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無渡河 (공무도하) 님이여 물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님이여 그예 물 건너시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가신 님을 어이할꼬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부활하고 그 부활의 신비 안에서 그분이 바로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확인한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환호와 증언은 그 겪은 슬픔을 녹여내기
교회의 사회교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신비와 존엄성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단일체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을 약속받은 육체가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이성과 자유 의지가 모든 육체적, 감각적 기능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인간은 육체를 통
나의 바람이며 따스함이신 주님 복음적 삶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자리를 내어드리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삶의 무게로 쉽게 좌절하고 넘어지는 내 안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이렇게 작고 초라한 나, 우리 이지만 주님의 눈 속에 넣어주신 우리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결국 주님의 사랑은 나의 사랑보다 더
요즈음 아이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라며 전국 각지에서 강남에 있는 학교로 이동하는 것이 유행이다. 하늘이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부모에게 이끌려 그렇게 정든 친구들을 떠나갔다. 주변 환경의 문화와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데...... 자식을 키우는 것도 왠지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성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수직적 평가로 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침해하는 개인적, 사회적 분열의 뿌리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상처가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이를 ‘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원죄에서부터 우리가 스스로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범하게 되는 죄에 이르기까지 많은 죄를 안고 있습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이니만큼 죄의 결과는 소외, 곧
수녀원 베란다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봄꽃의 향연이 아름답다. 하늘을 향해 환희의 송가를 부르듯 우아한 몸짓을 바람에 싣는다. 옆집 수도원의 뒤뜰에도 수사님이 심으신 성모님의 꽃들이 모두 활짝 피었다. 성당 뜰 안에는 30살이 훌쩍 넘은 커다란 벚꽃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수녀원에서 바라보면 파란색의 성당지붕이 약간 보이고 그 위에 온통 벚꽃으로 화사하다. 아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27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 질서의 중심이자 정점에 두셨습니다.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어떤 것
행복하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그렇게 자주 말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미사 중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나를 놀라게 한다. 혹, 행복하다고 자기도취에 빠져 살면서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이가 있어 행복하다는 것을 잠시 깜박 잊고 살았다. 자리를 양보해주어서 편안하고 힘든 오르막
교회는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당신을 모든 사람과 결합시키셨으며, 교회는 이 결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워지도록 하는 과업을 근본적인 임무로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이 자기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우
엠푸를 수리하고 난 뒤부터 스피커를 통해 잡음이 나와 듣기가 불편하다. 성당 안의 좌석이 부족하여 미사를 밖에서 드리는 신자들을 위해 모니터와 음향기기를 설치했건만 얼마 되지도 않아 고장이 나서 수리를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전에는 소리가 깨끗하였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수리 후 줄 곳 ‘쎄~에~’ 하는 소리가 난다. 불편함을 호
교황 바오로 6세는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 라고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장엄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회칙은 특별히 인간의 총체적 발전과 인류의 연대적 발전의 얼개를 제시하였습니다. 교황은 발전이란 ‘비인간적인 삶의 여건이 인간다운 삶의 여건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단순히 경제적 성장이나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회칙 (노동헌장, 1891)는 사회교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영속적인 모범”이 될 방법론을 이용하여 노동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때에 천명한 원리들은 이후의 사회회칙들에서 다시 다루어지고 더 깊이 연구되었습니다. 특히 심각한 사회 문제들은 “모든 세력 간의 협력 없이는
임의노래 지난해 가을에 멋으로 매달아 놓은 감이 곳 감도 아닌 것이 대추 모양이 되어버렸다. 집 울안에 심은 감이 제법 많은 열매를 맺어 풍성함의 멋스러움으로 기념 겸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 훌륭한 열매를 맺은 감나무가 베어져버렸다. 사연인 즉은 이렇다. 어린 감나무가 이제 제법 커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는데 탐스러워 지기 시작하자 담 너머 골목길을 지나
“사회교리”라는 용어는 교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한 뒤로 교황과 주교들이 교도권을 통해 교회 안에서 발언한, 사회 문제에 관한 모든 교리적 견해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늘 사회에 관심을 보여 왔지만, 회칙 「새로운 사태」는 새로운 시작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고구마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과 기질 달란트 들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며 바라봐 줄때 그 사람을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이다. 작은 그림자들 김종옥 작사/김종옥 작곡 오 그리움이여 오 사랑이여 오 그리움이여 오 사랑이여 당신 곁에 머물던 형제의 이마에서 고우신 빛을 봅니다. 눈
교회의 사회교리의 특징은 연속성과 쇄신입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무엇보다 먼저 계시와 인간본성에서 비롯되는 보편 가치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리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사회교리는 다른 문화나 이념이나 견해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근본적으로 바라는 지향점, 세상의 흐름을 성찰하는 원리, 복음적 가치 판단, 행동지침의 차원에서 변함없는 기준을 갖고
그분은 부활하실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믿는 한 그분이 반드시 부활하실 것입니다.그분이 다시 살아 우리 가운데 계시리라 믿는 게 신앙입니다. 그분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십니다.세례자 요한이 죽자 곧바로 갈릴래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셨던 그분, 돌아가신 뒤 제자들과 다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던 그분, 그분은 분명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준
교회 공동체 전체는 사회교리의 첫 번째 수용자입니다. 사회교리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양심에 호소하여 그들이 사회에서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알고 실천하게 만듭니다. 사회교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안에서 제 나름대로 능력과 은총, 소명과 임무에 따라 적절하게 응답해야 하는 도덕적 진리의 빛입니다.또한 이 사회교리에는 사회를 건설하고 조직하며 운영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도 아니고,형제 간의 다툼이 멈춘 상태도 아닙니다. 나라와 나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과 하느님,이웃과 형제자매들,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우정을 맺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취되는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우정은 그분의 은총으로 비롯되고우리 자신들의 노력과 헌신 속에서 맺어집니다
+. 예수 그리스도여, 주를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0. 주의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0. 어머니께 청하오니, 내 맘 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