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 듯이 2017년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내 일상은 어두컴컴 지리멸렬하다. 뉴스에선 날이 맑아 해돋이가 장관이겠다고 예보했지만 나는 해돋이를 못 보았다. 아침에 떡국 먹으러 어머님 댁에 일찍 갈게요 했으면서 눈을 떠 보니 아침 9시였다. 푹 자고 일어나 보니 그 시간이었다. 나보다 10분 먼저 일어난 남편은 ‘에이 참, 너무 늦게 일어났네.’라고
오늘은 욜라가 열두 밤 전부터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려 오던 태권도 공개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을 위해 그토록 바쁘던 남편도 미리 시간을 비워 놓았고 엄마인 나도 욜라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제일 좋은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가족초청 행사이니 만큼 메리와 로도 빠질 수 없었다. 태권도 체육관에서 제일 막둥이인 다섯 살 욜라. 어쩌다 욜라가 이렇게
요새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모차르트나 베토벤. 이들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여러 음악가들. 그들과 내가 밤늦도록 만나고 있다면? 그래, 그거. 유튜브가 있으므로. 만일 좋아하는 이의 연주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리 주문을 넣어야지. 하루라도 빨리 듣고 싶어서. 앨범 시디를 받으면 겉 비닐을 뜯는데 배고플 때 컵라면 비닐포장 뜯을 때의 흥분감과 기
로와 단둘이 늦은 아침을 먹는다. 요사이 아침이라면 늘 누룽지 불린 것이었는데 오늘은 뜨거운 밥에 계란프라이를 얹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볐다. 호호 냠냠! 로, 우리 일단 먹기로 하자. 조금 전까지 누나와 형이 유치원 갈 채비를 하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집안일랑 내버려 두고 우리 둘이 머리 맞대고. 늘 그렇듯 아침에는 말이지, 도저히 제때 밥
우리집 낮은 울타리를 둘러싸고 가으내 그 곁을 지나가는 이들 마음 한들한들 건드려 주었던 코스모스 군락이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갈색 줄기 다발로 변해 버렸다. 나는 꽃의 아름다운 한때를 즐긴 사람으로서 그의 몰락을 더 두고 보기가 슬퍼져 줄기를 죄다 잘라 마른풀 더미 위에 내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11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한 친구가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그날도 욜라는 로가 장난으로 휘두르는 주먹에 머리통을 정확히 맞고서도 안 맞은 척, 모르는 척 넘어갔다. 나는 그런 욜라를 보고 물었다. “욜라, 넌 왜 그렇게 멋진 거야?”해롱해롱 웃던 욜라의 얼굴이 조금 진지해졌다. 자기가 왜 멋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몇 초가 흘렀을까. 뭐 그렇게 당연한 걸 굳이 대답해야 하냐는 얼굴로 욜라가 말했다. “응,
아이들의 병치레는 나중 무엇을 남기나? 아이 본인에게는 모름지기 쓴 약과 주삿바늘에 대한 추억을 남긴다. 자기를 쳐다보는 근심 어린 엄마의 눈빛과 가물한 의식 속 제 이마에 와 닿던 손의 감촉, 그것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기억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던 옛날 광고 문구에 대한 기억과 쪼그라든 간, 눈
어느 날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 나는 로를 데리고 대중 목욕탕에 가는 걸 도전해 보았다. 사람들 많은 곳에 걸핏하면 우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날은 왠지 자신이 있었다. 목욕탕 이용객이 적을 것 같은 월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유황 온천물이 나온다는 동네 큰 목욕탕엔 주로 할머니 단체 손님이 오곤 하는데 그날은 한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계시니 애 키우는 거는 이제 수월하죠?” 하고 누가 물으면 그이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나는 “아, 아니요. 전 그런 거, 생각하시는 거(노하우)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육아 경력이 이쯤 되니 아이들 기저귀 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이야 익숙하고 나름대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깨우친
까톡, 까톡, 카까톡, 토도도독 톡. 핸드폰 단체채팅방에 계속 새로운 글이 올라오나 보다. 욜라 유치원 ‘토끼반’ 엄마들이 아이들 유치원 방학을 끝낸 기념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날도 더운데 아이들과 씨름한 노고를 서로 치하하는 중에 번개모임 공지가 떴다. 이번 주 금요일, S시에 있는 주차공간 넓고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핫플레이스에서 점심이나 한 끼 하자
요즘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않고 “덥지?”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서로 “더워 죽겠다” “더워 미치겠다” “더워서 환장하겠다”와 같은 안부를 나눈다. 평소에 에어컨 바람 아래서 “흠, 굉장히 덥군.” “매우 더운 날씨야!” “아주(꽤, 퍽, 상당히) 더워.” 정도로만 표현하던 대단히 교양 있는 작자를 오후 두 시, 잘 달구어진 횡단보도 사거리에 세워
메리가 아팠다. 해열제도 소용없는 고열과 통증, 물 한 모금조차 모조리 토하는 극심한 탈수 증상을 보고 의사는 장염이라고 진단했다. 그때부터 병원 입원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메리의 병간호는 내가 전담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엄마인데다 다년간에 걸쳐 입원 환자(메리와 욜라) 간호 경력이 꽤 되는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으며 무엇보다 내게는 메리가 병마와
우리 동네 산과 들에는 냉이며 달래가 지천이라고 했다. 하루는 현관문 유리창에 코를 대고 밖을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마을 어귀 집 할머니가 어린 손녀딸을 데리고 냉이 캐러 간다며 지나가셨다. 때가 벌써 3월 하고도 중순이다. 나는 ‘캬, 냉이! 된장국에 넣으면 향긋한데!’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냉이는커녕 잡초 뽑을 시간도 못 낸다.겨우내 잠잠하던 잡초도 봄
아이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왜 우는 걸까? 보통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풀면 어렵지 않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 적이 있었어....’로 시작해서 ‘그때 내 마음이 어땠더라....’를 기억해 내면 문제의 반은 해결된다. ‘저렇게 울고불고 심각해 보여도 사실 별 거 아니었지....
지금 우리 집에는 메리와 로 두 아이만 있고 욜라는 제 외할머니 집에 가 있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늘 셋트로 움직이던 누나하고도 떨어져 홀로 외갓집에 가 있는 욜라의 소식을 전하면.... 이모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언맨, 또봇 등 각종 아이템들을 획득하면서 이모들 주머니를 털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뭘 구체적으로 조른 적이 없으며 오히려
메리가 다니는 유치원은 아이들을 허구헌날 뛰어 놀게 해서 뭇 엄마들의 걱정을 산다. 너무 놀기만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 학습모드로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 유치원이라도 3주간의 방학 동안 명색이 방학숙제는 있다. 어디 놀러간 곳이나 읽은 책에 대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붙여 완성하는 얇은 방학책이 그것인데, 개학을 하
우리 집에 특별한 손님이 왔다. 그 손님은 베트남 호찌민에서 영화 쪽 일을 하는 미혼의 골드미스다. 그녀는 자국에서 커피숍 사업을 위한 메뉴 개발과 매장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베트남에서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술과 음식이 가득한 환대를 받고 깊은 감동을 받은 바 있는 남편은 이번엔 그녀를 우리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중
로를 계속 안아 주고 업어 주고 부둥켜안고 있다 보니 허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언제나 내게 우선순위는 ‘아이들 보필’이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내 몸 챙기기’는 늘 후순위로 팽개치는, 나는야 지고지순한 엄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형적 희생형 엄마라고는 볼 수 없다. 계속 나만 힘들고 죽도록 힘든 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주로 내가 쌓은 공(?)을
무척이나 바쁜 아침 시간이지만 오늘이 바로 12월의 첫날이라는 것은 놓치지 않았다. 메리의 유치원 가방에 여벌 옷을 챙겨 넣고, 아이들의 밥그릇에 밥이 몇 숟가락이나 남았나 점검하면서 재빨리 달력 한 장을 넘겼다.“얘들아~ 이제 12월이야,12월! 아유~ . 벌써 마지막이라니!”마지막이라고 말 하는 내 얼굴에서 아쉬운 표정을 읽었나?“엄마, 왜 12월이 마
난 밥을 서서 먹는다. 우리 집 식탁이 애초 스탠딩바로 조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스탠딩파티의 날치알을 올린 롤, 깃발을 꽂은 꼬마 샌드위치같은 핑거푸드나 걸으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당연히 없다. 대신 압력솥 밑바닥의 누룽지를 박박 긁어서 김치와 김을 곁들여 먹는 1첩 반상이 주를 이룬다. 나는 서서 로를 어부바 하고 있는 중인데 등 뒤의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