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지난주와 관련 있는 질문을 다뤄야겠습니다. 번역과 단어 사용에 관한 것이라 그러합니다.집안이 가톨릭 배경인 신자 분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시겠지만, 한국 교회는 종종 고풍스러워 보이는 용어들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천주교 신앙에 입문하는 분들은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을 접하며 새로이 말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질문해 오신 '애덕' 같은 단어들이죠. 고백컨대, 저도 애덕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교리 시간이 아니라 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을 때였습니다. 어릴 때 후배들이 우러러 봤던 성당 누나의 이름이 애덕이
신학 서적을 번역하던 후배가 물어왔습니다. 향주덕이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지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향주덕(向主德) 혹은 향주삼덕(向主三德)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삼덕"이란 말이 들어가니 뭔가 세 개임을 직감하실 수 있습니다. 성당에서 교리를 가르치거나 기본적으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면서 신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은 향주덕이 무엇인지 알고 계실 겁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에 쓴 내용과 관련 있다고 힌트를 드리면 도움이 될까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믿음,
작은 지역 본당에 파견된 형님 신부님과 통화하다가 "특수" 병자성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수 병자성사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증이 만연한 가운데 할 수 있는 사목활동에 관한 사목자의 고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전 세계를 정체시켜 버린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대화 소재가 될 리 없었죠.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는 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신부님이 안타까워하는 상황을 간단 설명하자면 이러했습니다. 병자성사 대상자인 여성 신자분은 현재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얼마 전부터 살짝 치매 증세를
어떤 예비신자 분이 세례성사 받을 때 꼭 세례명을 정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물어 오셨습니다. 더 정확히는 세례받은 뒤 살아 보다가 나중에 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현재 주변에 성인들에 관한 정보를 잘 알려줄 신자 분이 없어서 선택이 쉽지 않으신가 봅니다."교회법전"에 세례명을 꼭 가지라는 항목은 없으나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에서 세례명을 정하지 않고 세례받는 것을 허락할 본당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전파될 때부터, 좀 더 멀리는 아시아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해질 때부터 이어 온 전통입니
미사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뉩니다. 전반부를 구성하는 말씀의 전례에서 신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미사 전례에서 성경 봉독은 기본적으로 두 개나 세 개의 독서로 이뤄집니다. 평일미사에서는 독서 하나와 복음, 그렇게 둘. 주일미사에서는 1독서와 2독서 그리고 복음. 그래서 세 개의 성경 부분을 읽습니다. 그래서 오늘 속풀이 질문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말씀의 전례에 사용하는 구절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는가? 둘째, 어떤 날의 독서는 이것을 읽거나 저것을 읽을
한국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46)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1월 29일(대림 제1주일)부터 2021년 11월 27일(대림 제1주일 전날)까지 한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고 기념합니다. 교회에서는 희년(禧年, Jubilee)이란 말도 쓰고 성년(聖年, Holy Year)이란 말도 종종 사용합니다. 두 단어는 혼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유사어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년은 본래 성년이라는 용어의 배경을 만들어 준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희년은 히브리인들의 큰 축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식년이 여섯 번 지나고
무슨 질문인가 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미사 전례에서 "감사기도" 때 나오는 성찬례 재현 부분의 단어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2017년 이전부터 이미 열심히 미사에 참례해 오신 분들은 이 두 단어 "많은"과 "모든"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2017년에 "로마 미사 경본"(이하 "경본")이 개정되어 나왔을 때 그 이전에 사용한 미사통상문 내용 중 이 부분도 수정된 것입니다.과거에는 감사기도 때 사제가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 줄 내 몸이다...." 하고 빵을 들어 올리고 이어서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
미사 전례는 사제가 입당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입당을 할 때, 제의실 쪽에서 나와서 제대를 향해 인사를 하고 제단에 오를 수도 있고, 성당 문 앞에서 출발하여 제단 앞에서 멈춰서 제대에 인사하고 오를 수도 있습니다. 본당을 책임지는 사제의 재량에 따라 입당을 어디 지점에서 시작할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제가 제단에 오를 때 제대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지 왼편으로 올라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례 수업 때 어느 쪽으로 올라가라는 지침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로마 미사 경본 총
요즘은 상점이나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내놓지 않아도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터에 나가는 것만큼 신나는 분위기는 느낄 수는 없어도 기본적인 거래는 온라인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스마트 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여러 가지 활용 앱 중에 중고물품들을 매매할 수 있는 가상 시장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 시장에서 성물들도 판매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찾아 들어가 봤습니다. 말이 중고지 사실상 사용도 하지 않은 십자고상, 성모자상, 미사보, 성수대 등등 다양한
세례명이 스테파노이신 신자 분께서 질문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은 그 문헌적 근거로서 요한1서 4장 16절을 삼을 수 있는데,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라는 표현과 관련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를 궁금해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 혹은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이란 표현은 기도문에 종종 등장하는 표현들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하느님은 사랑, 하느님은 진리, 하느님은 희망, 하느님은 평화.... 등등의 설명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이해가 실로 다채롭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사도신경에 나오는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나의 육신을 부활 때가 되면 진짜 되찾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분들이 적잖은 듯합니다. 저는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좋건 싫건 어릴 때부터 교회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랬는지, 이 "육신의 부활"에 대해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신앙고백문에 드러나 있는 여러 조목을 그냥 당연시하지 않는 분들은 우리의 신앙에 대해 별 궁금함 없이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자극을 줍니다. 오늘처럼 "육신의 부활"에
가톨릭 세례를 받는 모든 이에게는 세 가지 직분이 부여됩니다. 이 사실을 예비자 교리 때 다 배우면서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을 적잖이 만나게 됩니다. 반면에 이 교리를 알고 계시지만 이해가 쉽지 않다고 물어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 직분에 대한 내용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해를 도와드린다는 뜻에서 속풀이 하기로 합니다.세례를 통해 우리가 부여받는 세 가지 기본 직분은, 사제직, 예언자직(예언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왕직입니다. 사제직은, 사제의 역할이 그러하듯 지상의 일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수도회 형님께서 연옥 교리를 보다가 연옥 영혼들의 기도에 관해 제 생각을 물어 오셨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배워 온 연옥에 관한 교리 중, 연옥에 있는 영혼은 스스로 기도하여 정화의 시기를 단축할 수 없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시기적으로 위령성월에 접어든 터라 형님 신부님과 신학적 이야기를 나누듯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씀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연옥의 영혼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선행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정화시킬 수 없는 걸까요? 저는 연옥 영혼도 자기 스
성소 혹은 소명에 대해서는 몇 해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성소가 뭐죠?”를 참고하세요.)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이란 뜻으로, 소명은 생명으로 초대됨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생명, 곧 구원으로 초대받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맥락에서 소명을 성소와 유의어로 봅니다.교회 안에서는 성소라 하면 보통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를 우선적으로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 성소가 있음에도 결혼 성소가 상대적으로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것은 사제나 수도자 성소가 그만큼
지난 주간 동안 "주일미사 꼭 참례를 해야 하는지?"와 "주일미사에 빠지면 꼭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다르지만 "주일 미사"라는 범주에서 함께 다룰 수 있는 주제로 묶어 답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주일미사에 빠졌는데 영성체를 하시려면 고해성사를 통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십계명에 나와 있는 "주일을 거룩히 보내라"라는 항목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주일미사를 어떤 연유로 빠지게 되었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을 빼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가 말 그대로 ‘지구촌’이라고 불릴 수 있게된 배경에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사실입니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를 시작으로 가톨릭교회는 50년이 넘도록 현대세계와 대화하고자 노력해 오고 있지만, 교회는 변화에 더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세계의 변화는 무척 빠릅니다. 그래서 인터넷의 수호성인을 배출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지난 10월 10일에 매우
코로나19 감염증의 기세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내년 즉, 2021년 후반까지 가야 치료제와 같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상황으로 인해 서글픈 사람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결혼을 앞둔 이들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아가며 인생의 한 장면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모이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상식이 통하는 이들은 알아서 모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청년들 중에 안타깝지만 결혼을 좀 더 미루는 이들이
같은 수도회는 아니지만 수도자의 삶을 함께 걷는 형제로서 종종 연락하며 지내는 토마스 수사님께서 물어오셨습니다. 영어로는 "act of faith 액트 오브 페이쓰", 불어로는 "acte de foi 악뜨 드 후아"라고 하는 단어를 들어 본 적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단어인지를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대로 번역하여 그냥 '신앙 행위'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것 자체로는 이 단어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제게도 모호했습니다.기억을 더듬어 보니, 프랑스에서 신학생으로 있을 때 심심치 않게 들었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과거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 가톨릭 관련 등장인물들이, 그러니까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나올 때 수단이나 수도복을 입고 그 위에 커다란 묵주를 목에 걸고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연출가가 정말 공부 안 하는 사람이구나....' 하며 혀를 차곤 했었죠. 왜냐면 묵주는 목걸이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묵주는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묵주기도를 할 때 사용하는 기도 도구로서 성물로 취급됩니다. 지극히 기초적인 묵주의 기능은 성모송을
함께 일하고 있는 건실한 청년 신 선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신 선생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가톨릭 신자라서 성호를 긋고 있는데 혼자 뻘쭘할까 싶어서 성당 나가 볼 생각이 없는지를 말입니다. 신 선생의 답은 “저는 그냥 저를 믿습니다” 였습니다. “네, 관심있어요” 정도의 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가톨릭 수도회가 설립하여 가톨릭의 정신으로 운영하는 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부서장으로 있는 근무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최소한 점심도 같이 먹고 경우에 따라 몸 쓰는 일도 같이 하는 동료의 종교에 조금은 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