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날 아침 -이정우 그대 못자국난 손이 저희의 야윈 뺨을 만집니까. 생명의 주여, 오늘이 바로 부활날일 줄을 밤새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눈부신 아침 물가에서 그대를 다시 뵈온 저희는 말없이 그냥 울고만 싶습니다. 주여, 이젠 더욱 불쌍히 여기심으로도 사흘 전 피흘리시던 그대의 발에 저희 메마른 입술을 대게 하소서. 앉은뱅이 꽃의
가시관과 보혈-김남조 옷은 제비뽑아 나눴으되 머리의 가시관이 남았더니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신포도주와 초를 먹이고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흐를 때도 가시관이 내 살에 박혔더니라 나를 무덤에 옮겨 베를 감아 뉘인 다음 돌문을 닫을 때 빛 한 줄기가 가락지처럼 감싸는 가시관이 있었노라 가시마다 피가 맺혔었노라 그로부터 오늘까지 내 사랑은 가시관을 쓰노라 너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박춘식 아기를 가진 엄마는 젖먹이를 한 순간도 잊지 않습니다 아기를 잠시 방에 두고 부엌에 있어도 엄마는 아기와 함께 있습니다 머리에 아기가 항상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아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아기가 늘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보다 더 무서운 사랑 주님의 품입니다 그 사랑의 정도를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사순절 고백 -홍윤숙 사순절 지키지 못한 죄 제가 압니다 금식도 금육도 마음뿐이고 십자가의 길 한 번 제대로 묵상하지 못하고 밤이면 부질없는 세상의 시름 번뇌로 잠 못 듭니다 잠들게 하소서 잠들게 하소서 빌어보지만 애원도 약도 소용없는 밤 주(主)보다 주(酒)의 힘 빌리고자 포도주 몇 잔 털어마시니 주(主)보다 주(酒)가 그리 쉽고 빠르더이다 진실로 말씀은
간절한 기도-박춘식 거만한 모습으로 안 보인다면 어둡고 맥빠진 얼굴이라도 좋습니다 오만한 냄새가 묻어나지 않는다면 답답하고 차가운 인상이라도 흡족합니다 제 얼굴이 많은 허물로 텁지근하지만 겸손의 그림자가 한 줄이라도 분명이 비친다면 또 겸양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주님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그것으로 감사합니다 어머니하느님,박춘식,미루나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유안진 하마트면 밟을 뻔한 풀밭 귀퉁이 끝에, 초등학교 적 화단의 채송화 피었다, 붉고 흰 꽃송이를 정수리 층층으로 피워올린 접시꽃 발치쯤, 새빨강 벼슬모자 높이 쓴 맨드라미 뒤꿈치에서, 그냥 잡풀이던 앉은뱅이꽃 채송화가 지상에서 지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땅 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피었다 빨갛게 하얗게 내가 바로 너다 누가 말
재의 수요일-박춘식 사람아 사람아 가는 곳마다 욕정을 흔들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손아귀 그물로 잡아당기는 보이는 물건마다 갈퀴로 긁어 모으는 그러면서도 자기가 한 줌의 흙먼지임을 모르는 이 욕심덩어리 사람아 하늘을 찌르다가 무너진 바벨탑 사람들이 시나이산 아래 광야에서 이제는 하늘의 두려운 소리를 듣는다 큰 민족을 이루어 흥망을 되풀이 하다가 골고타 언덕에서
새들의 기도 3 _박춘식 두 날개를 펼쳐 온 몸으로 십자가를 그려가는 새들 하늘 기도 바람이 날개를 잡으면 더 우아한 작품이 된다 매일 십자가 보여주는 하늘 아래 나무는 두 팔 더 올린다 풀잎은 손을 더 흔든다 산과 들의 기도를 인도하는 주송자(主誦者) 기품(氣品) 날렵한 새 새 새 하얀감실(성체조배기도시집),박춘식,들숨날숨,63쪽 어느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 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들을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달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
울지마 톤즈 -박춘식 포탄 연기로 검게 그을러진 통나무 둥치가 말을 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눈자위의 흰창이 유난히 밝은 한센인이 떨리는 고백으로 이태석 신부를 말한다 탄피로 꽉 막힌 그들의 눈물샘을 열어준 그는 검은 대륙에서 새로운 성경을 만들었다 따뜻한 사랑의 상처를 만져주는 아프리카 성경 어느 구절에서는 아이들의 노래가 눈부시게 들린다
그 이상한 꿈-배달순저녁 늦게 로마 공항에 도착 호텔 ‘캐피탈’ 객실에서 멀고 먼 순례길의 짐을 풀었다. 이 설레는 첫 로마의 밤에 그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는 참으로 신기한 꿈을…! 그것은 문득 내 얼굴 모습이 뜻밖에도 맑고 아름답게 몇 차례나 변모하는 것이었다. 그때 고요 속에 기쁨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한 거
길 위의 사제-박춘식문규현 바오로 신부 은퇴 미사에 대한 정현진 기자 글(2011.1.24 게재) 중에 “믿는 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교회이며, 온 세상이 복음화 현장이다. 성당건물과 교회질서 안에 우리 자신을 한정시켜 세상 구원과 복음화를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옹졸하게 만드는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면서, 신
소록도 천사-박춘식 소록도 마을 어귀 엄마 솟대 둘 바다가 섬으로 오고 구름이 섬으로 오고 육지가 섬으로 다가오고 하늘이 섬으로 내려오고 솟대를 바라보며, 오고 가고 오고 앳된 두 미소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와 43년 동안 날개옷을 접어 솟대 위에 올려놓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어느날 기둥만 서있고 날개옷은 보이지 않는다 마흔 세 편 향긋한 봄의 시(詩)를
새들의 기도 1-박춘식 새들은 십자가를 그리면서 날아간다 기도한다 십자성호를 긋지 않으면 떨어지기 때문에 기도를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다 하얀감실(성체조배기도시집),박춘식,들숨날숨,61쪽 새들은 항상 두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새 마다 나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새든 작은 새든 십자가 모습으로 날아갑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우친
그레고리안 성가 3 - 마종기 중세기의 낡고 어두운 수도원에서 듣던 그 많은 총각들의 화음의 기도가 높은 천장을 열고 하늘을 만든다. 하늘 속에 몇 송이 연한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멀고 하염없었다. 전생의 예감을 이끌고 긴 차표를 끊는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심을 빠져나와 빈 강촌의 햇살 눈부신 둑길을 지난다. 미루나무가 춤추고 벌레들이 작게
백년송 -천주교대구교구설정백주년- - 박춘식 신나뭇골에 피어오른 작은 불꽃이 새방골 진달래에 옮겨붙으면서 백년 세월 거룩한 부활 아침을 노래하였다 이제는 진달래 불꽃이 모든 고을에서 기도로 피어난다 흙먼지 잠재우며 쏟아진 하늘 소낙비 실뿌리 되어 땅 속 백 년 깊이 스며들다가 관덕정 아미산 바위틈으로 솟아올라, 지금 흘러넘치는 샘물로 금호강을 껴안고 있다
당신의 눈 앞에서-새해에-이정우 주님, 당신의 눈 앞에서 저희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어 올 새해엔 더욱 더 정직하고도 용기있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의 가슴 앞에서 저희 사랑을 다시금 시작하여 올 한 해엔 한층 더 기쁘고도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오나, 주님, 당신의 은총에 힘입어 저희 생애를 진실되이 봉헌하며 이 세상에서 오로지 참된 생명으로 살아
한 해의 끝에 서서 - 십자가 54 --홍윤숙 12월 벽에 걸린 마지막 달력이 천근의 무게로 나를 누른다 어디를 어떻게 걸어왔는가 무거운 행낭 잠시 내려놓고 부르튼 손발 묵연히 굽어보는 그대의 등에서 바람이 불고 걸어온 한 해의 노을이 진다 세상에 진 빚 못다 부린 짐 시름 근심 미움 사랑 그냥 그대로 가슴에 담아 지고 다시 떠나야 할 오늘은 왜 이리 발밑
올해의 성탄-김남조 크리스마스는 등불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고 거기에 서명을 하듯,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 양 적어보는 날이다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월 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면 배덕의 정사쯤 어이없이 저지르고 말 그리고 외롭고 맹목일 열에 내 두뇌를 까맣게 태워가고 있다 하여 크리스마스는 석양
새벽 기도-정호승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