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효주 아녜스)홍익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 뒤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 전공을 살려 무료 대안학교 교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지금은 본업인 만화만 열심히 그리며 살고 있다. 30여 권의 만화책을 냈다. 현재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주보와 어린이 주보, 어린이 잡지 에 영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이 되고 싶어 직장 다니며 돈 벌어 간호대 가고, 설레던 첫발이 영남대병원이었던 친구. 반말에 태움이 일상이던 병원에서 노조 활동으로 구속, 해고된 친구. 함께 갔던 캄보디아에서 에이즈 감염에 질병으로 아픈 아이들을 보며 1년간 아이들을 돌봤던 친구. 그때 참 근사했다. 복직해서 꼭 꿈을 이루길.”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저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를 읽고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농성 해제를 앞둔 고공을 올랐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고공에 올라서 만났을 때는 얼굴이 부어 있었지만, 이번에 만난
설을 앞두고 며칠 전, 아이들이 간식상 앞에 빙 둘러앉았다. 이웃집 겨울이, 다울이까지 모두 다섯 아이가 간식으로 내어 준 고구마전을 먹으며 한바탕 수다 잔치를 벌이는데, 그날의 주제는 세상에서 제일로 무서운 귀신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무서운 귀신을 다 끄집어 내어 누가누가 더 무섭나 선발이라도 할 기세였다.“너희 달걀귀신 알아? 달걀귀신은 얼굴이 없는데도 사람 잡아먹는다.”“그럼 신발 귀신 알아? 신발 귀신은 신발까지 통째로 먹는다.”“모자 귀신이 더 무서워. 모자 귀신은 큰 모자로 뒤집어 씌운 다음에 잡아 먹어.”“똥 귀
올해 '기생충'과 함께 단 5편만 오르는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제목이 시사하듯 한 신부의 삶을 다룬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종교영화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존경스러운 종교적 여정을 그리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처음 공개하고 상 받은 뒤, 충격적 실화를 극화한 점과 사실적인 연기로 감정적 동화를 이끌어 내어 비평계의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오는 2월 10일 결과가 공개되는 오스카에서 국제장편영화
핵발전소를 가동하면, 반드시 핵쓰레기가 생깁니다. 그러나 핵쓰레기를 핵쓰레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용후 핵연료’ 또는 ‘핵 폐기물’이라고 말합니다. ‘사용후 핵연료’라는 말에는 핵쓰레기가 재사용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탈핵 진영에서도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한국은 국제조약에 따라 재처리를 할 수 없음에도 사용후 핵연료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모순입니다.지금 핵쓰레기는 포화 상태에 있습니다. 중수로 핵발전인 월성 핵발전 단지 안에는 건식 핵쓰레기장이 있습니다. 건식 핵쓰레기장은 원자로에서 나온 고준위 핵쓰레기를 5년 정도
새해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안해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일의 홍수 속에서 잠시라도 빼내고 싶었습니다. 방학도 없는 지역아동센터는 청소년들의 돌봄과 함께 행정 업무가 끝이 없는 곳입니다. 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모전에 참여하면 할수록 사회복지사들의 업무는 끝이 없습니다.한국 사람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여행지에 9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가난하지만, 친절하고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통적 토속 신앙
여성의 삶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아우리는 지난 대림 1주일을 ‘생명 수호 주일’로 보내면서 각자의 본당 미사 중에 다음과 같은 보편지향기도를 바쳤을 것이다. “낙태의 유혹을 물리친 미혼모들을 어여삐 보시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열어 주소서.” 이것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교회가 보살피기 위한 순수한 기도가 맞는가? 어떤 여자를 추켜세움으로써 다른 여자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없는 것인가? 교회의 많은 문헌이 혼인을 통한 인간생명 전수를 가르쳐 왔지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는 마지막 남은 해고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진숙’입니다. 김진숙은 ‘소금꽃나무’와 ‘85호 크레인’으로 유명한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입니다.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2003년은 지옥 같은 해였습니다. 2003년 10월,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 129일 만에 목을 맸고, 2주 뒤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투신했습니다. 두 분의 희생으로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사람들이 모두 복직하게 됩니다. 해고된 지 20년이 된 박영제, 이정식도 2006년 1월 1일 복직됩니다. 그러나 김진숙은 제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42번째 떼제의 유럽 젊은이 모임지난 2019년 12월 28일부터 2020년 1월 1일까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떼제 유럽 젊은이 모임이 열렸다. 이번이 42번째 모임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떼제 공동체가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떼제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많은 청년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나눌 수 있도록 매년 연말에 유럽의 다른 도시로 찾아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수가 줄어든 편이나 매년 약 1만 5000명 정도의 순례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7일간 116킬로미터를 걸어서 영남대 의료원에 도착했습니다. 영남대 의료원 입구에서 오른쪽 건물 고공 위에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가 손톱 만한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남겨질 친구가 너무 힘들 것 같아 울지 않으리라 결코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고공 위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온몸이 감전된 듯 전기가 흘렀습니다. 70미터 고공 옥상 위에 도착하니 고공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영국 사실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켄 로치 감독은 신자유주의 속 복지제도의 맹점을 파고든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2017년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에 은퇴를 선언했다.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라고 불리던 1960년대 영국 청년들의 저항적 문화운동 시기부터 영화를 만들어 온 켄 로치가 나이를 이유로 은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노장이 다시 카메라를 든 이유는 바로 택배원의 시선으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 불리는 비정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응시하기 위
뭐니 뭐니(머니머니) 해도 복 중에 제일은 사람복(인복)이라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지금껏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소신껏 시골살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첫 귀농지에서부터 좋은 사람들이 끌어 주고 붙잡아 준 덕분인데, 가끔 그때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다 보면 나무실 마을 할머니들이(특히 설매실 할머니가) 지나가는 대목에서 버퍼링 현상 비슷한 게 일어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마음의 짐 때문
올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가족의 생명이 위급해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마음이 설렌다.많은 것을 품은 아름다운 노을처럼 내 마음도 그러하다. 김용길사진 작가.귀촌하여 농가 한 채를 수리하며 인생의 동반자인 엘리사벳 그리고 이웃과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카페, 무빙 까사미아를 준비하고 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모든 과학자가 게재를 손꼽아 희망하는 유명한 과학저널 지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논문을 실었다. 1977년 프레더릭 생어는 염기서열 분석법을 개발한다. 현대 생명과학사에서 몇 가지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들은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연구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방법의 패러다임도 변화하였다. 생명체의 염기서열을 알 수 없었던 과거엔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개체의 형질변화를 바탕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연구를 했다면,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그 서열
김진숙 지도위원이 긴 ‘은둔’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KTX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절정에 달할 때, 그 누구보다도 KTX 노동자들과 뜨겁게 연대했던 그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서야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암 투병이었습니다.김진숙 지도위원이 외로운 투병을 딛고 세상으로 나온 것은 그이의 오랜 동무인 영남대 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씨의 고공 농성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박문진 씨가 어느 인터뷰 기사 중에 “외롭다”고 한 말이 사무치게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 지독한 외로움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저앉지 말고 일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껴안고 살아왔던 밀양 상동면 도곡리 말해 할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해 할매는 17살인 1944년에 시집을 왔습니다. 세 살 위의 남편 얼굴 한 번 보지도 않고 시집을 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보도연맹 사건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남편이 끌려갈 때, 큰아들은 다섯 살이었고 막내아들은 갓 돌이 지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홀로 된 여인이 두 아들을 키우면서 험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남의 일도 기쁘게 했습니다. 그래서 손에 돈이 들어오면 땅을 샀습니다. 그 땅을 의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