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6호(2022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들어가며: 신냉전의 파고와 한반도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열전의 땅 우크라이나에선 매일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고, 신냉전의 문턱에 있었던 세계에는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군비증강 열기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앞으로 세계는 어디로 가게 될까? 불안과 우려가 증폭되는 지구촌의 미래를 달리 설계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는 존재
이 글은 35호(2022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요리는 가정마다 성별 분담이 뚜렷한 활동 중 하나다. 주로 여자가 하고, 남자는 안 한다. 아니, 남자는 요리를 ‘못 한다’고들 한다. 과연 그런가?텔레비전을 켜면 남자 요리사들이 ‘셰프’ 칭호를 받으며 인기몰이를 한다. 날마다 집에서 삼시 세끼를 걱정하는 주부들에게 요리하는 남자는 그야말로 로망이다. 그러나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남자 요리사들은 정작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집에 가면 절대 요리 안 해요. 아내가 해 준 밥 먹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와 깔깔거리고 웃는
이 글은 35호(2022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어떤 책이든 중요한 차원에서는 맥락의 산물이다. 어떤 책이든 아무리 혁신적이라고 하더라도 맥락 속에 있으며, 맥락에 대한 반응이다.”(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말문을 열며종이책 시대, 인쇄물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전에는 종이책에서만 얻을 수 있던 많은 정보를 이제는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손쉽게 무료로 구할 수 있다. 약간의 외국어 실력을 쌓으면 알찬 정보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종이책 읽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종이책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으며,
이 글은 35호(2022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우리는 참 슬프고도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실업이 일상화되고, 부채가 증가하고, 소득은 턱없이 부족하고, 소비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며, 취업, 병역, 결혼 등 진로에 대한 부담으로 정신적 피로감 또한 가중되는 ‘5중고’를 겪는 청년들이 그것도 모자라 성별로 나뉘어 서로를 물어뜯게 하는 세상이다.1) 대선 후보로 나선 ‘남자 어른’ 대표 주자들은 노동, 기후 위기, 사회적 안전망 등을 주제로 건설적인 토론을 벌이고 대안을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성별 갈라치기를 하며 갈등
이 글은 34호(2021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중년기 이상 한국 남자의 심리적 성장은 문화의 경직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먼저 권위주의 문화에서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반면에 그들은 자신의 역할과 사회적 신분(Social Status)을 결정해 주는 사회적 지위(Social Position)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자기를 형성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사회적 지위에 주어지는 역할과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경
이 글은 34호(2021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만삭의 새드(Sad)를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피부에 문제가 있던 새드는 젖꼭지가 없어 낳는 새끼마다 젖을 먹이지 못해 항상 죽는다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차크마개코원숭이 연구팀에 합류하던 첫날 조교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사는 개코원숭이 중에서 차크마개코는 짙은 회갈색 털이 특징인데 이 때문에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엉덩이 살갗의 진분홍 빛깔은 더욱더 눈에 띄었고, 한껏 불룩해진 배와 함께, 새드가 다
이 글은 34호(2021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작년 겨울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갔다가 그곳을 방문한 변희수 하사를 처음 만났다. 그는 육군 기갑부대 전차 조종수였고, 영세명이 가브리엘라인 가톨릭 신앙인이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 청년이다. 내가 신부라는 것을 알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요새 성당을 못 나가고 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 복무 중에 성별 위화감(젠더 디스포리아)으로 큰 고통을 겪자,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육군은
이 글은 33호(2021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코로나 감염병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일 년 하고도 절반이 넘어섰다. 이제 백신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는데, 접종은 국가별로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며 백신이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되기보다 인류를 위해 공공재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시기 코로나19의 변종인 델타 바이러스가 등장했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자 수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더라도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는 덜 치명적이고 사망률도 낮다고 한다.
이 글은 33호(2021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예술의 기원과 희생제의인류에게 예술의 기원을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후기 구석기 시대에 사냥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동굴벽화의 창작 동기에 대해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1897-1962)는 그런 주술적 의도가 아닌 “동물의 살해가 생명의 종교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순간, 고뇌의 인간이 경이로운 극복을 통해 생명을 완수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목적에서 그린 그림”이라 말한다.1) 이어 모호하게 다루었던 동굴벽화의 ‘우
이 글은 33호(2021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교리교사는 누구인가?지난 5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서 '오래된 직무'를 통해 평신도 교리교사의 직무를 제정했다. 이 문서는 자의 교서로 제정되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안건을 제시해 발간되었다는 뜻이다.이에 앞서 지난해 6월에는 교황청에서 새로운 '교리교육 지침'이 출판되었다. 이 새로운 지침서는 교리교사의 직무 및 사명 등 교리교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개론적이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맥락이나 시기를 보아 이번 교황의 교서는 이 지침서의 연장
이 글은 32호(2021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내 교회의 근심과 상처와 약함은 또한 나의 약함이기도 하다.― 토마시 할리크말문을 열며교회의 과거를 성찰하고 교회의 현재를 바라보며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고 고민한다는 것은 교회조직이나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이나 교계제도의 미래를 염려한다는 게 아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사제 등 성직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제도나 기관이나 사업체의 몰락을 걱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수도원이나 수도회의 존폐를 염려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이나 기관이나 제도는 상황에 따라 바뀔
이 글은 32호(2021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성소수자와 교회2021년 사순절은 한국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다. 2월 24일에는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인 김기홍 씨가 사망했다. 3월 3일에는 성전환을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육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했던 변희수 하사의 부고가 전해졌다.이들의 죽음은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그들의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혐오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일
이 글은 32호(2021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살아서는 너희가 나와미움으로 맺혔건만,이제는 오히려 너희의풀
이 글은 31호(2021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1917년 독일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루돌프 오토가 "성스러움의 의미"라는 책을 발표하자, 당대 대다수 지식인이 이 책을 읽었을 정도로 큰 반향이 일었고 책은 몇십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나는 이 책을 대학생이 되어 거의 첫 전공서적으로 접했고, 종교학이라는 학문세계가 얼마나 막막하고 높은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말인데도 아무리 집중해서 정독해도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당시 나의 독해력과 상식 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신 관념에 있어
이 글은 31호(2021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오랜만에 한국에 오니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다. 일제 식민지 때부터 단순한 선율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을까. 위로란 크고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릴 적 들은 노래 한 소절, 스쳐가는 선율 한 자락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기도 한다. 트로트와 달리 감추어진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음악이 있다. 클래식과 같은 음악을 감상하려면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하다. 한 문화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복지가
이 글은 31호(2021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나는 ‘여성성이 강한(?) 시대’에 현재와 과거의 남자들의 모습을 변호하고 싶지 않다. “여성성이 강한 시대”라는 표현에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여성성이 강하다’는 표현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를 벗어나 점점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내가 중년의 끝자락에서 경험하건대,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활동적이고 독립적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점점 소극적이고 의존적
이 글은 30호(2020년 11-12월)에 실린 글입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올 한 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공공 모임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시행되었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종교적 신념과 질병 통제를 위한 과학적 원칙이 갑작스러운 대치 상황에 놓였다.공공 예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교회는 이른바 ‘온라인 미사’를 봉헌하거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화상교리’를 진행하는 등 사목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 창조
이 글은 2020년 11-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19는 대구 신천지발 확산과 8.15 광복절 집회로 인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공동체 미사 중지’라는 큰 시련을 겪는 교회는 지금도 코로나19의 파도 속에서 신앙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많은 지식인은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이야기하고, ‘뉴노멀’을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도 ‘코로나’라는 ‘새로운 사태’에 적응하면서, 코로나 이후, 신앙의
이 글은 2020년 11-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팬인가, 제자인가”“팬인가, 제자인가.” 2012년 즈음 복음주의권 개신교회에서 한창 유행했던 책의 제목(원제 Not a Fan)이다.1) 팬은 “와서 환호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사람”일 뿐이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와서 죽고 섬기는 사람”인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논지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김진호)2)의 범례 중 하나인 온누리교회의 부속 출판사인 두란노출판사에서 펴냈으며, 온누리교회 같은 초대형교회에서 인기를 끌
낙태 문제를 대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도2016년 봄, 최초의 ‘바티칸 공식 인증’ 전기 영화라며 홍보 포스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명까지 담긴 영화 '프란치스코'(Francisco-El Padre Jorge, 2015)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호르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 신부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로, 다양한 일화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 주는 영화였다. 가난한 이들을 만나러 거리로 스스럼없이 나서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던 베르골리오 신부의 일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