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받는 존재라고 부르는 소리를 함께 내면에서 듣는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사랑을 위해 모험을 무릅쓰도록 또한 다른 이들을 위하여 그 사랑받음 속에 존재하도록 서로를 격려한다. 헨리는 성찬례의 식탁에 함께 모이는 신앙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성인들의 친교와 일치라
믿음은 관심이다 이제까지 믿음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그리고 지성, 사랑, 의지, 용기, 기대, 희망 등 믿음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이들을 종합하는 개념을 하나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 ‘관심’이라는 말이다.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아침 6시45분 경 나는 작은 가르멜 수녀원에 가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하고 묵상한다. “매일아침”이라고 말하지만 예외도 있다. 피곤함, 바쁨, 그리고 선입견들이 나에게 가지 않아야 한다는 논쟁들을 자주 일으킨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 하느님과 지내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일관성을 잃고 나날을 마치도 우연적인 사건과 일들의 연속으
오늘 복음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제자들에게 청하고, 제자들은 그 말을 예수님에게 전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그들을 실제로 만나셨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전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하느님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분은 인간의 정신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 진리는 우리 인간의 능력을 탈피한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가지거나” “붙잡으려는” 우리 인간 능력의 한계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설명할 수 도 없으며 역사 속에서 그분의 현존을 말 할 수
믿음, 있거나 없거나 믿음에 크고 작음, 강함과 약함이 있을까? 믿음이 2%의 의심이 극복되고 의심하던 내용이 사라진 상태라면, 믿음은 크기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이 본래 주어진 바탕 위에서 너와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라면, 믿음은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된다.
하느님의 현존의 신비는 오직 그분의 부재를 깊히 깨우친 후에만 느껴질 수 있다. 부재한 하느님에 대한 갈망의 중심에서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건드리는 하느님의 첫째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이미 가득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요셉 성인님- 박춘식 밤의 어둠을 접어가며 고민하다 조용히 물러서려는데 천사가 나타나 벽력같은 말씀을 주신다 고개 숙이는 묵묵한 그 남자 하늘의 뜻을 겸허하게 받들어 가며 어느 별빛 찬란한 밤, 하늘 아기랑 환하게 웃고 어느 별빛 가득한 밤, 하늘 아기 안고 피난길 걷는다 회당 의자 사닥다리 가구 문 나무의 장인 나무를 엄청 사랑하는 나무 성인 나무 기도하
세상은 예수의 부활을 알지 못했다; 오직 몇 사람만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택했던 사람들이며 그가 했던 것처럼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기 위하여 파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부활의 숨겨짐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예수의 부활이 내 신앙의 시금석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활은 사람들과 논쟁하
나뭇잎 요람마다 아기 예수 같은 희망이 움트고 풀꽃들 다투어 벙글고 있을까. 만물이 새라새롭게 일어나는 봄날, 돌고래 먼발치서 뛰어노는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엔 연일 사이렌소리와 발파, 화약 냄새로 역하더라. 나는 며칠 동안 기도회와 미사를 쫓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까지 조아렸다. 언제부턴가 자색 스톨을 걸치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부끄러워 입에는
우리의 삶들은 두 어둠사이에서 떨리고 있다. 우리는 주저하면서 출생의 어둠 속에서 나와 서서히 죽음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우리는 먼지에서 먼지로, 알 수 없는 것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 신비에서 신비로 움직여간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보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개의 결정적인 종말들 사이에 뻗쳐있는 가느다란 줄 위에서 생명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
지난해 돌아가신 박완서 님의 소설 중에 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 차문경은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와 이혼녀가 된다. 남편은 유학 중에 한 여자를 만나 둘 사이에 아이까지 갖고 있었다. 문경은 남편과 이혼 후 우연히 대학동창 김혁주를 만난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고 사내 아이를 낳았지만, 혁주의 변심으로 문경은 또 다시 버림
‘믿어짐’이 ‘믿음’이 되려면 - 2%를 채우려는 의지와 결단 물론 믿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해서 믿음이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믿음이 어느 순간 주어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주어지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의지이다. 의지는 어떤 일을 이루려는 마음이다. 의지에는 언제나 목표가 있게 마련이다. 그
하느님은 “그 너머”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 너머에, 우리의 느낌과 생각 너머에, 우리의 기대와 욕망 너머에,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건과 경험 너머에 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여기에서 우리는 기도의 핵심에 닿게 되는데, 왜냐하면 기도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부재사이의 구분은 더 이상
사랑하는 주님, 제 눈이 계속 당신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은 거룩한 사랑의 육화이시고, 하느님의 무한한 연민의 표현이며 하느님의 거룩함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모습입니다. 당신은 아름답고 선하시며 관대하시고 용서하시며 자비로우십니다.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 밖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 저는 자꾸 다른 곳을 보고
지구는 겸손이다- 박춘식 그렇구나 겸손의 스승인 흙을 껴안고 나무들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피부로 풀꽃들을 가꾸고 있으니까 그렇구나 바닷물 강물 개울물이 지구의 가슴이니까 가장 부드러운 겸손 가슴이니까 그리고 하얀 구름은 젖 가리개이니까 그렇구나 바람을 팔다리로 삼아 온갖 물상을 맞붙잡고 다니니까 그렇구나 지구는 몸이 동그랗고 낮밤으로 동그랗게 맴돌면서 쉬
렘브란트 그림 에서 천막 혹은 날개 같은 아버지의 겉옷을 볼 때마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사랑의 어머니 같은 자질을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은 시편 작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말들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장 높으신 분의 피난처에 머무는 너,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너의 하느님께 말하라: “나의 피난처, 나의 성채,
마찬가지로 일단 믿게 되면 그다음은 믿지 않으려 해도 믿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믿지 말아야지’ 작정해도 내적 상태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믿는 것이 내 마음대로가 아니었듯이, 믿지 않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적절한 때에 믿지 않게 될 수 있을 뿐,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수도자가 수도회에서
사는 동안 내내 나는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알기 위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애써왔다. 나는 영적인 삶의 지침들항상 기도하기, 다른 이들을 위하여 일하기, 성서 읽기을 따르기 위하여 무척 애썼고 나 자신을 방탕하게 만드는 수많은 유혹들을 피하기 위하여 부단히 투쟁했다. 나는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으나 항상 다시 노력했고,
주님 예수여, 저는 당신을 바라보고, 저의 눈은 당신의 눈에 머뭅니다. 당신의 눈은 하느님의 영원한 신비를 꿰뚫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눈은 또한 시몬, 안드레아, 나타나엘, 그리고 레위를 보았던 눈입니다. 그 눈은 하혈하던 여인, 나인의 과부, 눈먼 이, 절름발이, 나환자들, 그리고 굶주린 군중을 보았던 눈입니다. 그 눈은 슬퍼하는 사