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누군가 소개로 강상중 선생의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에 인용된 덴마크 작가 얀네 텔러의 소설 “아무것도 아니야”를 알게 되었다. 잠깐 소개된 그 책의 내용을 보니 종종 느끼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사실 그 문제의식은 누구라도 느껴 봤을 테다.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책은 이미 절판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다른 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와 읽어 보았다. 이 책은 2001년 덴마크 ‘최고의 청소년 책’에 뽑혔고, 덴마크를 대표하는 문학상인 ‘덴마크 문화부상’, 미국 청소년 도서상인 ‘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어떻게 그 긴 겨울을 지냈던가!해마다 2월은 축축하고 조용하게 봄을 맞이하며 겨울의 추위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녹여 내곤 하였다. 그런데 2018년 2월에 왁자지껄 한바탕 소란을 떨며 오는 봄은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오는데, 그 소리가 매우 요란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겨울 강기슭에 칼바람에 밀려와 와글와글 파도치던 얼음 부스러기들 소리보다 서슬 퍼런 동장군의 기세를 무너뜨리고 녹여 내는 봄의 소리가 더 소란스럽다.신난다! 봄이다!!!얼음이 녹기도 전에 올림픽
올해 사순 시기는 2월 14일 재의 수요일부터 3월 2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40일 동안 포기와 절제로 자신을 정화하면서 겨울이 가면 새봄이 오듯,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맞고 부활 대축일로 새 삶을 연다. 즉 생명으로 피어나는 부활 이후의 일상을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때이며, 하느님께 열려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안젤름 그륀 신부는 “내면의 샘”에서 이 40일을 포기로써 내적 자유를 누리는 때라고 말한다. 과잉문화에 맞서 외적 자극을 줄
우리가 늘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어떤 뜻일까.우리 아버지오늘날 우리는 모두 고아다. 버젓이 가족이 있는데도 고아가 된다. 너무나도 바쁜 아버지들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아이와 젊은이들은 육적, 영적 고아 상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스스로 고아라는 마음 상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대화하지 않고 교육의 본분을 수행하지 않으며 마음에 버금가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원칙과 가
2016년 7월, 흑수저들을 개, 돼지로 폄하했던 교육부 관리의 취중 발언으로 온 나라가 들끓을 때, 평생을 침팬지들과 지내온 제인 구달의 삶과 가르침을 소개하며 인간다운 생활의 자세를 반성했다. 그 기억을 뒤로 일 년 반이 지났다. 책과 함께 세상을 읽기보다 살아있는 광장의 역사를 만드느라, 거대한 변화의 파도로 들이닥친 2017년은 살아내기에도 벅찼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올해 2018년의 목표를 간단하게 정했다: 제대로 밥값을 하며 살자! 그러니 다시 돌아와 글을 통해 소통하고 나누는 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고마움
하느님의 뜻에 항상 귀 기울이고 그 뜻을 알아차린 후 고통을 감수하며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던 여성. 수도생활 양식의 파격적 변화의 중심에 섰던 여성. 이 여성이 바로 예수수도회 창립자 메리 워드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1585년에 태어나 1645년에 세상을 떠난 이 여성에게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가경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가경자’란 교회가 ‘영웅적인 덕’을 지닌 인물을 시복 후보로 지정해 잠정적으로 일컫는 호칭으로 장차 성인품에 오를 사람을 말한다.메리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온 마음을 다해, 시간과 온 영혼을 다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누군가를 왜 그토록 기다렸던가. 젖먹이 아기는 엄마를, 사랑하는 연인은 자신의 연인을, 부모는 사랑스런 자녀를, 우리 서로가 서로의 친구들을. 우리는 모두 삶에서 길게 혹은 짧게 기다림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 사랑스런 기다림의 이유는 그 존재가 나에게 기쁨이고 희망이며 복음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여기 아기 예수님의 재림을 고요히 기다리는 우리들이 있다. 대림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며 우리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재림하시기
여기 작고 가난한 영혼 하나온전히 그분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긴 한 영혼의 기도와 시가 내 굳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내 허약함과 무력’만이 오직 은총이 내려오는 통로임을 고백하는 작고 겸손한 영혼. 한국교회 사상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각각 사제와 수도자로 봉헌한 이춘선 마리아 자매의 일기와 편지와 기도시를 묶은 "네 신부님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이춘선 마리아 자매는 1921년 한국과 러시아 국경지역인 육도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본래 함경도 경원 사람이었으나 일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것외국어를 배울 때 참으로 매혹적인 말이 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를 만나고 이해하는 의미심장한 일은 녹록지 않다. 학교 수업과 입시, 그리고 취업을 위해 거의 피하기 힘든 영어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고등학교 때 추가된 제2외국어 독일어는 재미있기는 한데, 관사 변화부터 주눅 든다. “der, des, dem, den.’(요즘 이모 씨 덕에 독일어 정관사 중성 1격이 많이 회자된다. 정말로 ‘das’는 누구의 것일까?) 한 달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포교를 하려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종로 거리를 혼자서 걷을 때 누군가 다정하게 부르면 십중팔구는 ‘도를 아십니까?’ 묻는 전도사들이다. 주택가 초인종을 제일 많이 누르는 사람들도 ‘좋은 말씀’ 전한다는 전도사들이다. 종교를 전하는 사람들은 주로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공략한다. 혼자 걷거나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선교 대상인 것은 그 때문이다.하지만 가가호호 돌아다니는 방식으론 품만 많이 들 뿐 성과가 크게 남지 않는다. 많은 개신교회들이 학습지 판매하는 것처럼 큰길가에 파라솔을 치고 행인들에게
“컵에 물이 다 차면 물이 밖으로 흘러내려야 하는데, 다 차는 순간 마법처럼 그 컵이 더 커진다.” - 프란치스코 교황“지금 한국 경제는 ‘지대 추구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핵심에는 ‘지대 추구’의 특권이 존재하며, 수십 년간 이를 용인해 온 잘못된 정치와 행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추미애 더
“그대 자신 말고 밖에서 전장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대가 치러야 하는 전투는.... 그대 안에 있다. 그대의 적은 그대 마음에서 나온다.” 오리게네스의 여호수아기 주해 중에서.(88쪽)이 책은 독일 베네딕도회 장상이었던 피델리스 루페르트 신부가 서방 수도회 규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바탕으로 쓴 영성생활 안내서다. 수도생활이란 하
“저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논란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하나의 오랜 과정, 숙성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뿐입니다.”― 프레데릭 르누아르. 마리 드뤼케르, "신의 탄생", 김영사, 2014, 101쪽. 생각보다 참 어려운 가톨릭 상식을 우리의 눈높이로!중학교 3학년 때 읽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는 이런 대목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윤한봉 선생의 미국에서의 활동입니다.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으나, 윤한봉 선생이 미국에서 만든 한인 청년조직인 ‘한청련’과 중년 조직인 한겨레는 해외동포의 인권운동에 길이 남을 큰 운동단체였습니다. 결성된 지 30년이 넘은 현재도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워싱턴 등 미국의 4대 도시에 사무실을 갖추고 재미
“역시! 너는 괜찮아”는 김준희 씨가 5년간 도담대안학교 무료 교장으로 봉사하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친 시간들을 담은 카툰에세이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처럼 쉽게 열받고 눈물도 많은 청소년들에게 쉼표 하나를 선물한다. 무엇이든 “싫어!”라고 먼저 말하는 중2 시러군과 “몰라요, 안 돼요~”라고 말해도 사실은 잘하고 싶어 하는 앙대양, 그리고 “절대 돼!
“음식물은 상품이 될 수 없으며, 의사소통의 수단이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음식과 의사소통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과식으로 죽는 사람이 없다면 배고픔으로 죽는 사람도 없어야 합니다.” 에드아르도 갈레아노, “60억 번째 세계 시민에게 보내는 편지”, ‘새로운 비행으로의 초대’, 들녘, 1999. 159-165쪽“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흔히 말하듯이 전투가 중지되었을 뿐, 정전협정 이후 전쟁 자체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남북 간 긴장이 사라진다면 과연 한국전쟁은 진정한 종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전쟁이 정치적 차원에서 종결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전쟁의 ‘살아 있는 상처’들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관계’란 어떤 모습일까? 자본이 인간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듯이, 우리도 상대방을 하나의 상품(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대하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를 통해서 어떤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마치 담배 한 개비씩 빼내듯이 그에게서 빼먹을 게 없나 살펴보는 시선을 서로에게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16일은 세월호참사 3주기이자 예수 부활 대축일이었다. 거대한 몸뚱이를 모로 누인 세월호 선체는 지난 3년 동안 우리에게 생명과 진실의 소중함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고,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처럼 어둠에서 진실의 밝은 자리로 나아가리란 것을 믿게 한다. 우리 모두는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같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왜 그들은 사과하지 않을까.’ 법
예전 후배가 퇴사하면서 자신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거 같다며 자책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니야, 나쁜 공간에 적응하면 나쁜 사람 돼.”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대개 적응이란 말은 좋게만 쓰이는 것 같다. 반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여 사회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녹조 라떼가 되어 버린 4대강에 잘(?) 적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