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길이 막막하다, 깜깜하다’는 은유적인 말입니다. 이것이 공간적인 은유로 표현된다면 어떨까요.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 삶의 무엇을 다시 보게, 살게 할까요.폴란드 작가 미로슬라브 발카의 이 대규모 설치 작업은 2009-10년 영국 테이트 모던의 입구 터빈홀에 장기간 전시되었습니다. 입구가 열린 컨테이너나 기차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높이 13미터, 가로 10미터, 세로 10미터 폭의 거대한 강철 상자는 경사로를 통해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면서 빛 한 줄기 없는 짙은 어둠
오후 4시, 복도를 지나다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계신 수녀님의 모습에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1958년 용산 원효로에 있는 작은 수녀원에 입회해서 이제 90세를 바라보고 계신 수녀님은 성체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 기도방에서 나오시는 수녀님과의 대화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수녀님, 기도방에서 어떤 기도를 하셨어요?요즘은 주로 감사기도를 많이 하게 돼요. 지난날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 세상을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베풀어 주신 것에
“난 영적인 사람이다.”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도, 분석되고 있는 한 대통령 후보 부인의 기자와의 통화 녹취록에서 가장 눈에 띈 핵심 문장 중 하나입니다. 이와 함께 등장하는 어구들이 '무당', '도사', '삶의 의미', '사람을 잘 본다' 등입니다. '영적'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서도 익숙한 이 낱말을 여기에서 만났을 때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우선 여기에서 사용한 '영적'이라는 의미는 함께 사용된 낱말들과 맥락을 볼 때 철저히 샤머니즘에 근거했다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
“수녀님, 언제까지 아플 거에요?”“이제 안 아파. 걱정해 줘서 고마워.”“그럼, 그 모자 좀 벗어 봐요.”오랜만에 만난 동네 꼬마와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마지막 말에 뜨끔 해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모자를 쓴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갑니다. 치료가 끝나고 머리카락도 꽤 자랐는데 모자를 계속 쓰고 다녔다는 것을 꼬마 덕분에 의식하게 되었습니다.인터넷으로 투병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보아왔던 것과 같이 저도 첫 항암 열흘 만에 탈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한 듯 생각했던 건강도, 여성으로서의 내 모습도, 사람들 앞에 나서
울 힘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울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덮어두었던 마음들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터져 나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장기간 지속될 치료를 위해 소임지에서 퇴사하고, 수녀님들과 함께 저녁 식사와 기도까지 마치고 방에 들어와 저도 모르게 하느님을 부르며 울었던 날이 기억납니다.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일했던 만큼, 저의 꿈까지 앗아가신 듯한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는 멍~하게 며칠을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방, 어두운 마음으로
“수녀님.... 암이에요.”“저요? 제 조직검사 결과 말씀하시는 거 맞죠?”평소 ‘건강 체질’이라며 자신하던 저는 외국에서 몇 개월 지낸 후에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의 몇 가지 증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조직검사를 하면서도 설마 암이리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혼자서 씩씩하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지요.중증 환자 등록을 하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큰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며 등록을 하고, 약을 사서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단 1초도 잠을 잘 수 없었던 깜깜한 밤을 지내고, 새벽 4시에 밖으로
“수녀님은 ‘선전’이라고 하세요? ‘광고’라고 하세요? 우리 아빠는 광고를 꼭 선전이라고 하시던데. 그럼 수녀님은 ‘극장’이라고 하세요? 아님 ‘영화관’이라고 하세요? 옛날에는 다 극장이라고 했다면서요? 수녀님도 계란 노른자 안 드세요? 우리 엄마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셨다고 노른자는 안 드세요.”올해 초 졸업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발랄한 대학생들 여러 명이 모여 마스크 너머로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안에 꼭꼭 숨겨놨던 젊은 마음이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젊은이들을 만나면 꼭 하는 공식 질문을 던져봅니다.“요즘
언젠가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입니다.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해 보려 하지만, 모든 과정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대비해야 하는 삶입니다.사실 이런 내용은 이 상황이 시작되고 장기화에 대한 전망이 대두될 때나 투덜거리듯 나눠 왔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것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지요. 뉴스를 보니 우리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심지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재해와 정치적인 일들 그리고 폭력사태들까지 말입니다.방역조치 4단계가 2주씩 연장되면서 저의 무기력도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
선생님 더운 여름 건강히 지내고 계시는지요?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벌써 2021년도 반을 넘어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네 맞아요. 오래간만에 드리는 연락의 시작이 매번 그러듯 또 훌쩍 지나간 시간 타령이네요.그때마다 핀잔을 들었음에도 오늘도 또 쓴 것을 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심지어 말입니다. 최근 가까이 있는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썼다 벗었다, 물건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겨우 읽은 일이 있었습니다.“제가 나이가 드나 봐요. 이게 왜 잘 안 보이지? 돋보기를 써야 하나 봐요!”
3학기째 이어진 ‘비대면’ 학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대면과 비대면 수업 병행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초, 중, 고등학교와 달리 대부분의 대학은 쉽게 대면 방식을 선택할 수 없었고, 대면으로 개강한 과목들도 확진자 발생과 함께 급히 비대면으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학교와 과목별 차이는 있지만 제가 담당한 과목들 역시 ‘비대면 과목’으로 개강하고 종강했습니다. 일년 반의 팬데믹 시기 동안 ‘비대면’ 수업 방식은 ‘대면’ 전환을 위한 비상 상황이나 대기 상태가 아닌 ‘새로운 정상’(뉴노멀)이 되었습니다. 팬데믹이 언젠가 끝나더라도 이제 비
오래된 유치원 옆에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산 목련 나무 여러 그루가 있었습니다. 담장을 사이에 둔 옆집 마당에 심긴 나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창밖을 가득 채우고 하루와 계절의 시간을 보여 주는 친구였습니다. 봄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담장을 넘어 놀이터까지 뻗어 나온 높은 나무 아래에 누워 가득한 꽃잎을 올려다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을 거의 못 나간 지 일년이 넘은 아이들에게 목련은 그 자체가 봄이었습니다. 그림으로는 목련이 주는 감탄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손으로, 몸 동작으로, 시로 표현해 보기도 했습니다.
미술 작품을 ‘보는’ 방식에 대한 연구 중에서 ‘glance – look - see’ 단계의 구분이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보다’라는 동일한 단어로 번역될 수밖에 없지만 의미로서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겉만 ‘흘끗 보고’ 지나가는 단계(glance) – 의식적으로 ‘멈춰서 보려는’ 단계(look) – 그 ‘의미를 알고자’ 안으로 들어가 보는 단계(see)로 구분해 보면 우리의 ‘보는’ 행위 대부분은 첫 번째 단계에 그치기 쉽습니다. 겉만 보는 정보 차원의 습득은 나의 내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의 보기가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예쁘게 인사하는 어린이군요?”우연히 들른 공원에서 처음 보는 어린이의 밝은 인사에 언제부터인가 딱딱해져 버린 저의 마음을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어색함도 잠시, 무표정이었을 제 모습에도 밝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준 어린이 덕에 비로소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마스크를 필수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 아니 그 훨씬 전부터였을까? 이유도 시기도 기억나지 않지만, 저에게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빈 건물이 되어 버린 공항을 지나, 텅 빈 비행기를 타고, 이제는 어색해 보이지 않는 방호복 입으신 보건소 직원분들께 검사를 받고, 길게 느껴졌던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지나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보고 싶은 사람들과 “언제 한번 보자, 같이 밥 먹자”라는 말이 이렇게 공허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요. 이제는 화상을 통해 만나는 것이 좀 더 편하고 익숙해진 저 자신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공연을 관람하며 즐거워하고 학생들이 뒤엉켜 체육활동을 하는 사진들이 불과 2년 전 사진이라니. 사진을 바라보다 울컥했던 것은 저뿐만이 아닐
저는 11개월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등 훈훈한 마무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무리 중 하나인 짐과의 전쟁도 빠질 수 없죠. ‘짐을 정리하고 버릴 것을 다 버렸으니 이제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되는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가방 싸기는 며칠째 진행 중입니다.가방에 꾸역꾸역 짐을 넣고 무게를 재고 다시 열어서 가방끼리 물건을 바꿔 담아 다시 무게를 재고. 마치 퍼즐 맞추듯 이 가방에서 저 가방으로 물건을 옮겨 가며 싸던 저는 다시
더운 여름을 지나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처럼, '이게 무슨 일이지?'를 반복하던 2020년도 조심스레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며,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2020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2020년과의 이별을 잘 준비하고 계시는가요?"난 정말 오래 살았지!"로 말씀을 시작하시는 수녀님께서, 어느 날 멋진 곳을 보여 주시겠다며 산책 신청을 하셨습니다. 가벼운 마음에 시작한 산책은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마지막에 가닿은 곳에는 엄청 멋진 의자가 있었습니다. 마치 미사 때 봤던 제대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늘 인기가
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제가 적어 내려가는 이야기를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내 주는 하얀 종이와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주는 까만 글씨는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제게 좋은 친구였습니다.글로써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선물하는 분들을 보며 꿈을 키운 적도 있었습니다.나이가 들면서, 언어의 무게감을 체감하게 됩니다. 말 한마디를 소리 내어서 하는 것도 점점 두려워지고, 한 글자 써 내려가는 것도 점점 느려집니다.유독 올 한 해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이 줄어드니 희망도
“2020년이라는 1년을 환불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뭔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겠죠. 마치, 큰 변화 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던 것처럼.”“우리가 그동안 지구에 한 짓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 아니겠어요?”2020년 올 한 해에 대해 지난 10개월간 들어왔던 말을 빼고 더 보탤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이 시간을 돌아보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2020년 한복판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했었다고 말하게 될까요? 수녀원 공동체 안에서만 지내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다른
“망각의 시대를 맞이하셨군요. 이제 다른 자리에 있는 나를 받아들이셔야 해요.예전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죠. 한번 망가진 장기는 돌아오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기준을 건강하던 시절로 두시면 불행의 늪에 빠지실 거에요.예전의 내 모습은 그곳에 두시고, 망각에 흘려보내시길....“ 몸의 이런저런 증상을 대며 예전 같지 않아 의기소침해지고 마음도 힘들다 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이 무심한 듯 건네신 말씀은 제 가슴 한쪽에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네.... 어쩌면 저는 변해 가는 저의 몸과 마음을 외면한 채, 반짝반짝 쌩쌩했던
지난 몇 개월, 여러 종류의 한국 음식을 시도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사진도 찍으시고, 재료에 관해 물어보시고, 맛있다고 칭찬도 해주십니다. 칭찬을 받다 보면 다른 요리에 도전할 용기도 생기고, 요리가 재밌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자주 있는 공동 모임 시간에 어설픈 외국어로 더듬거리며 나누는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시고 여러 반응을 보이시고 도와주시는 수녀님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외국 사람들은 환경과 문화, 교육 등 여러 부분에서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아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