내가 "저 사람은 뒷짐 지고 애 셋을 키우는 것 같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을까
몇 가지 잘못된 내용을 수정하겠습니다. 도요다 나오미 사진가에 의하면,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후쿠시마현에서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핵쓰레기를 담고 있는 새카만 포대들은 2200만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약 10퍼센트인 220만 개가 핵발전소로부터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이이타테무라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약 140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후쿠시마현에는 약 2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현민 1인당 약 12개의 새카만 핵쓰레기 포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새카만 포대의 한 개의 무
2년 전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갔었는데,어느 날 그를 따라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에 닿았다. 살다 보면 우리 앞에 여러 갈래의 길이 놓인다. 때로는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며 길을 걷기도 하고,때로는 어떤 이유로 길을 벗어나기도 하고,때로는 헐떡이며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하지만그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목적지에 도달한다. 김용길사진 작가.귀촌하여 농가 한 채를 수리하며 인생의 동반자인 엘리사벳 그리고 이웃과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카페,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해 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영 자신이 없는 거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엄마인가요?’ 하는 자가 테스트를 하면 일단 성질을 잘 부리는 엄마가 나온다.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계속 화가 나 있는 엄마. 특히 아침에 그렇다. 보통날의 아침이면 자신에 대해 돌아볼 겨를도 없지만, 가끔은 내가 연기 쫌 하는 배우 같아서 놀라곤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장르는 재난영화다. 나는 혼돈과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생사를 건 다급함, 궁지에 몰린 인간을 연기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8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은 후쿠시마 부흥의 상징으로 적극 귀환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후쿠시마를 떠났던 젊은 부부들의 귀환을 위해 교육부와 함께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새로운 학교를 건축했습니다. 이 학교들에는 잔디운동장과 수영장 그리고 강당 등의 최신 시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로 돌아온 학생 수는 후쿠시마 핵사고 발생 전의 5퍼센트입니다. 특히 나미에마치와 토미오카는 후쿠시마 핵사고 발생 전의 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입니다. 불과 8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아직도 후쿠시마인가?”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짧고 망각은 비정한 현실인가 봅니다. 마치 해운대라는 거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해운대가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22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침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후쿠시마 곳곳은 ‘귀환곤란 구역’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단지 반경 20킬로미터 외에도 이타테 마을은 대부분이 귀환곤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귀환곤란 구역은 연간 방사선량이 50밀리시버트를 넘어 귀환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고농도 오염지
처음 귀농하던 해(당시 스물아홉) 여름에 친구들과 제주 순례를 했다.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 어쩐다 시끄럽던 시기에 제주가 생명평화의 땅으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떠난 길이었다. 십년도 훌쩍 지난 일이라 어느덧 꿈에서나 겪은 일처럼 아득하지만 아직도 어슴푸레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마법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던 어느 곶자왈 풍경, 비 오는 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아이들, 한국 전쟁과 4.3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굴을 랜턴에 의지하여 비틀거리며 걷던 기억.... 그때 나는 아름다운 것이 얼
장인어른께서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한 사람이 죽으면 지구상에서 커다란 도서관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한다.죽음으로써 ‘인간아,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라는 성경 말씀이 이뤄졌다.이제 세상에서 마주한 모든 희로애락을 다 털어 내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소서. 김용길사진 작가.귀촌하여 농가 한 채를 수리하며 인생의 동반자인 엘리사벳 그리고 이웃과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카페,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가 다가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핵쓰레기의 종류는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가연성 핵쓰레기이고, 또 하나는 태울 수 없는 핵쓰레기입니다. 가연성 핵쓰레기는 방사능에 피폭된 지역의 집들을 철거하면서 나오는 폐기물들과 산과 들에 방치되어 있는 나무와 낙엽 등입니다. 불가연성은 토양 핵쓰레기입니다. 이 핵쓰레기들은 모두 고농도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후쿠시마 지역에 이 핵쓰레기들을 담아 놓았던 새카만 포대들이 200만 개 넘게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본 후쿠시마현 다테에 있는 응급가설주택에는 많은 분이 떠났습니다. 가설주택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부산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도요다 나오미 사진가가 저를 부산에 있는 고리 핵발전소와 신고리 핵발전소를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진가라고 소개하니 더욱 반갑게 두 손을 잡고 맞아 주셨습니다.할머니는 저를 보고 단번에 “속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해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8년이 흘렀다”며 “값싼 전기라는 말에 속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우리는 과학이 무섭다”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겨울인가 싶으면 봄기운이 느껴지고,봄인가 싶으면 겨울 기운이 아직 남아 있다.명산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상고대를 이곳 본죽리에서 볼 수 있어 좋다.추워 몸을 움츠리지만 싸한 겨울 풍경은 아름답다. 김용길사진 작가.귀촌하여 농가 한 채를 수리하며 인생의 동반자인 엘리사벳 그리고 이웃과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카페,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설 명절 연휴 바로 전날인 2월 1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핵발전소 4호기의 운영허가안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번 원자력안전위원회 의결이 위원 4명의 회의로 결정된 점은 충격적이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인 원안위 위원 중 현재 4석이 공석이며, 국회 추천(야당) 위원 2명의 임명동의안이 작년 연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임명절차를 밟지 못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총장과 여당 추천 위원 1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회의엔 1명이 불참해서 4명만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원자력안전위원
결혼한 뒤로 명절을 보낼 때마다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신랑의 친척들을 만나는 거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큰 고모 댁, 작은 고모 댁, 작은 아버님 댁, 이모님 댁까지... 들러야 할 집이 네 곳인데 그곳에 가면 자녀 분들이 모여 있고 대개는 한두 번 본 얼굴 또는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인 경우도 많아서 대면하게 되면 뻘쭘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만나면 꼭 한 번씩 듣는 질문과 걱정들(그 산골짝서 뭐해 먹고 사냐, 애들 크는데 돈 벌 궁리는 안 하냐, 얼굴이 그게 뭐냐, 애들이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째깐
설날에 합의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측은 설날에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합동 차례와 기자회견을 하고, 오는 9일 고 김용균 님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머니는 “지금도 용균이 동료들은 생사를 오가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들이 저 같은 아픔 겪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산에서는 청년들이 매주 토요일 서면 쥬디스 태화 앞에서 고 김용균 님의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추모제에서 부산청년유니온위원장인 하정은 씨가 고 김용균 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그 어느 해 겨울에 유난히 눈이 많이 왔었다.저 눈이 아이들에게 탄성을 불러일으키고 장난기를 발동시켰다.우리에게는 옛 추억을 생각하게 했다. 김용길사진 작가.귀촌하여 농가 한 채를 수리하며 인생의 동반자인 엘리사벳 그리고 이웃과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카페,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불의의 시대에 정의는 무엇인가, 비인간화가 판치는 시대에 인간다움을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무지의 시대에 지혜로운 삶은 무엇인가. 아집과 편집으로 가두어 놓은 자신의 동굴과 담벽을 허물어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함께 찬찬히 풀어 가는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인섭, '책이 나오기까지' 중에서 한 시대를 헤쳐 간 예언자적 삶의 기록들“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라는 격언이 있다. 한 사람의 생애 안에는 세상을 둘러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