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루라는 날마다 그이와 노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진한 쑥향을 내는 뜸을 라자로의 가슴께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향이 다 탈 때까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는 바다를 걷고 있다. 하늘엔 물새들이 날고 바다 속엔 물고기들이 가득하구나. 저들은 어디서 잠을 청할까, 밤이 오면, 어두운 밤이 오면. 나는 어디에 잠자리를 펼까, 밤이 오면, 어두운 밤이
소리 없이 흐르는 물줄기에 언제 우리가 관심이나 있었던가? 샘물은 흘러서 개울이 되고, 한참을 흐르다가 개천이 되고, 또다시 흐르다가 샛강으로 넓어지고, 그 샛강들이 굽이굽이 모여서 강이 되고, 그 넓어진 강은 느릿느릿 바다에 이르러 저 멀리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언제가 다시 비가 되어 돌아 오기도 하고, 옛 전설 속에 묻히기도 하고…. 시인
그들이 나를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당신은 내가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며 죽었다고 신자들에게 전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확신을 갖기만을 바랍니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로메로 대주교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고, 연이어 그해 3월 12일은 지학순 주교(전 천주
새벽 기도-정호승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
학자 가말리엘과 사제들이 다녀간 후로 숲속 사람들은 많이 술렁거렸다. 요한의 일갈에 통렬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날선 비판에 혹시 권력자들이 이곳에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시에서 날마다 뒤숭숭한 소문이 날아왔다. 헤로데의 자식들끼리 유산다툼 때문에 칼을 겨누고 전쟁을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날이 밝으면 지난밤 어둠 속에서 쑥쑥
어린 시절 유난스럽게도 편식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지혜에 넘어가 고집스럽던 편식은 고쳐졌고 지금은 무엇이든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가리지 않는다. 파는 냄새나서 안 먹고, 생선은 징그러워서 안 먹고 육류는 불쌍해서 못 먹고, 알 은 이상해서 안 먹고 등등... 생각해보면 무엇을 먹고살았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잔멸치를 맛있게 볶
보리가 이삭을 내 밀었다. 지난겨울 장마 때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덕에 올해는 풍성한 수확을 예고했다. 강이 흘러온 곳에서 부는 바람은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보리와 밀의 파란 잎을 파도치듯 쓸면서 강둔덕과 벌판으로 밀려와 숲속에 머문 사람들의 발아래까지 출렁였다. 요한의 눈썹은 요즘 들어 청보리 이삭처럼 자꾸만 치켜 올라갔다. 산에서 굴러 내리는 바위 같은
우리 성교회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오시는 구세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세 번 오신다. 한 번은 이천 년 전에 오셨고, 또 한 번은 우리에게 죽음이 닥칠 때나 세상 종말에 오실 것이다. 그리고 매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고 계신다. 지금도 성체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우리는 민중들의 외로움과 그들의 가정문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영위하는 의미없는 삶에 주목한다. 오늘날 우리는 특히 가난으로 인한 불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이 가난을 신앙의 빛으로 바라보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벌어져 가는 격차를 그리스도인 실존에 모순되는 수치로 본다. 소수의 사치는 거대한 대중의 비참한 가난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가
저녁식사가 끝난 후 그이와 안드레아가 강물에서 목욕을 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이 살갗에 부딪치는 느낌이 좋았다. 육신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쾌감의 주인공은 영혼이 아니고 분명히 육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몸에 붙은 각질을 뜯으려고 모여들었다. 물고기들의 보드라운 주둥이가 살갗에 닿는 간지러움이 달콤했다. 강바닥
루르드-박춘식 1858년 2월, 프랑스 남서부 한 산골 시냇가 바위벽 홀연 나타난 천향(天香) 귀부인, 철부지 14살 소녀는 기겁하여 무릎 꿇었다 기도 많이 하라는 귀부인 소문은 시골길 가득 흘러 넘쳐 수많은 묵주 행열이 이어졌다 당황한 그곳 시골 성당 신부는 소녀에게 윽박지르듯 도대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달라고 하여라, 명령하듯 하늘 귀부인 &hellip
봄은 불현듯이 찾아왔다. 우기의 시작인 지난 초겨울 이른비에 맞추어 파종했던 밀과 보리들이 벌판에 파란 잎을 내밀어 마치 연두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온 세상이 환했다. 겨울장마 내내 누런 황토물이 흐르던 요르단 강도 어느덧 다시 녹색빛깔을 되찾았다. 환한 봄볕을 보면서 숲속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움막의 지붕을 벗겨내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미사는 평화의 미사이다. 미사를 드릴 때 주교는 행복의 조건인 평화로 우리를 초대한다. 미사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인 영성체를 하기 전에 우리는 서로 평화의 인사를 하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 두 번 자비를 구하면서 평화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미사 강복과 더불어 사제는 우리를 평화의 사도로 파견한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주교는 &ldqu
광야를 꿈꾸며-홍윤숙 사람이 광야로 갈 수 없을 때 광야가 사람에게 오기도 한다네 평 반짜리 나의 방은 때로 나의 광야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에 매여 있는 모든 끈 풀어버리고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영혼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시공을 넘어 마음의 성소 한 채 지어보려 하지만 어쩔까 전화 벨소리 초인종 소리에도 무너지고 마는 약한 모래성 도시의 광야는 이
겨울비 잦아들 무렵에 큰 봇짐을 등에 멘 이방인 한 사람이 찾아왔다. 숲속에 남아있던 사람들과 제자들은 생김새가 다른 그를 쭈뼛거리면서 한참이나 구경 했다. 그가 유다의 안내로 비어있는 움막에 짐을 풀었다. 그는 서투른 유대말에 에굽과 희랍말을 섞어가면서 유다와 의사소통을 했다. 유다가 오히려 당황한 듯 더듬거렸고 이방인은 어눌한 말투였지만 태연했다. 옆에
노동의 새벽 새벽이었습니다. 용문까지 가려면 먼길이어서 이른 시각에 깨어 길을 나서야 합니다. 첫 전철을 탔을까요?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일곱 시 가까이 되었더군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문청소년수련장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강의를 해야 합니다. 새벽, 하고 부르면 벌써 푸른 잉크가 백지에 번져오는 걸 느낍니다. 밤새 어둠 속에 웅크리던 삶의 생생함이 기지개를 펴
지금쯤 작은 흙집의 나자렛 식구들은 늦은 잠에서 깨어나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식구들은 먼저 현관 입구를 가린 거적데기를 말아 올려 처마에 묶어놓고 모두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서 겨울비가 내리는 칙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장 배고픈 계절이다. 이 배고픈 시기는 우기가 시작되는 이른비에 파종한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5월까지 계속된다. 어머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의 통공생활로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신다. 통공은 공유와 친교이다. 공유는 모든 것을 서로 공동으로 소유하며 나누는 것이고, 친교는 모두가 서로 친하게 사귀며 교제하는 것이다. 천지창조 때부터 세상종말 때까지 구원받게 될 모든 사람들이, 하늘과 땅의 모든 은총과 축복을 서로 나누며 지내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는 구원받
미사 일기 1- 이대근 오늘은 미사경본의 글자 하나 하나가 망초대꽃처럼 눈을 뜨고 빠안히 나를 쳐다봅니다 경본 속에 인쇄된 예수의 말씀이 알을 깨고 책갈피 속에서 참새떼가 되어 푸드득 푸드득 날아다닙니다 어디에고 숨을 곳이 없습니다 미사라는 빨래터에서 내가 깨끗이 빨아집니다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지 않게하소서,이대근,사람과사람,75쪽 시인은
우기철을 알리는 이른비가 끝나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갠 날이 며칠 지속되더니 본격적인 겨울 장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3일이 멀다하고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숲속에 머물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제 조금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제자들 몇은 이 한가한 시간을 틈타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며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