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3시경, 내 여동생이 네덜란드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내 제수가 딸을 낳았는데 다운증을 갖고 태어났다는 소식이었다. 한 주 전에 나는 피트 러기르의 이웃사람 집에서 본 어느 다운증 아이에 대하여 글을 썼다. 또 어제는 월 스트리트 져널지에서 그 아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오늘 나는 똑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조카를 보고 있다. 나는 네덜란드
장애인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준 것보다 우리가 받은 것이 더 많다고 기꺼이 말 할 것이다. 때로는 장애인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참다운 그들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까지 고백할 것이다. 쟝 바니에는 이런 깨달음을 아름답게 상징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수년전, 라르슈 공동체 구성원들이 성지로 순례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들의 고통을 잘 요약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상실”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는다! 때때로 삶은 그냥 상실들의 긴 연속물 처럼 보일 때도 있다. 태어날 때 우리는 안전한 움을 잃고, 학교에 가면 가족생활의 안전함을 잃고, 첫 번째 직장을 얻게 되면 청년의 자유를 잃어버린다. 결혼하거나 서품을 받으면 많은
당신의 고통은 깊고 어떤 특정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당신은 추상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괴로워한다. 거부, 버림받음 그리고 쓸모 없음의 감정들이 가장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 뿌리박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고통은 고유하다. 특히 예수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장 선명하게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세 개의 다른 복음서들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그 세 개의 복음서들에서 주제들을 택하여 명상하고, 그 내용을 그 시대 사람들의 표현 방식인 이야기 양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을 보고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고 고백하였다는 이야기와 안드레아와
애도를 연민에 이르는 길로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애도는 나에게 세상의 죄악이나의 죄악까지 포함하여내 마음을 관통하도록 허용하며 그 죄악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라고 요청한다. 많은 눈물 없이 연민은 있을 수가 없다. 나의 눈에서 샘물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나의 마음에서
듣고 싶은 뉴스- 박춘식 이천십일년십이월육일화요일저녁/벤츠여자검사조사받는데그여자임신중이라고/강남룸싸롱접대의혹받고있다는최모의원/횡령비자금의혹경제인검찰출두/전쟁나면즉시미국으로도망갈대통령이라는느낌든다는노교수의말씀/이혼요구한아내커피숍에차몰고돌진/무슨무슨당을망가뜨린사람으로이이이박홍오명거론한국회의원등등등///어둑침침한소식꾸엑꾸엑구역질뉴스가진행되다가, 느닷없는 아나운서
▲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당신은 수많은 방식으로 상처를 입어왔다.치유받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더 열어 놓을수록,당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더 깨닫게 될 것이다.당신은 낙심하고 싶어질 것이다.당신이 벗겨놓은 모든 상처 아래에서 또 다른 상처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참다운 치유를 추구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수많은 눈물을 아직도 더 흘려
“구원”은 구원받는 것에 관한 것이다.그러나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전통적인 대답그리고 좋은 대답은 죄와 죽음으로부터라는 대답이다.리는 사냥꾼의 올무에 갇힌 것처럼 죄와 죽음의 함정에 빠져 있다.다양한 중독현상들 알콜, 약물, 음식, 도박, 섹스를 생각할 때에우리는 덫에 걸려 있다는
매일, 냉소와 기쁨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어딜 가든지 어둠을 찾는다. 그들은 항상 다가오는 위험들, 불순한 동기들 그리고 숨겨진 계획들을 지적한다.그들은 믿음을 우유부단하다고, 보살핌을 낭만적이라고, 용서를 감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열정을 비웃고 영적인 열기를 우스꽝스럽다고 하며 성령에 의한 행동을 경멸한다.
성탄축일에 우리는 한 어린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념하였습니다. 그 생명은 자라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 축일에 우리는 태어난 그 어린 생명을 영접하기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합니다.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복음서의 이야기는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
예수에게 있어, 기쁨은 분명히 슬픔보다 삶의 더 깊고 더 진실한 상태이다. 그분은 즐거움을 새로운 삶의 표지로 약속한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우리는 사람들이 희망에 대해 별로 알고 있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바램들에 대해서 안다. 성탄절기 내내 바램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걸 원하고 혹은 이걸 바란다. 이런 바램은 매우 구체적이다. 나는 장난감이나 자동차 혹은 새 직장을 원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특정한 요구들이다. 그러나 희망은 정확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이
새해기도 -박춘식 분(分) 분으로 쪼개지는 새벽 아침 가방이 초침(秒針)에 끌려가더라도 비눗방울 보득보득 손목까지 씻는 짬을 즐기며 일과 일 틈새 하늘 잠깐 바라보는 새해가 되기를 177밀리미터 정확도(正確度)를 가끔은 한 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강력 접착제로도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이 설익은 시(詩)가 되어 검붉은 상처를 덮어 주는 한 해가 되기를
인간의 영광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게, 더 빠르게, 더 아름답게, 더 강력하게 혹은 더 성공적으로 여겨질 때 얻는 영광이다. 사람들이 부여하는 영광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더 선호적으로 여겨지며 얻게 되는 것이다. 삶의 점수판에 우리의 점수가 더 좋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영광을 받는다. 이런 영광은 위로 올라가는 기동력과 함께 온다. 성공의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말하자마자 나의 존재는 더 이상 중심에 놓일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의 정수는 나 자신의 전 존재가 그분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그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유출하고, 투사하고, 추론하며 직관할 중심으로 삼을 수 없게 된다.
새해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운 새해일 것을 빕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충만할 것을 빕니다. 2012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그분의 은혜로우심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 주위에 실천되어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빕니다. 오늘은 2012년을 시작하는 초하루이면서, ‘천주의 성모
지난번에는 팔레스티나와 헬레니즘 문화권 안에서 복음이 어떻게 구어전승으로 전달되어 내려왔는지를 보았다. 이번에는 이 구어전승이 어떤 과정으로 복음서로 기록 정착되는 지를 알아본다. 기록으로 남기까지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1. 구전 자료 조각의 채집과 편집 구어전승 기간 중에도 때때로 기록의 필요성은 느껴졌었다. 특히 같은 주제에 대하여 여러 다른 표현
내가 기억하는 매우 감동적인 기념제는 빌의 인생책이었다. 인생책은 사진들, 이야기들, 편지들을 전기형식으로 함께 모은 책이었다. 빌이 새벽공동체에 왔을 때는 16세였고, 그는 약간의 기억들을 가져왔다. 그는 매우 힘든 유년기를 보냈고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일관된 경험들이 거의 없었다. 그의 과거는 너무나 괴롭고 부서졌으며, 너무 외로운 것이어서 그는 그것을
큰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공격하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그 말들은 독선적이고 자기연민, 질투의 말들이다더 깊은 불평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받아야 할 것을 결코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끝없이 미묘하고 한편으로 또 그다지 미묘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불평이다. 이런 불평은 인간의 회한을 밑바닥까지 닿게 만든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