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영, 그녀를 만난 것은 단 두 번, 그것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그러나 낯설음과 어색함이 전혀 없는 편안한 만남이었다. 그냥 있음 그 자체로 든든하고 한없이 좋은 사람. 그녀가 그러했다. 삶과 죽음 그 어떤 지경에서도 그러했다. 첫 만남은 그녀가 진도에 마련한 명상센터 ‘자연의 집’에서였다. 2년 전 수도원 입
민(民)은 천(天). 하지만 이미 하늘이 무섭지 않는 오만의 현 정권의 눈에 국민들조차 제압해야 할 적군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전쟁하듯 특공대를 파견해 군사작전마저 불사하며 농성 현장을 점령하고 노동자들을 토끼몰이해 제압한 뒤 굴비 엮듯이 끌고 나오는 정권. 설사 그들의 몸은 마음대로 묶었는지 몰라도 그들의 혼은 결코 묶지 못했으리라. 설사 용산과 평택
미디어법이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국회에서 처리되는 날, 마침 진보연대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당사가 있는 대구시청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분일식으로 오전 내내 뿌연 하늘 높이 달에 가려 신비스런 은빛 테를 드러내며 반짝이는 태양 아래 시청 가는 길 곳곳에선 갖가지 구호들로 출렁이는 플랜카드와 시위현장들이 눈에 띄어,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현장과 용산 참사현장의
그의 눈길이 닿는 것에는 이상기후로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찾아와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캠퍼스의 늦은 밤 시간은 제법 선선하기도 하다. 정적이 깃든 교정을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혼자서 묵상 산책하는 기분은 자못 상쾌할 정도이다. 문천지(文川池) 호수 저편에서 건너 와 나뭇가지마다 풀 섶마다 숨어있다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갖가지 시원한 바람들도 고맙기만
때는 한낮이었다.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선천성 장애를 가져 꼼짝도 할 수 없는 걸인이 자선을 청하였다. 지체장애인인 그를 요즘의 앵벌이처럼 누군가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다 구걸하라고 옮겨놓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눈여겨보자 무엇을 주는가 싶어 쳐다보지만 베드로는 “나는 은도 금도
지나간 내 삶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늘 위로자이셨다. 첫돌을 앞두고 소아마비로 입게 된 장애로 인해 청소년시절 십여 년 동안 한없는 절망과 아픔 속에 뒹굴다 끝내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방황하며 헤맬 때, 그 죽음의 늪에서 결국 건진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성경에서 발견한 그분의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 한마디였
다시 마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마음, 가엾은 죄인들과 병자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즉시 열리셨던 그분의 그 마음 측은지심이다. 그분의 가슴은 십자가상의 죽으심 후 창에 찔려서 비로소 열리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의 모든 삶에서 늘 사랑으로 열리고 연민으로 애끓으셨던 것이니, 교회의 기원도 그 순간(교회헌장 3)을 너머, 고통 받는 가엾은 인류를 향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 이는 논리적 추론에 의한 철학적 명제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분과 함께 하며 그 사랑을 온전히 체험한 제자들의 절절한 신앙고백이다. 복음서를 써 내려간 복음사가들의 갈대 펜 그 손가락에는 그러한 그분의 핏빛 사랑으로 흥건하게 젖어있
지난 5월 28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추도미사’에 함께 하기 위하여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으로 가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명동역에 내렸다. 추도미사는 물론이고 다음 날 국민장에서의 영결식과 서울역까지의 거리행진을 염두에 두고 승용차가 아닌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나선 서울나들이는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한시라도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