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에 식구 하나가 더 늘었다. 나는 좀 더 신중하자고 머뭇거렸는데 남편이 불같이 달려들어 일을 내고 만 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이 셋으로도 모자랐던 것일까. 그동안 아이 낳고 키운다고 나도 할 만큼 했는데 이제 와서 왜 또! 아니, 잠깐만. 지금 여러분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 또 아이가 생긴다면.... 이라는 생각만으로 현기증이 올라오니까 상상조차 그만두자. 그렇다고 어디서 양자를 들인 것도 아니다. 그럼 초가삼간 본체에서 마당을 보았을 때 11시 방향으로 뻗어
이미 눈도 내렸다. 마당은 눈의 여왕이라도 내려온 듯한 겨울 왕국이 되었고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부지런한 고양이들이 먼저 동그란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그 애들은 발바닥이 춥지도 않을까. 털부츠까지 신고도 호오호 춥기만 한 나는 작은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 한데까지 나가 보았다. 동네 떠돌이 개가 왔다가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간 흔적이 보였다. 아기 고양이가 산책을 나가기만 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중인 것도 같았다. 논을 가로질러 짐승이 달음박질을 친 발자국도 있었다. 노루가 산에서 내려온 것일까. 발자국들은 조심스러웠지만 제멋대
오며 가며 수많은 원성이 들리곤 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취지다. ‘그래서 오사카에는 대체 언제 가는데요? 왜 멈춰 있는 겁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이는 내 여행기를 읽는 전국에 몇 안 되는(대략 일곱 명 정도로 파악되는) 훌륭한 독자들이다. 나는 내 글을 읽어 주었다는 이유로 비굴해지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이미 당도했습니다. 어쨌거나 오사카 땅이 보였지 않습니까!’ 라며 눈에 힘을 주며 대들었다. 그랬다고 ‘아.... 그렇군요!’ 라고 부끄러워했다던가,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내 머릿속
편의점과 면세점을 제외하곤 로비 전등은 죄다 꺼진 상태였고 대신 무대 위 조명만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과 어둠, 그 둘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밝았고, 빛으로 인해 어둠은 깊었다. 구석에선 괴물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 사이로 무대조명이 화살처럼 날아다녔다. 웅성웅성. 쇼가 곧 시작되려 했다. 하지만 얌전히 앉은 채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은 스무남은 명쯤 될까. 멀찍이서 서성대는 사람, 앉은 자리에서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 내 볼일은 오로지 편의점
한 발짝, 두 발짝, 할머니가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차가운 맥주가 식어 버리면 안 되니까 맥주는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뽑지 않고 기다려야지. 어, 그런데 저 할머니가.... 아까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 할머니가 맞나? 아닌가?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목욕탕에서 우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였다. 목욕탕의 수증기로는 가려지지 않는,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직한 몸뚱어리 하나, 하나였을 뿐이다. 할머니는 고작 웅크린 내 등짝을 보셨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목욕탕 탈의실을 거쳐 왔다. 두툼한 뱃살이나 처진 엉덩이 같은
배에 오르자 어두운 피부색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동남아계의 젊은 승무원들이 노란색, 파란색 바탕에 야자수와 열대의 꽃들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서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 발음이었다. 나는 그들이 입고 있는 하와이풍 셔츠를 보며, 배로 하는 여행에는 나름 컨셉이라는 게 있고,
소풍 가방을 직접 꾸리는 코흘리개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어째 소풍 당일보다 그 전날이 더 신난다는 사실을.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주말보다 금요일이, 결혼보다 결혼 전 연애가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날’이 있기 때문에 ‘그 전날’도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대여섯 살밖에
햇볕에 잘 마른 하얀 린넨 셔츠가 바삭거린다. 발목까지 오는 짙은 남색 바지의 성긴 올 사이사이로는 바람이 드나든다. 숙녀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셔츠는 자연스레 구겨졌고 바지는 너풀 대며 정강이를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이내 차르르르 단정한 매무새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숙녀는 머리에 지푸라기로 만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데 모자 둘레를 따라 짙은 회
‘그냥 당신을 안아 줄게요’ 하는 ‘프리허그(Free Hug)’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어 드리지요.’ 하는 ‘프리고막 (Free Listen)’이라는 것도 있다면 좋겠다. 한데 말이라는 게 길어지게 마련이라 한 사람의 고막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는 법이 없도록 프리고막센터가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어머니, 욜라가요.... 음, 욜라가....”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기 전 뜸을 들이고 계신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일까. 안 그래도 요새 욜라가 유치원을 너무 잠자코 다녀서 걱정이었는데 드디어 사고를 친 걸까? 어찌 됐건 사건은 이미 벌어진 것 같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수 이승철의 ‘아마추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 음악방송에 세 번이나 신청곡 문자를 보냈지만 뽑힌 적은 없다. 다만 어떤 청취자의 요청에 의해, 혹은 디제이의 선곡으로 운 좋게 노래를 듣게 되는 날은 있었다. 그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자코 노래에 귀를 갖다 댄다. 멜로디는 따라 부르기 쉽고 메시지는 더없이 다정하다. 마치
나는 복싱하는 여자다.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남편이랑 길 가다 구경이나 해 볼까 하며 복싱 체육관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복싱 체육관의 관장님은 혈기 넘치는 근육질의 코치일거라는 예상과 달리 무인도에 떨어진 지 2년차에 접어드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삐죽삐죽한 긴 단발의 전형적 복서 헤어스타일에 키는 크지만 앙상한 체
우리 1학년 3반 회장엄마는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희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또한 행사 측근들만 알고 있는 기밀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각종 문화공연, 강좌, 숨은 벚꽃 명승지, 홍보가 덜 된 벼룩시장, 경쟁률이 낮은 어린이 사생대회, 선착순 종이접기 교실에 대한 정보도 회장 엄마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다. 이대로라면 비록 논두렁길 옆 초가삼
메리는 학교를 마친 뒤 집에 바로 가는 법이 없다. 꼭 학교 운동장 놀이터에서 놀다 간다. 나는 운동장과 화단의 경계가 되는 나지막한 벽돌 울타리에 앉아서 메리를 기다린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메리 엉덩이를 받쳐 주거나 그네 줄을 꽈배기처럼 꼬아 주기 위해 불려 갈 때도 있지만 주로 벽돌 위에 앉아서 멍을 때린다. 따사로운 봄볕에 실눈을 뜨고 아이들 노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불시에 내 코가 습격당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돌만큼 단단한 어떤 것이-그것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는데-내 얼굴을 들이박았다. 범인은 욜라와 로, 둘 중 하나다. 메리는 그 시각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성립하지만 글쎄.... 어쩌면 그 셋은 공범일지도 모른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녀석이 갑자기 온 힘을 다해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잘도 망했다. 자그마치 몇 년 만의 파마가 말이다. 잦은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 덕분에 머리카락에 화학약품을 멀리해 온 숱한 세월이 무상하다. 그 세월이 십 년이 채 되지 않았건만 강산은 많이 변했다. 몇 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강줄기의 흐름과 방향이 억지로 바뀌고 재 너머 산등성이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원자력발전소가 맹렬히 돌아가는
태양의 열기가 유리 벽을 몰래 통과해 공기의 질을 나른하게 바꾸어 놓는 한낮의 시간이다. 늦겨울이 내뿜는 입김은 아무리 차갑다 해도 유리창을 뚫지는 못한다. 달리는 차 안. 로는 낮잠을 자고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한 단계 올렸다.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메리와 욜라를 마중 가는 길. 아이들은 오후 두 시에 유치원을 마치고 도시 방향으로 가는 유치원 차를 탄다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혀 놓고 잠을 유도하는 시간. 꿈과 희망이 넘치는 마무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소원 한 가지씩 빌어 보자. 누구부터 할까~”했더니 메리가 먼저 말했다. “나는 세상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아닌 밤중에 웬 평화? 메리는 내 말을 잘 못 이해한 것 같다.“음.... 메리야, 평화도 좋지만....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남편이 올봄 텃밭 농사에 대한 의견을 냈다.던져만 놓으면 알아서 크는 상추랑 토마토 외에 두어 가지 작물만 더 농사를 짓자. 그래서 알찬 소출을 올려 보자고 했다. 이견이 있을 턱이 없었다. 몇 해간 우리 집에 불어 닥친 농사 열풍이 지나가고 욕심이라는 ‘거품’이 가라앉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겐 ‘겸손’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다시 처음부터
발레학원 시간이 다가오자 메리의 눈에 어김없이 눈물이 맺혔다. 이유는 발레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저학년 언니들 때문이란다. 발레 수업 전에 ‘얼음땡’이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노는데 아무래도 초등학생들이 유치원생들보다는 덩치도 크고 말발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놀이가 초등생들 의견대로 흘러가나 보다. 그런데 메리는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