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 가 30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1억원에 못미치는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 제작된 라는 독립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최고상을 받으며 국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런 유례 없는 성과는 현재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이들과 동네 근처 공원길을 산책하다 저만치 물병하나 가방하나를 옆에 두고 계단에 앉아 있는 수녀님을 보게 되었다. 공원을 가득 메운 아이들 웃음소리 때문이었을까 한 사람으로 수도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 참 고독하고 아플 수 있다는 느낌이 세삼스러웠다. 간혹 외롭고 힘들게 사시는 동네 할머니들 중에 깊은 신앙심으로 수도자처럼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 항상 주변
당신 손이 아름다운 것은 이웃에게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연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서울에 있는 작은 대안대학인 노마소이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거든요. 상경 준비에 검정고시 공부에 이것저것 맞물려 이번 주엔 글을 쓰기가 힘들어 한 주 건너뛰고자 합니다. 대신 제가 입학하게 된 노마소이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에 대한 이야길
누나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발목수술을 하고 누워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덟 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서 누나는 그야말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집에서도 텔레비젼을 잘 안보고 사는 누나가 함께 입원해 있는 다른 분들이 종일 켜 놓고 보는 텔레비젼 소리를 참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에돌지 않고 바로 들어가자. 정교분리와 정치에 대한 의견 표명은 다른 것이다. 더욱이 정치판에 대하여 바르게 가야하는 길을 종교인의 입장에서 말하고, 교우들에게 지침으로 새길 말을 하는 것은 때로는 복음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필요하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추기경이 남기고 간 한 자락 모습에서도 그런 역할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남의 집 하는 일을 보고
봉화에 온 후로는, 형과 같이 산에 나무하러 다니거나, 부역을 다니기도 했지. 그리고 할머니가 손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당시 정부에서 금하는 밀주(막걸리)를 조금 담그어 한 두 대폿집에 팔기도 했는데, 주로 여동생과 내가 술 배달을 했어. 남모르게 감쪽같이 배달해야만 했지. 들키는 날이면, 거액의 벌금을 내거나 옥살이를 해야 하니까. 당시에는 부역도 자주
En Cristo 자! 이콘을 바라보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 시메온”이다. 숱 많은 그의 머리와 긴 수염, 무뚝뚝함과 엄격함이 묻어 있는 시선으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시메온의 왼손을 가리고 있는 망토 위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의 발은 천진하게 뛰어 놀듯 한쪽 발이 들려 있음과 동시에 강복의 손을 하고 있다. 전신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나누는 마음 예순 일곱 할머니가 월세 10만원에 삽니다. 기름 값이 너무도 비싸 보일러를 켤 엄두도 못 냅니다. 전기장판을 살 여유도 없습니다. 평생 남의 자식 키워주다가 혼자 삽니다. 쌀을 한 포 드렸더니 고마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며칠 전에 용산 참사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쌀을 나눠드리고 나니 국수집 쌀
우리는 세바그람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아그라역 플랫 홈에 20개도 넘는 배낭을 둥글게 쌓아 놓고 그 둘레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다. 내일은 간디 아쉬람에 도착할 것이다. 배낭이나 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체인으로 열쇠를 잠그라는 등 서로 떠들다가 3층 침대칸에 층층이 누워 야간열차의 덜커덕대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이 들었
6개월 전쯤 여섯 번째 배를 폐선하고 집에만 계시는 뒷집 대인호 할아버지 할머니는 60년이 넘게 바다에서 일을 하셨다. 평생 바다에서 일 하시다 집에만 계시려니 오죽 답답하셨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식사도 잘 안하신다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다. 할아버지는 개를 한 마리 데려다 키우기도 하고 동네에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모이도 주시면서 적적함을 달래려
부모님과 차에 올라타 간디학교로 출발했다. 학생 선발을 위한 예비학교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재수 좋게도 1차 서류전형에서 붙어서 2차 전형에 참가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2차 전형부터는 학생 면접, 부모님 면접을 보고 학생이 생활하는 걸 며칠 간 지켜본 후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한다. 이런 제기랄. 다른 곳을 원하고 있었지만 나는 변화에 대한 자신이 없었
서로 마주볼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너의 해맑은 눈을 보며 찬미 노래 함께 부르면 험난한 오늘을 맞이할 용기가 나는구나. 사진/김용길, 글/최금자
사람들이 선해지기 쉬운 사회는 협력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 를 발간했던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를 갈망했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일까요?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에 관련된 일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우리의 좁은 세계에서 해방되어 보다 넓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다 넓게 다른 나라들에게, 보다 넓게 지구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가난에서 해방되되, 가난에 대해서보다 넓은 의식을 가지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